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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Jun 18. 2019

"나는 당신이 불편하다." 할 말은 하고 살기

용기가 필요한 그 말

살면서 누군가가 불편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실제로 그렇다고 직접 표현하는 경우는 많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귀찮은 일이기도 하고, 굳이 그것을 꺼냈을 때 당장의 파장이 두렵기도 하고, 이미 발생해버린 불편한 감정을 굳이 발화함으로써 또 다른 새로운 불편함이 추가될 것이 걱정스럽 다. 특히나 나이가 들 수록 그런 일은 투여한 감정적 소모에 비해 결과적으로 그다지 실익이 크지 않다는 경험에 의거하여, 웬만하면 그냥 일 안 벌이고 뭐든지 좋은 게 좋은 식으로 넘어가는 경향이 커진다. 그래도 나는 불편함을 의문과 함께 내버려 두면서 상대방은 이유도 모른 채 슬금슬금 멀어지기보다는, 오해의 여지가 있는 불분명한 불편함의 이유를 확실히 짚고 넘어가는 쪽을 택하는 편이다. 원래 간 크게 태어난 편이라 살면서 긴장을 하거나 두려움을 느끼는 일이 적은 나에게도 그 말은 한 번의 심호흡과, 딱히 별로 소환할 일 없던 '용기'가 필요한 말이었다. 그리고 매 번 그 말을 한 것은 후회보다는 도감을 주었다.




상사인 듯 아닌 듯한 네가 불편하다.


그때까지 내가 10여 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거의 1~2년마다 상사가 바뀌면서도 운 좋게도 상사와 사이가 나빴던 적은 없었다. 그런 평탄한 삶을 살아오다 두루 이슈로 유명한 사람과 빡세게 마주친 그 경험, 정말 인텐시브했다. 엄밀히 말하면 나는 그를 진심으로 상사로 인정할 수 없었고, 그 아마도 그것에 가장 화가 나 있었을 테다. 내가 윗사람으로 인정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면 1)"똑똑하고 실력이 좋아서 배울 것이 있거나" 2)"멍청하지만 그래도 착해서 인간적으로 도와주고픈 마음이 생기게 하거나" 이 두 개다. 물론 실력도 있고 착하면 정말 최고겠지만, 거기까지 기대는 안 한다. 그리고 대부분은 자신의 포지션을 잘 알고, 혹 본인이 좀 모자라다 싶으면 착한 컨셉으로 엄청난 리더십을 발휘해서 어떻게든 아랫것들의 도움을 받아 앞으로 나가는 것이 그나마 훌륭한 상사가 되는 전략이다. 그러나 그본인 스스로를 평가하는 것과 매우 차이 나게, 의미 있는 피드백도 못 주면서 아주 소소한 것까지 죄다 보고하기 바라는 꼰대에, 일을 정말이지 거의 전부 다 떠넘기고는 공은 가로채는 스타일이었다. (사실 그러기 위해 모든 것에 보고가 필요했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본인의 기복 심한 감정을 회사에서 전혀 컨트롤하지 못하고, 기분에 따라 문자 그대로 '소리 지름'을 시전 하는 어이없는 상황이 여러 번 연출되다 못해 따로 얘기를 한 번 하자고 내가 먼저 제안을 했다.


나는 기본적인 감정 기복이 거의 없고 극도로 이성적인 성격이라 평상시에도, 소리 지름을 당하고 있을 때도 그랬듯, 이런 대화를 제안할 때에도 들이받겠다고 씩씩대거나 광분한다거나 억하심정에 훌쩍이거나 할 이유가 전혀 없었다. 내가 명확하게 전달했던 내용은 대략 세 가지였다. 1) 내 몸상태가 이제 너의 그 롤러코스터 감정선을 다 받아줄 수가 없을 것 같으니 앞으로는 주의를 좀 해줬으면 한다. (당시 임신 초기였다.) 2) 간혹 인신 공격성 발언을 하는데 진심인지 확인하고 싶다. (알고 보니 본인 열등감의 발로였다.) 3) 앞으로는 너와 나의 업무를 좀 명확히 분리하는 것이 좋겠다. (그는 나의 무보직 파트장이었다.) 다행히 이런 대화에서까지 비이성적일 정도의 사람은 아니었고, 이후 확실히 좀 더 주의하는 모습을 보였다. 나의 윗사람과 이런 불편한 대화를 하는 것은 상당한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다. 그리고 그건 잘한 일이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그런 대화 정도는 이성적으로 가능한 사람이란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충분한 가치가 있었다.



