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이 시샘에게
시샘아, 너의 편지를 읽고 한동안 마음이 먹먹하고 시큰했어. 너를 덮은 그늘이 어서 지나가면 좋겠다고 기도하며 네 편지를 읽었어. 내가 아무리 간절히 바란다 해도 해가 움직이는 속도를 당길 수는 없지만, 해는 어떤 일이 있어도 반드시 움직여 그늘의 위치를 바꾸잖아. 그렇게 너를 덮은 그늘이 반드시 지나갈 것이라 믿고 있어.
너에게 그늘이 덮친 시기가 나도 그늘 안에 있는 시간이었어. 우리 사이에는 이런 일이 종종 일어나는 것 같아. 서로 다른 상황에서 서로 다른 일을 겪으면서도 비슷한 결의 생각과 유사한 색의 감정을 느끼는 것 말야. 우리의 세포 어딘가가 연결되어 있는 건 아닌가 싶도록.
다 지나갈 거라는 사실. 원래도 많이하는 기억하려고 하는 사실이지만 요즘 유독 많이 떠올려. 담담하고 우아하게 그늘을 지나보내고 있다는 뜻은 아니야. 영화를 보다가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눈을 감고 귀를 막은 채 “으아으아”소리를 내며 어서 그 장면이 지나가기를 바라는 아이처럼, 그저 웅크린채 으아으아 거리곤 했지.
너가 내게 너의 슬픔을 다 말할 수 없었던 그 날, 나 역시도 너에게 나의 슬픔을 다 말하지 못했어. 꺼내기에는 나도 겁이 나서 적당히 겉껍질의 이야기를 하고 무엇이 튀어나올지 모르는 상자를 덮듯 급히 닫았어. 그래서 너에게 황급히 질문을 돌렸을지도 몰라. 물론 너도 다 이야기하는 것 같지 않다고 느꼈어. 그게 억지로 꺼낼 일이 아니란 걸, 나 역시도 경험하고 있기에 그렇게 못 다한 이야기를 인정한 채 전화를 끊었지. 난 그게 꼭 아쉽지만은 않았어. 우리가 비슷한 감정을 겪고 있구나. 그 사실이 위안이 되기도 했어.
그렇지만 이제 이 편지를 쓰면서는 그늘 속에서 쿰쿰한 기운을 풍기고 있던 내 마음을 바깥으로 꺼내보려고 해. 시간도 좀 지났으니 전처럼 뭐가 튀어나올지 몰라 겁이 나는 건 좀 덜한 것 같거든.
그 장면이 머릿 속에서 떠나질 않아. 내 뱃속에 있는 작은 아기 형상이 굳어있는, 반짝반짝 거려야 할 초음파 속 아기의 심장이 텅 빈듯 멈춰있는 그 장면. 입덧의 세기가 좀 괜찮아진 것 같아 불안하다는 내 말에 괜찮을 거라고 답한 의사 선생님이 초음파로 내 자궁을 들여다보면서 침묵을 지키실 때, 그 침묵이 길어질 수록 그 어떤 사이렌소리보다도 요란한 파동이 내 심장을 울렸어. 그렇게 내게 온 둘 째 아이는 7주 정도 내 몸 속에 있다가 떠났지.
그리고는 어떻게 집에 돌아왔는지 모르겠어. 남편과 든이와 둘째 심장소리를 함께 들으려고 병원에 같이 온 터라 아이가 보는데 무너질 수 없으니 눈물을 참으려고 애를 썼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눈물 많은 남편이 결국 못 참고 운전하면서 조용히 울길래 그 훌쩍이는 소리에 나도 같이 터질뻔 했지만 옆에 있던 든이가 놀랄까봐 간신히 또 참았어. 눈물을 참는데 온 에너지를 다 썼던 거 같아.
