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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독당근 Sep 08. 2021

계획대로 되는 건 없지만


 저녁시간 나무가 우거진 남산 러닝코스를 달리다 보면 이질적인 커다란 건물들이 줄 지어 보이는 뻥 뚫린 구간이 있다. 해가 완전히 기울어 하늘이 붉은빛으로 물들면 투박한 건물조차 작품처럼 근사해 보인다. 높이 솟은 건물들에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알만한 기업의 마크가 새겨져 있다. 그럴 땐 문득 서울에 있는 게 실감 난다.

 

  어릴 적엔 막연히 서울에서의 삶을 동경했다. 다들 입을 모아 서울이 좋다고 하니 더 멋져 보였다. 하지만 정말 이곳에서 살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여행에서 돌아와서는 이대로 고향에서 쭉 살아도 좋고 또 다른 지방에서 살아도 상관없었지만 서울은 아예 논외였으니까. 어디서 살게 될지 조차 계획할 수 없는 인생이라니. 조금 무서워진다.


 




 바네사의 집에서 머문 지 한 달이 다되어 간다. 그녀가 사는 곳은 대도시인 리우데자네이루에서 3시간 정도 버스를 타고 가야 하는 마카에이다. 운전을 해서 15분만 가면 해변의 맛있는 아이스크림 가게에 들를 수 있는 바다와 인접한 소도시이다. 햇빛은 강하지만 대체적으로 습하지 않아 땀범벅이 된 적은 없다.

 

  꼬마 아이들은 내가 신기 한지 동그란 눈으로 힐끔힐끔 바라본다. 가끔 옆에 있는 부모님이 멋쩍게 웃을 정도로 빤히 보는 아이도 있다. 처음엔 그 시선이 부담스러워 도대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난감했으나 지금은 눈을 마주치며 싱긋 웃는 여유가 생겼다.


  마카에에서의 일상은 꽤 규칙적이다. 힘들게 찾은 스페인어 학원 수업이 무산되면서 차선책으로 등록한 영어 학원을 주중에 매일 착실하게 다닌다. 일대일 영어 회화 수업을 등록했는데 선생님의 이름은 루시아이고 50대 여자분이다. 긴 갈색 머리에 키가 크고 늘씬해서 멀리서도 눈에 띈다. 그녀는 본인의 과거 결혼생활과 이혼 같은 개인적인 이야기를 서슴없이 한다. 브라질에서는 흔한 이야기라 그런지 아니면 내가 잠시 머물다 가는 사람이라서 인지는 모르겠지만 꽤 흥미로워 듣는 재미가 있다.


  초반에는 영어 수업을 마치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곧장 집으로 갔다. 혼자서 외출하는 건 전혀 하지 못했다. 현지인인 바네사 조차 늘 조심해야 한다며 단단히 경고를 해서 잔뜩 긴장했다. 학원을 정하는 데 있어서 거리를 1순위로 둘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점점 이곳이 익숙해지고 또 집에만 있는 건 너무나도 심심했기에 혼자 과일가게나 마트 장을 보는 걸 시작으로 시내에 있는 단골 케이크 가게를 만들 정도로 점차 세력을 확장했다. 그리고 마지막엔 바네사가 마약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던 공원도 당당히 가로질러 갈 수 있게 되었다.


  저녁시간에는 언제나 바네사와 함께 요리를 한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요리를 하는데 재미를 붙였다. 나는 꼭 한 가지는 한국에서 먹어보지 않은 식재료를 곁들여 요리를 하곤 했다. 특히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얇고 기다란 녹색 채소를 늘 구비해두는데 특별한 맛이 나진 않았지만 살짝 고소하면서 식감이 아삭해서 좋아한다. 가끔 바네사와 친한 이웃인 에기마와 베지가 음식을 나눠주는 날이면 더욱 풍성한 저녁식사를 할 수 있다.


 에기마와 베지는 이 빌라 맨 위층에 산다. 마을과 바다가 잘 보이는 전망이 좋은 층이다. 처음 그들을 보았을 때는 당연히 부부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단순히 동거인일 뿐이었다. 한국에서는 쉽게 볼 수 없는 가구형태라 놀랐지만 실례가 될 수 있기에 아무렇지 않은 척 '그렇구나'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에기마는 흰머리에 걸음이 느린 60대 남자분이다. 그는 바네사의 고등학교 선생님이었으며 현재는 농업과 관련해서 어드바이스를 해준다고 하셨다. 베지는 선하고 차분한 느낌의 40대 후반 여자분이다. 방을 구경하다 심리학 책을 발견하여 심리학을 전공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현재는 어떤 일을 하는지 말해주지 않아 굳이 물어보지 않았다.


