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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Jun 04. 2023

마흔을 넘어보니 인생이 좀 달리 보이기 시작했다

핑크색은 아니더라

나는 몇 살에는 뭐를 해야 하고 몇 살에는 뭘 해야 한다는 둥의 사회적인 강박을 좋아하지 않고 크게 신경도 쓰지 않는 자유주의자로 살아온 편이다. 미혼 여자 나이 서른이라는 꼬리표 따위에 콧방귀도 안 뀌고 여전히 인생에서 못다 이룬 꿈들이 제일 중요했으며, 서른 중반의 나이라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출산보다 유학을 택했던 사람이었다. 마흔 되는 나이에 노산이라는 의학적인 지표마저도 코웃음을 치며 무통마취 한번 생각하지 않고 당당히 자연주의 출산을 했으며, 아이 돌 즈음엔 자가 출판, 아기 때문에 근 이 년째 통잠을 못 자면서도 업계를 완전히 바꾼 이직까지 했고 워킹맘 부서장이 되었다.


여전히 주변에 "늙었다고 스스로 인정하고 한계 짓지만 않으면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따라 우리는 여전히 다 할 수 있다고 믿는다"고 하고 다녔다. 불가역적인 생물학적 노화를 가속화시키는 것은 우리 사회가 가진 나이 강박도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여전히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구분 없이 살아온 나의 20-30대와는 달리 만으로 마흔, (예전) 우리나라 나이로 마흔둘이 지나고 나니 이전의 삶과는 분명히 차이가 존재하는 인생의 새로운 챕터가 열림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 더 이상 예전 같지 않다 #


여행을 가거나 가끔 호캉스를 가게 되면 좋은 점이 많지만, 여태 내가 가장 설레는 부분은 조식이었다. 오래간만에 다양한 메뉴의 신선한 호텔 조식을 먹기 위해서 굳이 일찍 일어나서 부지런히 이것저것 먹어댔다.


그런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설렘도 딱히 맛있는 것도, 먹고 싶은 것도 없다. 먹어도 안 먹어도 이제는 다 무슨 맛인지 알 것 같고, 굳이 다시 확인해보지 않아도 될 것 같다. 나는 이것이 그날 나의 컨디션이나 호텔의 등급, 조식 메뉴 종류 등 상황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이겠거니 했는데, 그 이후 수 번을 해도 역시나 예전의 아련했던 기쁨이나 설렘이 남아있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다고 해서 딱히 최근 상태가 우울하거나 원체 걱정이 많은 성격은커녕, 그냥 소소함에 감사하는 일상이라 이렇게 예전의 감흥만이 제거된 느낌이 당혹스럽기까지 했다.


나의 20-30대는 주머니 사정보다도 정신적으로 너무 가난하고 여유가 없어서, 세계 최고의 식당들이 즐비한 파리와 뉴욕에 거처를 두고 살면서도 제대로 된 식당 한번 가본 일이 손에 꼽았다. 나중에 꼭 다시 이 도시에 좀 더 부자인 채 돌아와서 먹어봐야지 했던 것도 어쩌면 이제는 더 이상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아마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하더라도 당시 나의 형편에 맞지 않게 느껴지는 플렉스를 하면서 만족감을 느끼진 못했을 것이기에 똑같은 선택을 했겠지만, '같은 경험이라도 다 때가 있다'는 말이 점점 와닿기 시작한다.


# 아픈 사람들이 늘어난다 #

   

마흔 즈음되고 보니, 이제는 주변 또래에 어디라도 하나 아픈 사람들이 건강한 사람들보다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크고 작은 수술부터 정신과 약이 아니면 잠을 자기 어려운 상황이 오거나, 평생 약을 먹어야 하는 내과, 안과 등의 질병을 최소 하나씩은 마주하게 되었다. 심지어는 상상도 못해 본 백신 부작용으로 평생의 후유증을 달고 살게 되었거나, 듣지도 보지도 못한 난치성 희귀병으로 갑자기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 경우도 보게 되었다.


내가 일을 과도하게 하던 시절에 망막에 구멍이 났다는 사실을 알리며 건강의 경각심을 일깨우기 위해 소셜 네트워크에 글을 한번 공유한 일이 있는데, 그 글에는 놀랍게도 자기도 과로하다 이런저런 병들을 얻어서 이런저런 고생들을 했다는 병밍아웃 댓글들이 줄줄이 달렸다. 멀쩡해 보였던 주변 사람들도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것을 그때 확인했다.