집에 돌아왔을 때 유산 됐다는 내 메시지를 본 네가 전화를 했지. 네 목소리를 들으면 바로 눈물이 터질 거 같아서 받을 수가 없었어. 간신히 혼자 있을 수 있을 때 너에게 다시 전화를 했고, 꾸역꾸역 참아왔던 눈물이 그때는 더 이상 참을 수 없더라. 너에게도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잘 안나. 기억을 더듬어보면 당시에는 연락이 오는 사람들에게 괜찮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 다만 뱃속에 아이가 있는 걸 알고 있던 시간동안 그 아이의 이름을 지어주지 못한 게 후회가 된다고, 그런 말을 했던 것 같은데.
여튼 슬프지만 완전히 무너질 수는 없다고 생각했어. 내게는 돌봐야 할 아이가 있고, 임신으로 멈춰놓은 내 일상과 일을 다시 굴려야 하는 과제가 있었으니까. 그래서 너와 전화를 끊고는 터져나오는 눈물을 다시 꾸역꾸역 집어 넣었어. 모든 게 혼란스러웠지만, 일단은 무너지지 말고 살아나가야 했어. 밥맛이 없었지만 배달을 시켜 뭘 먹긴 먹었던 거 같아. 난 아무리 슬퍼도 밥을 굶지 않거든.
그날 밤, 그러니까 심장이 멈춘 아이가 아직 내 몸속에 있는 그 밤, 나는 잠을 잘 이루지 못했어. 심장이 멈춘 채 내 뱃속에 굳어있던 아이의 모습이 자꾸 생각났어. 솔직히 좀 무서웠던 거 같아. 내 뱃속에 내 아이의 죽음이 있다는 게. 그 죽음이 날 자꾸 덮는 거 같았어. 유산을 겪은 어떤 이들은 최대한 늦게까지 아이를 품고 있다가 수술하기도 한다더라고. 하지만 나는 내 몸 안에 아이의 죽음이 있다는 사실을 견디기가 힘들었어. 그래서 바로 다음 날 수술을 잡았지. 원래 그 날은 부산 여행을 가기로 한 날이었는데, 여행 대신 수술을 하게 된 거야.
어릴 때 성교육 시간에 유산 수술을 어떻게 하는 건지 배운 적이 기억나더라. 끔찍하다고 느꼈었거든. 나는 살면서 저 수술을 받는 날이 절대 없기를 바라는 마음이 들었었어. 그런데 내가 그렇게도 하기 싫었던 수술을 받으러 수술대에 누워있더라. 누구 앞에서도 해본 적 없는 굴욕적인 자세로 말이야. 어쩔 도리가 없었어. 특히 난 산부인과 진료를 남자 선생님께 받는 게 싫어서 첫째를 임신했을 때도 여자 선생님을 고집했었는데, 이 때는 남자 선생님이든 누구든 별 생각이 안 들었던 거 같아. 둘째 아이의 심장이 멈추면서, 내 어떤 영역이 같이 마비된 거 같은 무력감이 있었어. 남자 선생님이든 여자 선생님이든 그런 걸 신경 쓸 여력이 없었지. 마취약이 투입되어 난 숫자를 세다 잠에 들었고, 수술이 다 끝난 뒤에 마취에서 깼어.
소파술이 끝나고 나서는 안 아픈 사람들도 많다고 하더라. 근데 난 마취에서 깨자마자 엄청난 통증에 얻어맞았어. 다급히 간호사님을 불러 진통제를 맞았어. 통증이 가시길 기다리며 많이 울었던 거 같아. 일단 너무 아파서 울었고, 이제 정말 다 끝났다는 게 실감이 나서 울었어. 내 뱃속에 이제 아이가 없다는 사실이 실감나도록 아프더라. 이 수술 하고도 안 아픈 사람들도 있다는데 나는 이렇게 다 챙겨가며 아파서, 이 모든 일을 내가 왜 겪어야 하는 건지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어서 그런 억울함에도 엉엉 울었던 거 같아.
그 후에도 어김없이 시간은 흘렀어. 뱃속에 아이가 없는데도 습관적으로 배 위에 손을 올렸다가 흠칫 놀라 손을 떼는 순간이 많았어. 내가 유산을 했다는 사실이 떠오를 때마다 내가 본 초음파 속 이미지가, 멈춰있던 나의 아기의 형상이 떠올랐어. 그 이미지를 쫓아내느라 얼마나 고개를 저었는지 몰라.
