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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조 60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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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체칠리아정 Sep 26. 2023

한중록을 들고 성곽을 걸었다

화도화花桃花

한중록을 들고 성곽을 걸었다

- 화도화花桃花*

 

정온유

 

 

바람은 더위를 피해

휘어져 불었다

 

기억으로 짐작되는 성곽의 낡은 바람이

묵도의 무게만큼이나

절실하고 하얘 보였다

 

몇 겁을 흘러와 스미는 혼魂의 빛깔

고여있는 말들이 환생 하 듯 피어나

새파란 하늘 한 올로

시간을 끌고 왔다

 

가장 뜨거운 언어들로

다시

편지를 쓰리

 

근원에 닿지 못하는 쓰리고 아픈 마음이

 

상처를

열고 부풀려

소리 없이 말을 피웠다

 


 

*목화를 일컫는 말로 처음엔 하얀 꽃으로 피었다가 복숭아처럼 생긴 열매를 맺는다. 그리고 열매 속에서 하얀 솜이 나오는데 마치 꽃이 다시 피어나는 것 같다고 하여 ‘꽃이었다가 복숭아였다가 다시 꽃이 되는 식물’이라고 한다. 이를 정조는 과거 시제 제목으로 ‘화도화’를 출제했다고 한다.


- 2023년 수원화성 테마 시조집 수록

정조의 철학과 효성, 정약용의 실학정신이 실현된 계획도시이자 조선 성곽의 꽃으로 평가되는 수원화성의 역사 문화적 가치를 형상화하고 전통적 가치를 오늘의 현장에 되살리려는 작업으로 오늘의시조시인회의에서 수원화성을 테마로 시조집을 묶어냈다.


역사를 돌아보면 지금 내가 살아 있는 것이 기적임을 확인하게 된다.


원고청탁을 받고, 나는 시가 여리고 헐거웠던 어느 해 수원화성 성곽을 걸었을 때를 생각했다. 이미 나는 생각 끝에 다달았고 그 어느 해 여리고 헐거웠던 시를 완성할 수 있었다. 20년이 지난 이제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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