 두 분 다 나를 처음 보자마자 납득이 안 될 정도로 상당히 좋아하며 반겨주셨다. 영어를 거의 하지 못하셔서 번역기에 의지해야 했으나 늘 내가 어떤 말을 할지 기대에 찬 눈으로 기다려주셨다. 바네사가 일을 하러 타지에 잠깐 가 있던 동안은 늘 점심에 초대해주셨다(저녁까지 초대해주셨으나 죄송하기도 하고 조금은 부담되어 정중히 거절해야 했다). 그리고 가끔 나를 해변이나 농장 등에 있는 좋은 레스토랑에 데려가 맛있는 음식을 사주셨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들은 낯선 땅에 온 젊은이를 환영하는 최대의 호의를 베풀어주셨던 것 같다.


 저녁 식사 뒷정리까지 모두 마치고 여유를 되찾고 나면 바네사와 함께 전혀 알아들을 수 없는 포르투갈어 드라마를 챙겨봤다. 언어의 벽을 뛰어넘을 정도로 뻔한 마약과 갱이 나오는 막장 스토리였다. 드라마가 끝나면 별로 한 것도 없는데 어느새 잠자리에 들 시간이 온다.

 

 바네사가 나를 위해 따로 구비해준 깨끗한 매트와 포근한 침대보에 몸을 누우면 뭔가 느슨해지는 기분이 든다.  일과 중엔 자각하지 못했지만 내 몸은 늘 긴장상태를 유지했던 것 같다.


 낯선 곳에서 무탈하게 하루를 보낸 게 다행이라고 할 수 있지만 언제부턴간 이렇게 평범해도 될까라는 걱정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이곳은 지구 반대편이니까’라며 스스로 위안하며 애써 잠을 청해 본다.


 




  하지만 지난밤의 고민이 허탈할 정도로 예상치 못한 계획의 변수가 생길 줄이야. 방심할 때를 기다렸다는 듯이 장난기 많은 운명의 신이 뒤통수를 강하게 쳤다. 그리고 이 변화가 나를 어디로 이끌 줄은 그때는 알지 못했다.


















































"나 이사를 하게 될 수도 있어. 그러면 네 여행 일정도 바꿔야 할지 몰라."


 갑자기 이사라니 또 여행 일정을 바꿔야 할 수도 있다니. 예상치 못한 이야기를 연달아 들으니 도무지 상황 파악이 되질 않는다. 하지만 바네사의 슬픈 목소리와 무거운 공기가 집안을 감싼다. 어디선가 비상벨이 위잉 위잉 울리며 경고하는 듯했다.






  요즘따라 부쩍 바네사의 표정이 어두웠다. 하지만 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기에 무슨 일인지 짐작조차 하지 못했다. 이때 눈치를 챘어야 했고 어쩌면 한 번쯤 그녀에게 물어볼 수 있었다. 아니 물어봤어야 했다.  일이 없는 날에도 항상 바쁘게 움직이는 바네사에게 무엇 때문에 그렇게 바빴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붙잡고 물어보지 않았던 수많은 날들이 스쳐 지나간다. 그저 브라질은 시스템이 좋지 않아 직접 가서 처리해야 할 일이 많은 거라고 혼자 섣불리 단정 지었다. 어쩜 이렇게도 바보 같을까.   


 부엌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 놀라서 다급히 가보니 바네사가 울고 있었다. 그녀는 나 때문에 편히 울지 못했다. 마음이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내가 못 본 척 외면한 순간들 속에 혼자 힘들어했을 바네사를 생각하니 가슴이 아팠다. 겨우 마음을 추스른 바네사에게 그제야 정확한 상황을 들을 수 있었다.


"여기는 집 값이 너무 비싸. 그리고 돈을 내면 자기들 마음대로 약속을 바꿔버려. 그래서 나는 리우로 이사를 가야 할 것 같아. 거기 사는 친구들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해."


 그녀에게 짐이 되었다는 사실에 스스로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항상 배낭여행, 영어와 스페인어 공부 따위의 배부른 고민을 떠들어 댈 때 ‘잘할 수 있을 거야’라며 용기를 주던 그녀는 혼자 자신의 현실에 맞서야 했다. 이미 내가 도착했을 때 그녀의 문제는 한창 진행 중이었다.


  갑작스러운 바네사의 말에 당황스럽고 겁이 났다. 여행 일정을 바꾸는 것 정확히는 여행 일정이 늘어나는 것은 생각지도 못했다. 하지만 그녀에게 더 이상 짐이 되고 싶지 않았다. 결국 여행 일정을 변경하기로 결정했다(사실 그 외에 어떤 선택지가 있는 건 아니지만..). 이로써 내 여행은 성큼 생생한 현실로 다가왔다.


 원래 계획은 6개월간 바네사 집에 거주하며 포르투갈어와 스페인어를 배우고 중간중간 짬을 내서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이곳저곳을 짧게 여행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달 정도만 남미 일주를 할 예정이었다.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 편을 좀 더 앞당길 수도 있었을 테지만 차마 그럴 순 없었다. 