갑자기 쌩까는 후배, 네가 불편하다.


두 번째로 내가 회사에서 급격하게 불편하게 된 이는 반대로 후배였다. 예전 회사의 싹싹하고 깍듯하여 그저 귀여운 후배들과 달리 이 회사는 그런 것이 전혀 없고, 동료 간에도 업무로 인한 대화가 필요하지 않으면 어제 같이 웃었어도 오늘 지나가다 마주치면 다시 모른 척 쌩까는 문화였다. 그 문화에 적응하는 것이 가장 힘들었지만 사람은 시간만 주면 어떻게든 적응하게 되어있다. 1여 년 지난 어느 날, 화장실에서 마주친 아는 그 모든 사람들과 단 한 번의 눈인사도 없이 나서는 무표정한 나의 모습이 거울에 비치는 것을 보며 순간 소름이 돋았다. 이런 씨.. 너무 적응했는데? 그래도 여전히 나름대로 어느 정도 친하다는 애들과는 인사를 당연히 했는데, 어느 순간 같은 파트에서 1년 넘게 일하던 신입이 내가 팀을 옮긴 이후부터 쌩까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그 신입은 나름대로 팀에서 서로 소문도 공유하고, 점심도 내가 종종 사주고, 심지어 익명 평가에서도 구구절절 나를 좋게 잘 써줬던 후배였다. 설마 이제 같은 팀이 아니라고 갑자기 모른 척하는 건 아니겠지. 여러 번 눈을 마주치고 눈인사라도 내가 먼저 건넬까 틈을 보는 사이 그 후배는 매번 쌩하니 가버렸다.


그것들이 우연이 아니라는 것을 신중하게 결론을 내린 나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 사이에 내가 뭘 잘못한 것이 있나? 얘가 나한테 삐진 것이 있을까? 도대체 왜 저러는 걸까? 아무리 고민해도 나는 도저히 그 이유를 알 수 없었다. 아마도 이때 나는 그 어떤 케이스보다 가장 큰 용기가 필요했던 것 같은데,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혹시 나한테 화난 일이 있니? 나는 나름 친하다고 생각해서 눈인사라도 하려고 보면 네가 너무 쎄한거 같아서 뭔가 내가 화나게 한 게 있나 하구." 돌아오는 대답은 의외로 "어머 죄송해요. 저 전혀 의식을 못하고 있었어요. 화 게 뭐가 있겠어요? 제가 앞으로 주의할게요!"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90년대생인 그녀에게는 그냥 기본 디폴트 값이,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안 하는 것'이었을 이었다. 그녀는 그 뒤로 신경 써서 인사를 하려 했다. 그것을 확인한 후부터는 오히려 그녀나 다른 후배가 인사를 안 해도 신경이 안 쓰였다.



약속을 가벼이 여기는 동료, 네가 불편하다.


