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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당근 Oct 03. 2021

꿈이 현실로 되는 순간

렌소이스 마라넨시스 국립공원


 ‘오랫동안 꿈을 그리는 사람은, 마침내 그 꿈을 닮아간다.’ 프랑스 소설가이자 정치가 앙드레 말로가 한 말이다. 그 시절 나는 이 문구를 가슴 깊이 새겼다. 언젠간 꿈꿔온 모습으로 멋지게 채색되길 간절히 바라면서. 매해 꾹꾹 눌러쓴 버킷리스트에는 빠짐없이 배낭여행이 자리 잡고 있었다. 많은 젊은이들이 배낭여행에 로망을 가지고 있을 때였다. 건강한 신체와 새로운 세계에 대한 건전한 호기심을 가진 젊은이라면 그럴 만하지 않을까? 젊을 뽐낼 수 있는 에너지와 삶에 대한 긍정성이 활어처럼 펄떡이며 살아 움직였다.


 수많은 여행지 중에 가장 가고 싶었던 곳은 단연코 렌소이스 마라넨시스 국립공원이었다. 이곳은 우연히 카페 게시판에서 ‘브라질의 사막. jpg’라는 제목의 글을 클릭하면서 알게 되었다. 사진을 보는 순간 “세상에! 지구상에 이런 곳이 있다니!”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외국의 멋진 명소 사진을 볼 때마다 어디든 가고 싶은 마음에 가슴이 울렁거렸지만 이곳은 차원이 달랐다. 심장이 터질 듯 요동쳤다. 직접 두 눈으로 보는 걸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환상적인 곳이었다.


 남미의 첫 여행지로 이곳에 가게 되다니. 처음부터 끝판왕을 만나는 느낌이다. 이렇게 멋진 곳을 가장 먼저 가면 나중에 가는 곳은 어디든 시시해 보일지도 모른다. ‘원하는 것을 이루었으니 이제 설렁설렁 다녀야지’까지는 아니더라도 확실히 텐션이 낮아질 거다. 혹은 반대로 기대한 만큼  실망이 클 수도 있다. 사진 기술이 발달하여 빛을 잘 이용해서 각도를 잘 잡거나 살짝 보정만 해도 실제보다 훨씬 근사해 보이니까. 하지만 이제는 이런 잡념과는 관계없이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공항이 있는 리우데 네이로로 가야 한다. 바네사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리우에서 같이 하룻밤을 묵겠다고 했다. 우리는 아침 일찍 버스를 탔고, 3시간이 걸려 도착한 리우에 도착하자마자 정신없이 택시를 잡아 Botafogo로 넘어갔다. 바네사는 터미널 근처는 위험하기에 얼른 벗어나야 한다고 했다. 

 

  처음 방문한 호스텔은 입구부터 우중충했다. 직원을 따라 들어간 도미토리에서 우리는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낡고 오래된 방에 이층 침대 여러 개가 빈틈없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억지로 구겨 넣은 듯 방 전체가 침대로 가득 차 있었다. 환기가 잘 안 되는지 퀴퀴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찔렀다. 직원은 우리 반응이 놀랍지도 않은지 심드렁한 표정이다. 그는 마치 교도관처럼 느껴졌다. 바네사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본인이 돈을 낼 테니 좀 더 좋은 곳으로 가자고 했다.

 

  바네사가 책에서 찾은 두 번째 호스텔은 건물 전체에 빛이 환히 들어오고 하얗고 깔끔했다. 게다가 여러 가지 소품들로 세련되게 꾸며져 있었다. 밝고 쾌활한 스태프들로 인해 호감도가 더욱 상승했다(여기가 이후 내가 묵게 될 숙소 중 가장 좋은 곳이 될 줄은 몰랐다). 우리는 드디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짐을 풀었다. 긴장이 풀리니 배가 고파져 곧장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 식사를 먹었다. 그리고 나선 은행에서 돈을 뽑아 1,200달러로 환전하였다. 달러는 어느 나라에서든 통하니 필요할 때마다 그 나라 돈으로 환전하면 된다. 큰돈을 수중에 가지고 있으니 바짝 긴장감이 생겼다.