 가장 큰 이유는 번거롭다는 거지만, 가족과 친구들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벌써 왔어?’하고 묻는 모습이 떠오른다. 그럼 나는 쉽게 답하지 못하고 우물쭈물할 수밖에 없을 거다. 그런 불명예스러운 퇴장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


 "지구 반대편까지 온 마당에 두려울게 뭐람?"이라고 마음을 다잡아 보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한 달이 넘는 배낭여행은 갑작스러웠다. 길어봐야 한 달 반 정도 여행할 거라 생각했으니까.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는 9월 초이고 여행을 시작하는 날은 4월 중순 즈음이니 네 달 반은 남미 어딘가를 홀로 전전해야 한다.  바네사는 여행사 투어를 제안했지만 이 역시 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언어를 충분히 배우고 여행을 시작하는 것이 여러 모로 좋을 것이라는 그럴듯한 핑계 아래 어딘가 찜찜한 편안함을 누리려고 했던 나를 직면했다.


 물론 브라질에서 생활을 하는 것만으로도 모든 게 새롭고 들떠있는 기분이었지만 한편으로는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해왔다. '인생은 리허설이 없다!'라는 청춘 드라마에서 나올법한 대사를 블로그에 타이핑을 하며 다음 스텝을 준비했다.


 먼저 가장 무시할 수 없는 예산. 통장 잔고를 옆에 펼쳐두고 앞으로 가게 될 여행지들을 지도 위에 찍어보았다. 차근차근 이동비와 숙박비 그리고 식비 등을 하나씩 가늠해보려 하지만 머리만 아플 뿐이었다. 나는 절대 엑셀로 여행 예산을 깔끔히 정리하는 류의 사람이 될 수 없을 거다.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다 덮어버렸다. "이 정도면 4개월은 여행할 수 있을 거야. 무조건 아껴 쓰면 어떻게든 되겠지"

 

 손을 놓고 있다가도 이내 불안한 마음이 슬금슬금 올라오는 건 어쩔 수 없나 보다. 다른 여행자의 예산을 찾아보니 지금 내 수중에 있는 돈으론 조금 빠듯했다. 여행 중간에 돈이 떨어져 버리면 큰 낭패다. 물론 부모님의 도움으로 충당할 수 있으나 그건 영 모양 빠지지 않은가?


 남미 여행 카페에서 여행 후기를 살펴보던 중 우연히 한 구인 글을 발견했다. 아르헨티나 칼라파테에 있는 후지 여관에서 일할 매니저를 찾는 글이었다. 글을 천천히 읽어보니 너무나도 내 마음에 쏙 드는 조건이었다. 냉큼 맨 아래 적혀있는 메일 주소로 지원 메일을 보냈다. 얼마 안 되어 사장님으로부터 답장이 왔고, 일하는 기간에 대한 조정이 있긴 했지만 여행 마지막 달인 8월 한 달을 후지 여관 매니저로 일하는 것이 확정되었다.


 어쩌다 보니 브라질에서 시작하여  남미를 위로 크게 한 바퀴 돌아 아르헨티나로 가는 여행 루트가 완성되었다.





 늦은 밤, 매트리스에 깊숙이 누웠다. 눈앞에 보이는 건 까만 천장뿐인데 그제야 내가 먼 곳에 와있다는 사실을 더욱 실감한다. 불안이 엄습하여 이불을 목까지 꼭 덮었다. 이제 정말로  혼자가 되어 이 여행을 시작하고 마무리지어야 한다.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그럴만한 힘이 내게 있을까?' 두근거림이 진정 되질 않는다. 하지만 조금 설레는 것 같기도 하다. 쉽게 잠들기 어려운 밤이다.






 서울은 적응이 되었나 싶다가도 낯설고, 이제 조금 알 것 같다가도 전혀 모르겠다. 갈 곳은 넘쳐나지만 머물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공무원인지라 마음먹고 전보를 쓰지 않는 이상 이곳에서 평생 살게 된다. 만약 서울을 떠나는 날이 온다면 무슨 일인지 몰라도 엄청난 결심을 한 거겠지. 서울에 큰 애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럴 일이 없길 바라는 아이러니한 마음.


 나이가 들었는지 이제 편히 뿌리를 내리고 싶다가도 왠지 모를 오기가 생겨 마구 떠돌아다니고 싶기도 하다. 방황하는 걸 즐긴다기보다는 아직도 그럴 수 있는지 한번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건 상상만으론 알 수 없는 거니까. 머무는 쪽이든 떠나는 쪽이든 예상치 못한 인생의 새로운 국면에 다다를 순간이 오겠지. 그럴 땐 이 여행의 시작을 자연스레 떠올릴 것 같다.


떠밀린 줄 알았으나 바라던 대로 유유히 흘러갔던 그때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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