세 번째 에피소드는 최근 사에서 가장 친밀하게 지내는 동료와의 일이었다. 그녀와 나는 거의 매일 대화를 하며 집안일이나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을 나눌 정도로 사내 베프가 되었는데, 이렇게 되기까지엔 거의 1여 년간 매주 화요일 고정 점심 타임을 가진 것이 큰 역할을 하였다. 작년에 그녀는 몇 번을 당일에 닥쳐서 갑자기 약속이 생겼다며 파토를 냈었는데, 예전의 나였다면 그때부터 이미 다시는 그녀와 약속을 잡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 수록 좀 덜 까칠해지자는 나의 다짐을 상기시키며 별 말없이 넘어갔었다. 다행히 그녀는 스스로 자가 반성을 하면서 앞으로는 미리미리 일정을 협의하겠다고 했고, 우리는 이변이 생기면 최소 1~2주 전에는 서로에게 일정과 사정을 공유하는 이상적인 시스템을 구축하였다. 그러면서 내가 그간 회사를 다니며 구축해온 점심시간을 이용한 확실한 기분 전환의 비밀병기 등을 마구 공유하며 우리는 더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몇 개월의 평화도 잠시, 이번에는 정말 점심시간 몇 십분 전에 자기가 다른 약속이 있었던 것을 깜빡했다는 것이다. 아무리 더 친하고 덜 친한 사람과의 약속이라도 먼저 있는 약속을 칼처럼 지키는 나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것도 매번 바뀌는 약속이 아니라 일 년 가까이 같은 요일에 고정한 약속을 어떻게 까먹는다는 건지?!

 

점심 내내 고민을 해보았다. 이번에도 그냥 넘어가고 이대로 그냥 쿨한 사람으로 남는 것을 선택할 것인가. 이미 신뢰가 깨진 이상, 더 이상 친한 채 진심으로 쿨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원래 나의 모습대로, 솔직한 쪽을 택하기로 했다.  "수백 명 듣는 강연이라도 한 번 간다고 신청하면 단 한 번을 빠져본 적 없을 정도로 평생 신의를 중시하며 살아온 나로서는, 네가 그렇게 약속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것을 정말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어. 내가 굳이 이런 불편한 얘기를 하고 넘어가는 이유는, 이런 말을 직접 한 것은 내가 처음일 수도 있겠지만 이런 기분을 느낀 것은 분명히 처음도 마지막도 아닐 거 같기 때문이야." 그녀는 백번 본인의 잘못이고, 애정을 가지고 굳이 불편한 얘기를 해준 것에 매우 고마워했다. 그러나 또 계속 이대로 가는 것은 아닌 것 같아 나는, "서로를 위해서 이제 고정적으로 점심 약속하는 것은 이제 그만하자. 시간 될 때 있으면 그냥 자연스럽게 정하는 것으로"라고 하면서도 혹시 너무 비난하거나 몰아 대는 느낌을 주지 않으려고 덧붙였다. "이번 기회에 나도 그간 외부 네트워킹에 좀 소홀하지 않았나 반성의 기회도 갖고^^"라고 굳이 이모티콘까지 덧붙였지만 사실 전혀 웃고 싶은 기분은 아니었다. 까칠한 내가 아닌 듯 살아가느라 진짜 용쓴다.. 싶었다. 그래도 몇 번이고 미안하고, 앞으로 본인이 더 잘하겠다고 하는 그녀를 보면서 '그래, 생각보다 개념 없는 애는 아니었어. 내가 사람을 영 잘못 본 것은 아니었네.' 안도감이 들었다.




아마도 대부분의 무던한 사람들은 왜 이렇게까지 피곤하게 사냐고 할 것이다. 하지만 나와 같은 센서티브한 사람들은 그것을 내버려 두는 것이 더 피곤하다. 왜냐하면 분명히 거슬리는 것을 아무렇지 않은 척 꾹꾹 눌러서 어딘가로 치워버린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뭐, 그렇다고 나도 매번 거슬릴 때마다 그런다는 것은 아니고, 대기업의 말년 과장이 될 때까지 이렇게 딱 세 번 있었던 일이었다. 


의미 없는 다수의 사람들에게 무던해 "보이는" 사람으로 남기보다는, 의미 있는 소수에게라도 "진실된" 사람으로 남으려 한다. 다른 것보다 진심과 진실을 인생의 중요한 가치로 좇는 삶이 상대적으로 더 피곤한 일일 지라도 그게 "진짜" 나이니까. 그리고 분명한 것은, "용기"를 내는 것은 삶에서 반드시 응답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적어도 나의 경험은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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