 다음 날 바네사가 떠나고 홀로 공항으로 향했다. 미리 예약해둔 택시가 숙소 앞까지 와있어 몸은 편안했으나 마음은 전장을 나서는 병사 같았다. 이것저것 넣다 보니 배낭은 엄청나게 무거워졌다. 물건을 몇 개 빼야 하나 고민했지만 여행 도중 필요한 물건이 없어 당황하는 것보다 낫다는 생각에 몽땅 챙기기로 했다. 등 뒤에는 커다란 배낭을 메고 앞으로는 작은 배낭을 메었다. 작은 배낭 속에서는 여권, 달러, 카드 등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사수해야 할 것들을 넣어두었다. 모양새가 조금 우스꽝스럽지만 지금 신분은 배낭여행자이니까 주변 시선이 크게 의식되지 않았다.


 렌소이스 마라넨시스 국립공원이 있는 바헤이리냐스로 가기 위해 먼저 상루이스를 거쳐야 했다. 리우에서 비행기로 4시간 반이나 걸리는 장거리이다. 김포공항에서 제주도까지 고작 한 시간이 걸리는 걸 감안해보면 브라질의 크기를 새삼 실감할 수 있다. 비행기 바로 옆자리에는 무뚝뚝해 보이는 콧수염이 난 아저씨가 앉았다. 어쩌다 눈이 마주쳤는데 서로 어색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비행기가 출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승무원이 복도를 걸어오면서 기내 간식을 나눠주었다. 잠을 자는 사람은 그냥 지나치고 깨어 있는 사람들에게만 간식을 주는 걸 보니 잠들지 않길 잘했다. 간식은 세 가지 종류의 스낵이었는데 어떤 걸 먹고 싶은지 물었을 때 민망했지만 ‘todo(토도, 모두)’라고 대답했다. 승무원은 미소를 지으며 종류별로 스낵을 챙겨 주셨다.  


나도 모르는 사이 잠시 졸고 눈을 떴는데 맞은편 의자 주머니가 불룩했다. 알고 보니 옆자리의 아저씨께서 간식을 챙겨주셨던 거다. Obrigada(오브리가다, 감사합니다)라고 인사를 드리니 멋쩍은 듯 웃으셨다. 간식을 모두 먹지 않고 잘 챙겨두었다가 배가 고플 때 먹기 위해 가방에 넣었다. 왠지 여행 도중에는 비상식량을 쟁겨둬야할 것 같다. 이미 호스텔에서 조식으로 나온 토스트도 고이 싸서 가방에 넣어두었지만.


 공항에 도착해 짐을 찾고 나오니 생각보다 공항 안은 무척 한산했다. 덕분에 인포메이션 센터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작은 프런트에 여자 직원 한 분이 덩그러니 앉아 있었다. 영어로 소통하는 게 쉽진 않았지만 우리는 어떻게 서든 짤막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열심히 설명해주신 덕에 필요한 정보는 모두 얻을 수 있었다. 이 근방에서 가장 싼 호스텔과 택시 정류장에 대한 정보를 얻었다.


 감사하게도 직원분께서 직접 택시를 잡아주시곤 기사님께 목적지를 알려주셨다. 택시는 20분도 안 걸려서 숙소 앞에 도착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어설프게 흥정을 했지만 아저씨는 아주 곤란하단 표정으로 안된다고 말씀하셔서 곧바로 단념했다. 심기일전으로 호스텔에 들어가서도 흥정을 시도했지만 스태프가 아주 지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또다시 흥정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흥정에 영 소질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다. 이후 여행을 하면서도 흥정에 성공한 기억은 없다.


 호스텔의 첫인상은 길을 잃어 잘못 들어간 골목에서 우연히 발견한 여인숙 같았다. 왠지 오래된 역사가 있을 것 같은 신비로운 느낌이 풍겨졌다. 입구는 철창으로 봉쇄되어 있어 주변 치안이 그리 좋지 않은걸 짐작할 수 있었다. 한 스태프가 오른쪽 거리 끝을 가리키며 저쪽에는 마약을 파는(혹은 마약을 하는) 사람이 있으니 절대 가지 말라고 일러주었다.


