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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샘 Oct 17. 2023

네가 날 부러워할 줄은 몰랐어

시샘이 다정에게

네가 보내준《나의 작은 집》그림책과 편지 잘 받았어. 오랜만에 받아보는 그림책 선물에 많이 설렜어. 책을 읽자마자 네가 왜 내가 이 책을 좋아할 것을 확신했는지 알겠더라. 그림책 마지막에 주인공이 자신의 공간을 꾸미는데, 소품의 위치 하나하나 세심하게 배치하고 그곳에서 일어날 일을 상상하는 모습이 꼭 너와 나를 꼭 닮았더라. 우리는 어떻게 이렇게 좋아하는 게 비슷할까. 신기해.


나는 지난주에는 일을 하다가 안 풀리는 게 있어서 스트레스를 꽤 받았어. 잘 안 되는 찾아내서 분석하다가, 나중에는 ‘난 왜 이렇게 잘하는 게 없을까’하면서 스스로를 괴롭혔지. 덕분에 자존감도 낮아지고 꽤 우울했어. 그런데 웃긴 게, 우울할 때마다 나를 부러워했었다던 네 편지를 몇 번씩 읽었어. 내가 생각하기에 참 멋진 사람인 네가 나를 부럽다고 하니까, 그래도 내가 뭔가 잘하고 있는 게 있는 것 같아서 힘이 나더라. 그야말로 ‘질투는 나의 힘’인가 봐. 나는 적당히 좋아하는 것에는 질투가 안나. 진짜 멋있고 특별하고 내 취향에 꼭 맞는 것을 마주할 때만 질투가 나. 그래서인지 내 ‘질투’ 속에는 존경과 인정과 사랑이 빼곡히 들어있어. 그래서 반대로 내가 질투의 말을 들었을 때 그게 칭찬같이 들려서 기분이 좋은가 봐.



나는 네가 날 부러워할 줄 몰랐어

부러움은 늘 내 몫이라고만 생각했거든


너도 알다시피 나는 그림책테라피스트로 활동하며 날 ‘시샘’이라고 소개해. 대학생 때 썼던 필명을 계속 사용하고 있지. ‘시의 샘’, 내가 쓰는 시에서 사람들이 샘에 목을 축이듯이 쉬어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담은 이름이지. 하지만 너는 그 이름의 또 다른 의미를 알잖아. ‘시샘하다’ 시샘이 많은 나의 자기 고백이 담긴 이름이란 걸. 그 당시 적었던 시에는 사람들은 다 멋진 별 같고 나는 볼풀 없는 모래 같아서 서러워하던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있어. 그런데 생각해 보면 어린 시절 나의 시샘의 대부분은 너를 향해 있었어.


다정이 너는 대학교 연극동아리에서 만난
예쁘고 사랑스러운데 착하기까지 한 여자애. 


목소리와 표정, 이름마저 ‘다정’한 네 옆에서 나는 그냥 목소리 큰 푼수였지. 게다가 공부도 일도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데 심지어 결과까지 좋은 네가 부러웠어. 은연중에 너와 나를 비교하며 질투했어. 그때 너도 나도 매일 원피스를 입고 다녔잖아. 근데 원피스조차 내가 골라 입은 것보다 너의 원피스가 더 예뻐 보였어. 그리고 너의 아담함도 부러웠지. 너랑 나랑은 고작 2cm 차이잖아. 남들 보기에 조그마한 건 똑같은데, 너 옆에 있으면 작다는 소리를 별로 못 들었어. 네가 조금 더 마르고, 귀엽게 보여서였던 것 같아. 네 옆에서 아담하다는 캐릭터마저도 잃은 것 같아 아쉬워했던 기억이 나. 그렇다고 더 작고 싶은 건 아니었는데, 하다 하다 별 게 다 질투가 났어. 같은 나이, 같은 학교, 같은 동아리, 같은 취향. 우리가 공유하는 많은 것이 비슷한데 늘 어딘가 네가 나보다 더 훌륭해 보였거든.