이름을 못 지어준 게 미안해서 뒤늦게 ‘별’이라는 이름을 지어줬어. 언젠가 하늘 나라에서 별이를 만나게 되면 꼭 껴안으며 별이의 이름을 불러주고 싶었거든. 이름을 짓고도 한 동안 입 밖으로 그 이름을 내뱉지 못했어. 내 눈물 버튼이었지. 참고 참다가 가끔씩 별이의 이름을 허공에 불러보며 자주 울었어.
호르몬의 영향인 입덧은 수술 후에도 날 계속 괴롭혔는데, 수술 후 한 4일 뒤부터 완전히 괜찮아졌어. 오랜만에 내가 마시는 공기가 미식거림 하나 없이 쾌청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도, 임신했을 때 타면 안된다고 쳐박아뒀던 자전거를 다시 탔을 때도, 기분 전환 겸 예성이와 데이트를 하다가 내가 꼭 상상했던 별이의 모습과 닮은 아기의 뒷모습을 보고도 울었고. 그렇게 틈만 나면 울었지.
그렇게 많이 울면서도, 여전히 울지 않으려고 부단히 노력했던 것 같아. 우는데도 에너지가 필요하더라고. 더 이상 울 에너지도 없는데 별이 생각만 하면 눈물이 나니까 곤란했어. 어느 책의 제목처럼 운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었고. 그만 울고 싶어서 별이 이야기를 누구에게도 하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 난 어떤 일을 겪으면 그 일을 깊이 직면하고 그걸 언어로 표현하면서 고통의 잔재를 증발시키는 편이라 자꾸 피하려고 하는 내 모습에 약간 당황스러웠어. 이 고통을 지나보내려면 어쨌든 별이를 통해 느낀 감정을 직면해야하는데, 나답지 않게 너무도 그러고 싶지가 않더라고. 울 때마다 이 이별을 다시 또 실감해야하니 싫었어. 내가 운다고 떠난 별이가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눈물이 날려고 할 때마다 유혹을 느꼈던 것 같아. 그냥 없던 일로 치고 살 수 있다면 없던 일로 치고 싶은 유혹.
나의 첫 그림책인 ≪잘 우는 아이≫가 종종 떠올랐어. 이 그림책은 지금으로서는 아직 세상에 나오진 않았지. 그럼에도 이 편지에는 나의 첫 그림책 이야기를 적어볼까 해. 우리의 편지가 쌓인 이 책을 읽는 사람들이 내 첫 그림책을 읽을 수 있는 날도 어서 오면 좋겠네.
너도 알겠지만, ≪잘 우는 아이≫의 주인공 소녀는 내 모습의 투영이잖아.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잘 울어버리던 나. 잘 우는 게 꼭 약점인 것 같아 안 그려려고 노력하다가, 결국에는 울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게 된 내가 담긴 책이지. 한 소녀가 태어났을 때 터뜨린 울음부터 시작해서, 배가 고프거나 아파서 흘리는 본능적인 눈물, 성장과정에서 겪는 미움과 두려움을 통해 겪는 눈물, 안도감과 기쁨에서 오는 눈물 등 다채로워지는 눈물의 이유들이 쌓여 있어. 그 책으로 말하고 싶었던 건 눈물이 흐를 수 밖에 없는 감정 앞에서 울지 말라고 이야기 하기 전에, 그 눈물을 있는 그대로 존중하자는 거였어. 눈에서 나오는 물이 그저 안구의 건조를 막아주는 정도의 역할만 해도 될텐데 굳이 우리의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는 건, 그 쓰임의 이유가 다 있다는 거니까. 눈물을 부끄러워하거나 억제하기 보다 좀 더 편안해지자는 것. 어떤 이유의 눈물이든 이 책을 통해 눈물 흘리는 이의 어깨를 토닥여주고 싶었어.