 스태프가 여성 전용 도미토리로 안내를 해주겠다며 따라오라고 했다. 같은 방에 묵는 사람이 있는지 묻자 그는 프랑스에서 온 여자가 한 명 있다고 대답했다. 문을 여니 방안은 어둡고 습했다. 1990년대 유럽 영화 속에서 나올법한 스타일이다. 늘 상상해오던 호스텔의 전형적인 모습이었다. 룸메이트는 어디에 나가 있는지 짐만 침대 옆에 놓여있었다.


 배낭을 아무렇게나 내려놓고 빈 침대에 누웠다. 그제야 크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 위에서 팽팽팽 돌아가는 환풍기를 보니 기분이 이상해졌다. 외딴섬에 혼자 남겨진 것만 같달까? 너무나도 낯선 이곳.  천장에 가족들의 얼굴이 둥둥 떠올랐다. 울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눈물은 나오지 않았다.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 날까지 적응되지 않았던 스산한 호스텔 입구




얼마나 많은 여행자들이 이 카펫을 밟았을까?(과연 세탁한 적이 있을까)
어두워서 그런지 분위기가 있어 보인다.


햇빛이 좋은 날 빨래를 걸어두면 금방 마른다.



고요한 방 안. 환기팬이 돌아가는 소리만 난다.



 

 침대에 멍하니 누워있다 정신이 번뜩 들었다.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어두워지기 전에 동네를 둘러보기 위해 무거운 몸을 일으켰다. 이곳까지 와서 이렇게 멍하니 시간을 보낼 순 없다. 그건 언제나 또 어디에서나 할 수 있는 거니까. 먼 곳까지 온 만큼 새로운 상황에 내던져지고 싶었다. 안전한 숙소에서 웅크리고 싶은 마음을 꾹꾹 누르며 호스텔 문을 나섰다. 떨리는 내 속을 알 리 없는 스태프는 미소를 지으며 잘 다녀오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우선 스태프가 절대 가지 말라고 경고했던 반대 방향으로 무작정 걸었다. 일요일이라 사람이 없어 거리가 한산했다. 낯선 여행자의 등장에 사람들은 경계하듯 힐끔힐끔 곁눈질로 바라본다. 조금 무서웠지만 그럴수록 어깨를 활짝 펴고 큰 보폭으로 걸었다. 이렇게 하면 누구도 나를 함부로 건드리지 못할 것 같다. 이때의 습관이 남아있는지 자신감을 충전하고 싶을 때 의식적으로 어깨를 열어젖히며 당당하게 걷는다. 언제나 통하는 방법이다.


 상루이스는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는 역사적인 도시이다. 이 도시는 17세기 최초의 도시계획인 직교형 거리 배치가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길이 구불구불하지 않고 깔끔한 직선이라 길을 잃어도 왔던 길로 쭉 돌아가면 된다. 나처럼 직감대로 제멋대로 움직이는 사람에게는 안성맞춤인 도시이다. 건물 대부분이 포르투갈 식민도시의 전형적인 양식인 유리 타일로 장식되어 있다. 잘 빚은 도자기처럼 윤이나는 건물들은 우중충한 날씨임에도 그 존재감이 사그라들지 않았다.


 발걸음을 멈추고 거리 한가운데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영화에서만 보던 이국적인 거리와 건물 그리고 사람들이 나를 둘러싸고 있다. 이런 곳에 ‘혼자’ 와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는다. 여기가 지구 반대편이라는 사실을 의식할 때마다 매번 놀라움의 연속이다. 이탈리아 단기여행도 겁이 나서 취소해버렸던 내가 남미까지 오게 될 줄은 누가 알았을까? ‘운명’이라는 단어는 무척 진부하지만 다른 어떤 말로는 설명할 수 없다.


 어느새 교회와 법원, 은행과 같은 큰 건물들이 줄지어 서있는 시내까지 왔다. 여기까지만 둘러보고 돌아갈까 하다가 욕심이 생겨 더 걸어가 보기로 했다. 하염없이 걷다 보니 어느새 길이 끝나고 바다가 보이는 지점까지 와버렸다. 늘 시작하는 게 어렵지 막상 하고 보면 뭐든 씩씩하게 해낸다. 이 여행도 부족하지만 어떻게든 잘 마무리를 지을 수 있을 거라는 믿음 정도는 가지고 있다. 그거라도 없었다면 여전히 한국에 있었겠지.