그래서 나는 너한테 ‘질투한다’는 말을 종종 했던 것 같아. 나쁜 의도로 했던 말은 아니었어. 왜냐하면 그때는 그게 세상에서 제일가는 칭찬인 줄 알았을 때니까. ‘너는 내가 질투할 만큼 멋진 사람이야. 너는 내가 질투할 만큼 똑똑해, 사랑스러워, 잘하고 있어.’ 질투한다는 나의 말이 너에게 어떤 의미로 들릴 줄은 생각도 못 하고, 나는 대단스럽게 너에게 좋은 말을 해주는지 알았지 뭐야. 언젠가 네가 어린 시절 너를 시기하던 친구들에게 받은 상처를 얘기해 줬을 때조차도, 나는 그 애들과 다르다고만 생각했던 것 같아. 그 애들은 너를 미워했지만, 나는 너의 좋은 점을 발견하고 인정해 준 거라고. 이런 나의 마음이 오만하고 어그러진 마음이라는 것을 나는 나중에서야 깨달았었어. 질투의 이면에는 필연적으로 비교가 있고, 그 비교는 늘 나의 낮은 자존감에서 시작되었지. 이제와 말하지만, 널 부러워한다는 그 말이 어떻게 칭찬일 수만 있었겠어. 거기에는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속상함, 너와 나를 계속 비교하며 저울질하던 시선, 너의 불편함은 헤아리지 않고 내 감정에만 집중하던 나의 이기적인 마음이 있었겠지.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니 그때 내가 감당했었어야 할 감정을 너에게 넘겨 짐을 지웠던 것 같아 미안해.



부러움을 이기는 방법


아마도 유난히 너와 비교하고 질투했던 이유 중 하나는 네가 말했듯 너와 내가 비슷한 점이 많아서였던 같아. 원래 분야가 다르면 비교하기도 어렵잖아. 그런데 우리는 그림책, 연극, 인테리어, 글쓰기, 대화부터 작은 소품, 삶의 방식들까지 너무 많은 뿐이 겹쳐있고 취향도, 생각도, 선택도 비슷할 때가 많았어. 나도 예전에 너랑 처음 중고서점에 갔던 때가 생각나. 서점에 가득 채워진 그림책 선반을 앞에 두고, 경쟁하듯이 그림책을 골랐던 날. (나중에 알고 보니 경쟁심을 느꼈던 건 나뿐이었던 것 같지만) 난 그날 너보다 좋은 책을 더 빨리, 더 많이 찾기 위해 정말 노력했었어. 네가 나보다 좋은 안목으로 좋은 책들을 먼저 다 가져가버릴까 봐 마음이 조급했거든. 하하. 이런 걸 보면 네가 은연중에 느꼈던 우리 사이의 긴장감이 없었다 말하기 어려울 것 같아. 싸우거나 다툰 적은 없어도, 각자의 생각과 취향이 겹치는 것이 서로를 불편하게 하지 않기 위해 조심했었지. 그런데 만약에 조심하기 위해서만 노력했다면 우리의 관계가 즐겁지만은 않았을 거야. 내가 이 마음을 극복하는 데에는《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라는 책을 만난 게 중요한 계기였어.


그림책의 주인공인 흰 고양이와 검은 고양이는 서로를 좋아하고, 언제나 함께 다녀. 그런데 이 둘을 보는 동물들은 자꾸 이 두 고양이를 비교하며, 흰 고양이를 예쁘다고 칭찬하는 거야. 흰색인 고양이는 수풀에서는 초록색, 흙장난을 한 뒤에는 갈색, 꽃들 사이에서는 노란색으로 물들어 예쁜데, 검은 고양이는 그냥 새까맣다고. 그런 말을 들을수록 검은 고양이는 점점 자기와 흰고양이를 비교하게 돼. 사람들도 검은 고양이에겐 다가가지도 않으면서 흰 고양이는 귀엽다며 예뻐하는데, 그 모습을 본 검은 고양이는 심통이 나서 흰고양이를 떠나 멀리 떠나가버려. 이 검은  고양이가 나는 왜 이렇게 나 같을까?


