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강남에 간 김에 중고서점에 들렀다. 대로변에 그 많은 화장품, 옷, 소품 등의 구경거리를 두고 말이다.
서점을 구경하다 퀄리티가 꽤 좋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발견했다. 게다가 4,900원으로 커피값밖에 하지 않아 고민하지 않고 구매했다.
아, 또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도 샀다. 이 책은 8,100원으로 좀 더 비쌌다.
지금 살고 있는 집은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에 아주 신중하게 소장할 책을 골라야 한다. 서울에 와서 구입한 책은 대부분 상담과 관련된 책이나 무라카미 하루키 작가, 김영하 작가의 책이다.
다음으로 이사 갈 집에는 반드시 나만의 서재를 만들어야지.
처음 이 책을 읽었을 때는 과거 시점의 와타나베와 비슷한 나이였는데 지금은 현재 시점의 와타나베의 나이와 비슷해져 가고 있다. 그런데 어째서 과거의 와타나베의 마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건지 모르겠다. 아아 인간은 언제쯤 성숙할 것인가- 무의식적으로 그 마음을 간직하려는 건지도 모른다는 그럴듯한 추측을 해보지만..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상실의 시대>는 다시금 누군가를 이해하는 것과 자기 자신을 이해하는 것. 그리고 서로 상처를 주지도 받지도 않는 것은 너무나도 어렵다는 걸 가슴 깊숙이 인정하게 만든다. 바로 인간의 불완전함으로 인해서 말이지.
이런 사실은 정말이지 마음을 무겁고 지치게 만든다. '지금으론 알 수가 없는' 일들은 도처에 깔려있고 나는 그것을 물 흐르듯 흘려보낼 수 없는 인간이라 더더욱 그렇다. 그로써 인생을 복잡하고 어렵게 만든다. 그렇다고 해서 키를 단단히 잡고 운전할 수 있는 우수한 항해사가 되지도 못하니까.
요즘 들어 '나는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라는 생각을 많이 한다. 사실 늘이라고 해야 하겠지만. 이제는 좀 알 것 같다고 확신에 차서 신나하더라도 와르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다. 내팽겨두고 달아날 곳도 없으니 묵묵히 다시 쌓을 수밖에.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또 어디로 도달해야 할지 모르는 채 생을 마감하고 싶지는 않다. 그래서 일을 하고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또 이렇게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거지.
그렇게 하기만 한다면 언젠가 어딘가로 유유히 도달한다는 확신이 있다면 모르겠지만 무라카미 하루키의 말처럼..
"Who knows?"
과연 누가 알겠는가.
아래는 책에서 내가 정말 정말 좋아하는 구절인데 <노르웨이의 숲>과 <상실의 시대> 번역이 확연히 다르다.
<노르웨이의 숲>, 민음사
날씨 좋은 날 노를 저어 호수로 나아가 하늘도 푸르고 호수도 아름답다고 말하는 거나 다름없어요.
고뇌하지 마요.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흘러가야 할 곳으로 자연스럽게 흘러갈 것이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에게 상처를 주어야 할 때는 상처를 주게 되는 법이니
<상실의 시대>, 문학사상사
날씨가 좋은 날 아름다운 호수에 보트를 띄우면 호수도 아름답지만 하늘도 아름답다는 것과 다를 게 없어.
그런 식으로 고민하지 말아요. 내버려 둬도 만사는 흘러갈 방향으로 흘러가고, 아무리 최선을 다해도 사람은 상처 입을 땐 어쩔 수없이 상처를 입게 마련이지.
의미는 달라도 뜻은 통하는 아이러니.
두 문장 모두 고개가 끄덕여진다.
상처를 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더라도 또 상처를 입을 수밖에 없는 순간이 오는 걸 알면서도 그럼에도 최선을 다해야만 하는 거겠지.
'어디까지가 최선이고 또 그런 힘이 나에게 있는가?'라는 의문이 들긴 하지만,
오늘은 여기까지만 하자.
+최신판이라 볼 수 있는 <노르웨이의 숲> 대신 <상실의 시대>를 산 이유는?
표지 디자인과 제목 모두 더 취향이기도 하고ㅎㅎ(무라카미 하루키 작가님은 별로 안 좋아했다지만..)
무엇보다 작가님이 한국어판에 부치는 서문이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