 바다까지 보고 나니 너무 멀리 왔다는 생각에 화들짝 놀라 어두워지기 전에 얼른 숙소로 돌아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 왔던 길을 따라 부지런히 걷고 있는데 갑자기 어디선가 진한 먹구름이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했다. 심상치 않은 기류가 흐르더니 조금씩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큰 일이다!’ 보폭을 더 크게 하여 서둘러 숙소로 향했다. 다행히 호스텔에 도착하자마자 비가 우수수- 쏟아 내렸다. 휴, 운이 좋았다.


 빗물을 털어내며 도미토리 문을 열자 머리를 질끈 묶은 여자가 바닥에 앉아 있었다. 단번에 그녀가 스태프가 말했던 룸메이트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녀 역시 숙소로 돌아온 지 얼마 안 되었는지 막 배낭을 풀고 정리 중이었다. 탄탄한 근육질의 늘씬한 몸이 눈에 띄는 그녀는 무표정에 강해 보이는 턱과 눈빛으로 인해 한 방에 있지 않았더라면 섣불리 다가가지 못했을 엄청난 포스를 가졌다. 내가 생각한 전형적인 배낭여행자의 모습이다.  


 그녀의 기에 살짝 눌렸지만 눈이 마주치고는 반사적으로 먼저 ‘Hi’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녀 역시 손을 살짝 들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그녀의 이름은 씨씨. 알고 보니 프랑스가 아니라 기아나에서 왔다. 이곳은 베네수엘라 옆에 있는 나라인데 스태프가 가이나 프란시스(Guyane française)라고 말한걸 잘못 알아들었던 거다. 특이하게도 이 나라는 과거 식민지에 따라 가이아나(영국령), 수리남(네덜란드령), 프랑스령 기아나 세 구역으로 나뉘어 있다.   


 씨씨가 어제 바헤이리냐스에 갔다 왔다는 말을 듣자마자 놀란 곧바로 렌소이스 마라넨지스 국립공원에 간 거냐고 물었다. 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곳은 실제로 어땠는지, 정말 사진처럼 멋진지, 사막에 물이 많이 고여있는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궁금증을 다다다 쏟아냈다. 그녀는 사막에 물이 많이 고여있고 아주 멋졌다고 말하며 그곳을 회상하는 듯 밝게 미소를 지었다. 그녀의 긍정적인 대답에 기대감이 샘솟았다. 씨씨는 가방을 뒤지더니 렌소이스 마라넨지스 국립공원 팸플릿을 꺼내 나에게 주며 가져도 된다고 했다.  갑작스럽지만 여행자와의 첫 정보 교류가 성사되었다(물론 받기만 했지만). 진짜 배낭여행자가 된 듯한 설레는 기분이다.


 씨씨의 나라에서는 프랑스어를 쓰기 때문에 스페인어는 계속 공부 중이라고 했다. 그녀는 앞으로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등을 여행하면서 스페인어를 배울 계획이다. 내가 앞으로 여행할 루트와 비슷해서 왠지 동질감이 느껴졌다. 나 역시 스페인어를 공부하는 중이라고 당당히 말하자 그녀는 반가워하면서 갑자기 스페인어로 말하기 시작했다. 당황한 나머지 손사래 치며 ‘비기닝! 비기닝!’이라고 말하자 씨씨는 아주 큰소리로 웃었다.


 늦은 밤 우리는 각자 침대에서 내일을 위해 재정비를 했다. 호스텔에서 예약해준 LockBem이라는 버스가 내일 아침 7시에 나를 픽업하여 바헤이리냐스 까지 데려다준다. 하루나 이틀 정도 묵고 다시 숙소로 돌아오게 될 테니 여기에 두고 갈 물건과 가져갈 물건을 신중히 구분했다. 씨씨는 내일 이곳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이동하게 된다. 잠이 오지 않았지만 일찍 일어나야 하니 정리를 끝내고 곧바로 침대에 누웠다.