그런데 사람이 참, 말한대로, 쓴대로, 그린대로 살기가 쉽지 않더라. 정작 그런 책을 쓴 나는 또 이렇게 눈물을 참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역시나 참으려고 노력한다고 참을 순 없었던 거 같아. 눈물을 흘리지 않기 위한 저항을 하면서도 결국 어쩔 수 없이 흘려야 하는 양의 눈물이 있는 것 처럼 울고 말았지. 지금도 아직 더 흘려야 할 눈물이 남아있다고 생각하고.
운 다고 달라지는 건 없지만,
할 수 있는 게 우는 것 밖에 없더라.
이 이별을 겪고 흘린 눈물 뒤에는 해소만 있지는 않더라. 눈물이 지나간 자리에는 자꾸 한 문장이 웅덩이처럼 고여 남아 날 침잠시켰어.
“안 될 일은 안 되는 구나.”
임신을 알았을 때부터 왠지 유산을 걱정했었어. 첫째 아이를 임신했을 때는 급작스러운 임신에 내가 겪고 있는 게 뭔지를 몰라 뭘 걱정해야 할지도 몰랐었었어. 그런데 이번엔 둘째다보니 뱃 속의 아이가 무사히 세상으로 나오기까지 거쳐야 하는 수많은 검사 절차와 난관이 있다는 걸 이미 알고 있었고, 혹시나 하는 마음에 매주 두려웠던 것 같아.
살다 보면 이유를 알 수 없는 비극이 사람을 가리지 않고 일어나는 걸 종종 목격하게 되잖아. 지뢰를 밟듯 언제 어디서 터질 줄 모르겠는 비극. 언제든 내게도 올 수 있는 비극. 별이를 임신했을 때 내가 몇 년 전 살았던 이태원에서, 내가 수없이 걸었던 골목에서 10.29 참사가 터지기도 했기에 한층 더 비극이 가깝게 느껴졌었어. 내게도 당장 비극이 닥친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게 유산이었고, 나는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무서워하며 지켜달라고 간절히 기도했지. 무리가 되는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작업도 다 쉬고, 점점 더 날 괴롭히는 입덧을 차라리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견뎠어. 제발 내게 찾아온 이 아이가 건강히 태어나기만을 바랐어. 그런데 그럼에도 결국 아이는 떠났지.
일어날 비극은 일어나고 안 될 일은 결국 안 되는구나. 무너진 내 심장 위로 그 허망한 문장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었고, 내 모든 에너지를 빨아드렸던 것 같아.
안 될 일은 안된다는 명제는 유산의 경험을 넘어서서 내 삶 전체에 독을 퍼뜨렸어. 그 결과 아무것도 하고 싶지가 않더라. 사람을 만나고 싶지도 않고, 일상을 돌보고 싶지도 않았어. 무엇보다 하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꾸역꾸역 나아가고 있던 그림책 작업을 멈췄어. 그동안은 그래도 아직 안 해봤으니 모르는 거다, 자신 없어도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 어쩌면 가능할 수 있다는 희망 회로를 돌리면서 간신히 한 걸음씩을 뗐었는데 말야. 하지만 안 될 일은 안 된다면, 내 그림책도 혹시나 결국 안 될 일이라면, 이렇게까지 애써서 해야 할 의미가 있을까 싶었어. 물론 안 될 일인지 될 일인지는 여전히 모르는 거라지만, 내 힘과 함께 긍정이란 긍정이 다 빠져나간 거지. 비쩍 말라 생기를 잃은 식물처럼 힘 없이 쳐져 있었어.
그러다 진짜 바닥을 본 날이 있어. 한없이 부정적인 상태였던 내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걱정을 남편에게 이야기했는데, 남편은 아직 내가 몸도 더 회복되어야 하고 천천히 하라는 맥락 속에서 “너는 아직 의지가 없는 것 같다.”는 말을 했어. 안 그래도 나에 대한 비난으로 가득 찼던 탓에, 남편의 말도 비난으로 들어버렸어. 내가 아무리 날 비난해도 남편만은 내게 잘하고 있다고 이야기해 주는 사람이었는데(설령 내가 믿지 않더라도), 그런 사람이 내게 의지가 없다고 이야기했다는데 너무 꽂혀버린 거지. 말한 사람의 의도와 상관없이 나의 형편없음을 확인 사살을 당한 기분에 허우적거렸어.