모 까페에서 의사 분의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나이 40 되어서도 아픈데 없이 건강하다면 좋은 유전자를 물려받은 부모님께 일단 감사해야 한다"라는 말로 시작을 하였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나중에 꿈을 이루고 경제적으로도 어느 정도 안정이 되면 그때는 좀 즐길 수 있는 여유로운 시절이 올 것이라고 굳게 믿으면서 여태껏 살아왔지만, 대부분의 사람이 나이 사십쯤 되면 병도 하나씩 달고 살게 된다는 것은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었다. 갑자기 사기를 당한 느낌이었다.


일반적인 보통의 한국인 생활 패턴을 유지한다면 건강 염려 없이 즐길 수 있는 것 역시 40대가 되기 전이니 인생의 다이내믹한 체험은 더 미리 했어야 하나보다. 물론 가장 이상적인 것은 40대 이후에도 아프지 않도록 그전부터 관리를 잘하는 것이겠지만, 많은 질병의 경우는 유전자에서부터 80% 이상의 인자가 이미 결정되어 있다는 말도 들린다.


# 근심 없는 사람은 없다 #


물론 우리의 이십 삼십 대에도 그 시절의 잠 못 이루는 고민들이 끝도 없었다. 하지만 많은 경우 그 고민들은 나 하나의 인생에 대한 1인분의 고민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했었다면, 이제 사십 대의 고민은 그 무게가 가정, 그리고 조직까지 그 여파가 상당해져 버렸다. 그리고 그 고민의 성격 역시 나 하나 잘해서 쉽게 해결될 수 없는 문제가 대부분이다.


예를 들어 부모님이나 자식 등의 건강을 포함한 집안 문제는 내가 직접 해결할 수도 없으면서도 결코 책임에서 가볍지 않은 주체가 바로 40대들이다. 회사에서도 실수 하나 해도 큰 티도 안 나던 시절을 지나 이제는 위치한 자리에서 하나의 결정이 직접적이고 큰 임팩트가 되어버리는 무게가 되어버린 것이다. 불과 얼마 전에도 건너 건너 정말 아는 사이가 되었을 법도 한 사람이 회사 스트레스로 유명을 달리하게 된 사건을 접하며 충격을 받기도 하였다.


내 주변의 가장 친한 친구들만 둘러 봐도, 이 나이쯤 되면 우리는 모두 당당하고 멋진 커리어 우먼들로 영화 Sex and the City 한편 쯤은 찍을 수 있는 이 시대의 여성들이 되어 있을 줄 알았었는데, 영화에서의 그런 근사한 식사를 일 년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같이 즐길 여유를 만들기조차 쉽지 않다.


40대가 되었지만, 주변을 돌아보면 많은 사람들에게 경제적인 문제 혹은 가정사적인 문제 등은 해결되기는커녕 더 커지고만 있는 느낌이다. 친구들과 자주 얼굴을 보지는 못하지만 종종 퇴근길에 목소리라도 한 번씩 듣고자 통화를 할 때마다, 그래도 내가 넋두리라도 들어줄 수 있을 정도의 마음의 여유는 있는 처지인 것이 참 고마운 것 같다가도, 그들이 각각 처한 상황에 감정이입이 되다 보면 나도 모르게 혼자 있다가도 푹푹 한숨이 나오게 되는 것이 안타깝다.



코로나가 끝났다는 공식적인 선언, 그리고 다시 온 여름과 내가 좋아하는 찌는 듯한 햇볕. 눈부신 햇살 아래, 언제 코로나 같은 것이 있기나 했냐는 듯이 아무렇지 않게 다시 돌아가는 세상을 돌아보면서 나는 이 네 글자를 떠올렸다. 적자생존. 역사는 결국 살아남은 자들의 오늘에 대한 이야기다.


적자생존이란 꼭 코로나와 같은 엄청난 역병이나 사건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매일 느낀다. 오늘도 무탈하게 하루를 살아낸 우리 모두는 “생존한 적자”인 것이다. 이렇게 우리는 벌거숭이로 태어나 꿈 많던 십 대, 열정의 이십 대, 그리고 패기로운 삼 심대를 보내고, 이제는 조금 더 철든 채 인생을 마주한 사십 대가 되었다.


예전만큼의 감흥이나 감성도 없어지고, 어딘가 한두 곳쯤 아픈데도 생기고, 주변 사람들과 나 자신도 더 무게감 있게 돌봐야 하는 그런 나이가 되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예전보다는 스스로에 대한 이해도 더 생기고, 조금은 자신을 용서할 줄도 아는 지혜를 얻었을 것이다. 언젠가 기회가 되면 사십 대가 되어서 좋아진 것들에 대해서도 글을 한번 써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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