 잠자리에 들었어도 내일 비가 오지는 않을지 걱정하는 바람에 쉽게 잠에 들 수 없었다. 손꼽아 기다려온 사막을 추적추적 비를 배경으로 맞이하고 싶지 않다. 만약 비가 온다면 날이 맑을 때까지 버틸 심산이다. 그래도 긍정적으로 생각해보자면 오늘 비가 많이 왔기에 내일은 빗물이 많이 고여 환상적인 호수를 원 없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침에 눈을 떴을 때 어떤 하늘이 나를 반길지 모르겠지만 받아들일 수밖에. 마음을 가다듬고 나니 무사히 하루가 지나간 것에 긴장이 풀리면서 한 번도 깨지 않고 깊이 잠들었다.


 다음날 아침, 눈을 뜨자마자 창 밖을 내다보았다. 지난밤의 걱정이 무색하게도 빗물에 씻긴 푸르른 하늘이 개운하다는 듯 기지개를 켜고 있었다.


파란 하늘과 타일이 잘 어울린다.
직선으로 길게 뻗은 거리
내일 가게 될 렌소이스 마라넨시스 사막이 그려져 있다.
어디서나 타일로 된 건물을 만날 수 있다.
건물뿐 아니라 표지판까지도 타일로 만들어졌다.
남미에서도 길냥이는 귀엽다. 단잠을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찰칵.


  



 지구상에서 가장 흰모래사막 렌소이스 마라넨시스 (Lencois Maranhenses) 국립공원은 브라질 북동부 마라냐옹(Maranhao) 주에 자리 잡고 있다. 이 사막 이름의 뜻은 마라냐옹의 침대보이다. 부드럽고 새하얀 모래를 만져보면 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지 충분히 이해가 된다.


 사막에는 놀라운 비밀이 있다. 우기에 내린 엄청난 양의 비가 모래 언덕 사이사이에 물웅덩이를 만드는데 이렇게 고인 물은 특수한 지층으로 인해 사라지지 않고 그대로 호수를 이룬다. 새하얀 모래와 투명한 푸른빛 호수의 조화는 눈부시게 아름답다.


 이 환상적인 사막으로 가는 길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다. 드넓은 강을 배로 건넌 뒤 커다란 4륜 구동 차량에 올라타 한 시간 가량 좁고 험한 모래길을 열심히 달려가야 한다. 마치 멈추지 않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듯한 울렁임을 느낄 수 있다. 수도 없이 내리찍는 엉덩방아는 덤이다. 80대로 추정되는 체구가 작은 할머니가 왜 보조석에 앉았는지 이제야 알 것 같다.


 사람들은 차가 심하게 들썩일 때마다 ‘오우~노~’ 하며 비명을 질렀다. 하지만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면서도 모두 입가에 미소를 잃지 않았다. 우리는 곧 사막을 만날 생각에 들떠 있었다.


 드디어 차가 멈춰 섰고 혹사당한 엉덩이를 매만지며 후들거리는 다리로 천천히 내렸다. 겨우 한숨을 돌리려는데 눈앞에 생각지도 못한 높은 모래 언덕이 있었다.


 가이드는 포르투갈어로 우리에게 무어라 말했는데 대충 짐작 건데 여기서부터는 걸어가야 한다는 것 같았다. 나와 스웨덴 중년 부부를 제외하곤 모두 브라질 사람들이었다. 가이드는 친절한 사람이었지만 영어를 전혀 하지 못해 눈치껏 그가 하는 말을 알아들어야 했다.


 할머니의 옆에 있던 여성분이 다가와 영어로 신발을 벗고 언덕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알려줬다. 대화가 되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다. 감사하다는 말을 한 뒤 신발을 벗고 언덕을 오르는 사람들을 뒤따라갔다.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수 있는 길이라 한 줄로 천천히 가야 했다. 길의 양 옆은 무성한 수풀이 있었다. 사막 바로 옆에 초록잎 나무들이 가득한 게 신기했다.


 모래언덕은 조금 과장을 보태서 경사가 직각에 가까웠다. 발이 모래로 푹푹 꺼지는 걸 느끼며 미끄러지지 않게 조심히 언덕을 올랐다. 두 번의 가파른 경사를 넘어서야 겨우 정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드디어 사막을 마주하게 되었다.