너의 모습에서는 늘 좋은 장점들만 발견하면서, 내가 가진 모습에서는 늘 가지지 못한 것과 부족한 점만 봤던 것 같아. 네가 가진 하얀 털은 부럽고, 내가 가진 검은 털은 별로인 것 같아 속이 상했어. 차라리 검은 고양이의 친구가 흰고양이가 양이거나 토끼였으면 좀 달랐을까 싶기도 해. 너랑 나도 아예 완전히 다른 사람 결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우리가 서로 다른 점을 비교하기보다는 다른 점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을 것 같거든. 너무 닮고 비슷해서 나는 없고 너는 가진 것들이 더 잘 보이고, 그런 것을 발견할 때마다 더 많이 질투했었어.


흰고양이는 검은 고양이가 좋았어요.
검은 고양이는 흰 고양이가 좋았어요.
두 마리는 언제나 함께였어요. 


그런데 그림책에서 혼자 말도 없이 쓸쓸히 걸어가는 검은 고양이의 뒤로 흰 고양이게 계속 따라오더라고. 그 흰 고양이가 참 고맙게 느껴졌어. 마치 내가 속에 가진 질투하고는 별개로 한결같이 내 곁에 있어주던 네가 생각나서. 혼자인 삶에서는 비교할 것도 부러울 것도 없겠지. 모든 것이 내 것이고 내가 기준이 되고. 하지만 ‘나’라는 세계를 넘어서서 ‘너’를 만나고 ‘우리’를 알게 될 때, 둘이서 경험하는 것은 훨씬 더 큰 행복같이 느껴지더라고. 생각해 보면 지금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나 혼자 좋아했으면 그림책조차 이렇게 꾸준히 좋아했을까 싶어. 기념일마다 우리가 서로에게 선물했던 그림책, 여행지에서 함께 그림책을 고르던 기억, 서로의 그림책을 보며 나눴던 대화들.. 너와 함께 해서 생긴 추억이 많고, 함께여서 그 모든 것이 더 의미가 있었어. 


사실 나는 요즘도 여전히 네가 부러워. 너는 내가 자유롭게 일을 해나가는 게 부럽다고 하지만, 나는 네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아이를 낳고 가정을 꾸리는 모습이 부러워. 그런데 가정주부로만 사는 것도 진짜 어렵고 대단한 일인데 거기다가 너는 네 일도 열심히 해나가고 있잖아. 그 두 가지를 다 해나가고 있는 것도 너무 멋져 보여. 만약 내가 반대상황이었으면 나는 내 일은 먼 미래로 미뤄두고 하나도 시작하지 못했을 것 같거든. 네가 가꾼 공간과 가구와 소품들도, 사진과 글과 영상에 담긴 너의 감각도 부럽고. 이렇게 여전히 부러움은 끝이 없지. 내가 괜히 ‘시샘’인 게 아닌가 봐. 


그런데 요즘엔 이런 질투의 마음이 내 안에 부풀어 오를 때, 

질투하는 마음을 없애려고 억지로 노력하기보다는 너와 함께 해서 행복한 것들을 생각해.

너를 아끼고 존중하는 마음을 생각해. 


‘내 제일 친한 친구가 나만큼 그림책을 좋아하고 심지어 그림책을 만들고 있다니! 이렇게 공간도 예쁘게 잘 꾸미다니! 이 그림책을 너도 좋아하다니!’ 그러다 보면 어렸을 때처럼 부러운 마음이 가득 차기보다는 너와 함께라 감사한 마음이 더 커지더라고. 이렇게 내 안의 시샘과 싸우지 않고, 너에게 시샘이 무게를 넘기지 않고도 함께 나아갈 수 있는 나만의 방법이야. 


부러워하고 질투하며 나만의 작은 세계에 살았을 나에게

함께여서 넓은 세상을 만나게 해 줘서 고마워.




편지 속, 어른을 위한 그림책
≪흰 고양이 검은 고양이≫

기쿠치 치키(글/그림), 김난주(옮긴이), 시공주니어(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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