그때부터 사시나무 떨듯 몸을 떨며 끅끅 울었어. 그동안도 많이 울긴 했지만 계속 눈물을 참는 근육으로 눈물을 집어 넣으려는 노력을 계속했는데, 이때는 눈물을 참는 근육이 다 마비당한 것처럼 그동안 어설프게 참았던 눈물이 무너진 댐을 덮치며 쏟아지는 물처럼 터져나오더라. 남편도 지금까지 나를 알고 지내면서 그렇게까지 심하게 우는 건 처음 봤다고 했어. 나 역시도 내가 그렇게 울 수 있는 사람인지 처음 알았고. 울면서 내 입에서 튀어나오는 말은 가관이었어. 내가 한심하다. 내 인생이 부끄럽다. 도대체 뭘 하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아등바등했지만 아직까지 아무것도 해낸 게 없다. 그동안 열심히 산다고 산 게 무슨 소용이냐. 너무 미련하다. 앞으로도 더 나아질 거라는 자신 없다. 난 계속 엉망일 거다. 내 삶에 대한 기대가 하나도 없다. 가관이지?
나의 바닥에서 넘치는 자기 연민과 자기 비하의 끝을 달리며 허우적거렸어. 속으로는 생각했어도 입 밖으로 적나라하게 드러낸 적은 없어서 내 입에서 나오는 가혹한 말들이 생경하기도 했어. 내가 나를 이렇게 생각하고 있구나 실감났어. 동시에 내가 봐도 이건 좀 과하다 싶기도 했고.
그런 미운 말들을 눈물과 함께 다 토해내고 나니, 나의 바닥 위에서 비로소 몸과 마음의 자세를 가다듬게 되더라. 나에게 끈적이게 붙어있던 무력감이 폭포수 같이 쏟아지는 눈물에 한 꺼풀 벗겨졌나봐. 그 순간에 내가 <잘 우는 아이>에 썼던 “울 수라도 있어서 다행이야”라는 구절에 다시 깊게 공감이 되었어.
원치 않았던 이별을 겪은 뒤 가랑비 같은 촉촉한 눈물, 소나기 같은 급작스러운 눈물, 폭풍을 동반한 장마와 같은 거센 눈물을 다 흘리고 나니 그 눈물에 날 가려주던 많은 것들이 쓸려나갔어. 그러나 너덜너덜하고 볼품 없어진 내가 웅덩이에 한 없이 질척거렸지.
하지만 그 진득거리는 웅덩이도 차차 마르더라. 시간이 약이라는 말이 흔한 말인 데는 이유가 있는 거다 싶어. 그만큼 많은 이들이 경험한 거겠지. 웅덩이의 불쾌한 습기가 말라가는 걸 느끼며 날 돌아보는데 확실히 이전과 같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전처럼 날 이끄는 강력한 희망이나 열정 같은 건 사라진 것 같아. 동기부여도 잘 되는 편이고 잔뜩 힘 주고 열심히 사는게 내 기본값이었는데 이제는 기본값 자체가 마이너스가 된 기분이야.
그래도 삶은 계속 이어지고,
살아야 하니까 살되,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게 주어진 오늘을
무사히 잘 보내는 것 까지더라.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것에만 집중 하는 것. 그렇게 오늘을 살다 보면 이 그늘이 지나가고 웅덩이가 완전히 마를 날이 오겠지 싶어.
내가 쓰고 그린 <잘 우는 아이>에는 아이가 사랑하는 존재와의 이별을 겪고나서 빗속에서 울다가, 비온 뒤 뜬 무지개를 보는 장면이 있어. 언젠가 너에게도 나에게도 각자의 무지개를 보며 오늘을 다시 살아갈 힘이 나면 좋겠어.
너도 나도, 참 고생 많았다.
편지 속, 어른을 위한 그림책
≪잘 우는 아이≫
이다정(글/그림), 미정(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