 '헉!'하고 숨이 막힐 정도로 압도될 수밖에 없는 광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눈부신 하얀 모래가 끝없이 펼쳐져 있고 그 안에는 태양에 반사된 수십 개의 호수가 반짝인다. 맑고 깨끗한 하늘에 흰 구름이 미동도 없이 멈춰있다. 적막 속에 바람이 부는 소리만 휘이- 휘이- 들려온다.


 아무 말 없이 그림 같은 풍경을 바라만 보았다. 미술관에서 명화를 감상하는 듯 아주 조용히, 두 눈 가득 담기도록. 드디어 신이 아끼는 걸작을 발견한 게 아닐까? 아니 이곳은 천국 일지도 모른다. 너무나도 고요하고 비현실적인 공간이다. 이곳에 두 발로 서 있는 게 말도 안 된다고 느껴진다.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호수가 있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크고 작은 호수들이 여기저기서 반짝인다. 주위를 보니 우리 말고도 다른 여행사로 온 사람들이 꽤 많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광활한 사막 속에서 인간은 너무나도 작게 느껴진다.


 사람들의 표정은 모두 평화롭고 누구 하나 서두르는 이 없었다. 이들이 본 나의 모습도 아마 그럴 것이다. 아름다운 장소는 그 안에 있는 사람마저 아름답게 만든다.


 가까이 가서 본 호수는 아주 투명했다. 두 발을 담가보니 선명하게 보일 정도이다. 괜히 발가락이 꼼지락 거려본다. 수영을 할 수 있다고 들어 미리 수영복을 안에 입고 왔다. 수영을 잘 하진 못하지만 호수에 몸을 담가 물을 가르며 기분을 낼 수 있었다.


 카메라를 어디로 갖다 대도 그림 같이 아름답다. 벌써 이곳을 떠날 생각에 아쉬운 마음이 들어 더욱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만족할 만큼 사진을 찍고 나서야 그대로 모래 위에 털썩 주저앉았다. 왠지 모를 쓸쓸함이 밀려들어 온다.


 모래를 만져보니 실크처럼 부드러웠다. 모래의 감촉, 잔잔한 호수, 저물어가는 해. 자연은 그저 제자리에 그대로 있을 뿐인데 어떻게 인간의 마음을 움직이는 걸까.


그래, 너도 그렇게 그 자리에 존재하기만 해


라고 말하는 것만 같다.


 해가 지는 것으로 마무리가 되는 투어라 슬슬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으로 걸어갔다.  나에게 도움을 줬던 브라질 여자가 다가왔다. 친절하게도 혼자 있는 내가 신경 쓰이셨나 보다. 투어 초반에도 나에게 물과 과일 그리고 캐러멜을 나눠줬었다. 그녀는 할머니와 함께 여행하기 위해 이곳에 왔다고 한다.


 나도 그녀처럼 소중한 사람과 함께 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에게 혼자 남미 여행을 하러 왔다고 말하자 정말 놀라 하면서 용감하다고 칭찬했다. 살면서 용감하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남미에 와서 꽤 많이 듣게 된다.


 먼발치에서 지는 해를 바라보던 할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를 드리자 인자한 미소를 지으셨다. 문득 세월이 흘러 노인이 된 나는 지금을 어떻게 기억할지 궁금해졌다. 부디 그때도 지금 이 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하길 바란다.


  아름다운 사막도 수십 년 수백 년이 흘러 퇴색되어 사라지고 나라는 작은 인간도 언젠간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다. 이렇게 멋진 순간이 사라지는 게 실감이 나질 않는다. 사막도 그리고 나도 가장 생명력이 샘솟는 지금. 나는 사막과 어떤 교감을 했다고 믿는다. 할머니가 되어서야 그 복잡한 감정을 깊이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차를 타고 돌아가는 숙소로 가는 도중에 갑자기 비가 엄청나게 쏟아져 내렸다.


'분명 교감을   같단 말이지..'



출발하기 전, 이후의 고통을 예상하지 못했다.
사막의 시작









바람의 결에 따라 무늬가 생겼다.









해가 거의 지고 있는 쓸쓸한 사막



사막의 반대편은 수풀이 무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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