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 비행기 모드를 해야 하는 이유

by 독당근



글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글을 잘 쓸 수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더 이상 자신을 믿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나는 작가이다' 혹은 '나는 김영하다'라는 마인드 컨트롤(가끔은 무라카미 하루키) 만으론 글을 쓰는 게 쉽지 않다는 것을 몇 해에 걸쳐 확인했다. 결국 난 승복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릴 적 나는 진한 커피 향이 가득한 서재에서 온 정신을 글 쓰는 데 몰두하는 작가가 된 내 모습을 상상했다. 마치 뇌와 손가락이 곧바로 연결된 것처럼 막힘없이 타자를 쳐내려 가는 천재적인 작가 같은 거 말이다.


하지만 현실은 서재는 고사하고 개인 공간 조차 없으며, 무엇보다 글을 쉽게 써내려 가는 건 판타지처럼 느껴진다. 겨우 한두 줄을 썼다 하더라도 성에 차지 않아 모조리 지워버린다. 그리고 손이 자연스럽게 핸드폰으로 가는 나를 쉽게 발견한다. 결국 한 페이지도 채우지 못하고 자괴감을 머리 끝까지 덮은 채 잠이 든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쓸 때마다 비행기 모드를 켜게 되었다. 비행기 모드를 하면 와이파이나 데이터를 쓸 수 없기에 습관적으로 열어보던 인스타그램, 유튜브, 인터넷 뉴스 기사를 보지 않을 수 있다. 그것들은 아주 짧고 단편적인 정보를 담고 있어 휙휙 보고 나면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지만 그 영향은 아주 치명적이다. 이건 단순히 시간을 낭비한다는 것 이상의 파장을 가져온다.


글을 쓴다는 것은 곧 내 머릿속에 존재하는 고유한 생각과 감정을 밖으로 내놓는 과정이다. 그 과정은 여행에서 하나씩 구한 오래된 골동품들을 파는 만물상과 같다. 한 때 내가 소중하게 여겼던 무언가를 더 이상 필요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더 중요하게 간직할 사람을 찾기 위해 파는 것이다. 나는 아직 어수룩하여 한 눈 파는 새 누군가 내 물건을 몰래 훔쳐가거나 엉뚱한 모조품으로 바꿔치기할 수 있어 항상 경계해야 한다.


인스타그램의 피드 속 멋진 순간들, 유튜브 속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방식들, 인터넷 뉴스 기사 댓글의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 이 모든 것들은 내 세계를 자극하고 흔들었다. 내가 애지중지 모아둔 골동품들은 평가절하되고 가치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하게 만든다. 내가 선택하고 느껴온 것은 나만의 착각일 뿐이며, 즉시 바꾸지 않으면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나는 많은 시간을 다른 사람들의 세상을 구경하느라 허비했다. 그 세상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는 누군가가 갔던 곳을 가야 하고, 먹었던 것을 먹어야 하고, 연인과 그런 방식으로 사랑을 해야 하고, 이별을 해야 하고, 도전을 해야 하고, 실패를 해야 하고, 누군가를 미워해야 하고 또 좋아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으면 깊은 수렁에 빠진 기분에 사로잡혔다.


이렇게 막막한 마음을 품고서 나만의 글을 쓸 수 있을까? 다른 세계의 영향을 받은 글은 어수선하고 혼란스러워진다. 나에 대한 불신과 영원히 결론 내릴 수 없는 문제들만 쌓여만 간다. 내 글은 마침표를 찍기보다 물음표를 던지게 되며 더 이상 나를 정확히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여러 사회 심리학 실험에서 개인의 개성, 자아와 같은 것이 외부 자극에 의해 얼마나 쉽게 무력해질 수 있는지 확인할 수 있다. 좋은 방향으로든 나쁜 방향으로든 인간은 외부 환경으로 인해 변화한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서 변화가 있다면, 그 변화는 외부에 의한 것이 아니라 내 안에서 숙고된 결과 여야만 한다. 그것만이 나에게 의미가 있다.


나는 오늘도 비행기 모드를 켠다. 세상으로 여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깊은 내면으로 들어가기 위해서. 세상 밖으로 꺼낼 수 있는 골동품을 찾아 나선다. 그것이 아름답던 추하던 상관없이 나만의 것을 내놓고 싶다. 내 것을 빼앗기지도, 누군가의 것을 뺏지도 않는 순수한 글을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