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이 왔다는 걸 온 세상에 알리듯 얼음같이 차가운 기운이 감싸는 아침이다. 웬만한 추위는 버티는 나지만 오늘은 참지 못하고 롱 패딩을 꺼내 입었다. 나는 늘 일찍 집을 나서서 출근시간보다 30분 이른 8시에 학교에 도착한다. 남들보다 부지런한 편이라 볼 수 있지만 그보다는 평화로운 출근길을 사수하고자 하는 노고라 볼 수 있다. 조금이라도 늦게 출근하면 지하철에서는 직장인들에게 치이고, 학교로 가는 좁은 길목에서는 북적북적 붐비는 아이들에게 묻혀 버린다. 아이들이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조용히 걸어간다면 모르겠지만 에너지 넘치는 십 대들은 참새처럼 재잘거리며 씩씩한 발걸음으로 등교한다. 몸이 부르르 떨릴 정도의 추위에 상담실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히터를 틀었다. 컴퓨터 전원을 누르고 곧바로 커피를 내린다. 히터로 순식간에 데워진 공간 속에서 따뜻한 커피를 마시니 몸이 스르르- 녹는다. 고요한 상담실 안에서 멍하니 앉아 있는 이 시간이 소중하다. 그러다 문득 한 문장이 뇌리를 스쳤다. ‘반에 오신 적이 없으심’ 최근에 한 학생이 교원평가에 쓴 글이었다. 쓰인 그대로 나는 학급에 들어갈 일이 거의 없는 상담 선생님이다. 원래라면 학기 초 심리검사를 하기 위해 1학년 학급에 들어가지만 코로나가 시작되면서 그 마저도 어려워졌다. 아마도 이 학생은 ‘반에 오신 적이 없어서 잘 모르겠다’라는 의미로 글을 썼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하지만 학생들에게 상담실이 그리고 상담교사인 내가 동떨어진 존재라는 풀지 못한 숙제를 안고 있는 나로서는 쉽게 넘겨버리기 어렵다. ‘상담교사는 상담만 잘하면 되지 않나?’라고 생각하며 먼길을 바쁘게 오가며 값비싼 상담 연수를 듣고 슈퍼비전을 받았다. 정신없이 학생들이 드나드는 상담실보다는 상담하는 학생이 부담스럽지 않게 조용히 오가는 상담실이 더할 나위 없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했다. 상담 선생님마다 추구하는 상담실이 다르니 나는 나만의 방식으로 운영하면 된다고 자부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고집은 코로나 상황과 맞물려 상담실과 학생들의 거리를 멀어지게 만들었다. 잠시 임용 면접 준비를 할 때를 떠올려 본다. 스터디 동료들과 상담실을 활성화하기 위한 방법으로 명찰 목걸이를 달고 복도를 다니며 홍보하자고 할 정도로 열정이 넘칠 때였다. 물론 반은 농담이었지만 "진짜 그렇게 하면 좋을 것 같은데요?"라고 말하면서 눈을 반짝였다. 여전히 상담실은 지나치게 개방된 공간이 되선 안 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소수의 학생들만 방문하는 비밀스러운 곳이라는 편견을 가지게 해서도 안된다. 학교 안에 상담실이 자리잡기란 생각보다 쉬운 일이 아니었다. 분명한 건 어떤 식으로 상담실을 꾸려나가든 나만의 시선에서만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학생의 시선에서 상담실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또한 아이들이 상담실의 문턱을 넘으려면 내가 먼저 그 문턱을 넘어 그들을 찾아가야 한다. 나의 틀을 깨지 않는다면 어떤 변화도 생기지 않는다.
연말이 되면 자연스럽게 한 해를 되돌아보게 된다. 학교를 생각하면 늘 개운치 않아 마음이 무겁게 가라앉지만 더 이상 막막해하진 않는다. 이번 해에 부족했던 것을 내년에는 아낌없이 학생들에게 줄 수 있도록 단단히 준비해야겠다고 마음을 다잡아 본다. 얼마나 연차가 쌓여야 한 해를 뿌듯한 마음으로 마무리할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