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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Jun 11. 2020

전업 육아로 리더십 연습 기회를 얻게 되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부터

30대가 되어서야 생애 첫 미국 유학을 준비하면서 문화 충격이랄까 적응이 필요했던 부분은 "리더십"에 대한 재정의였다. 평생 국내 정규 교육을 바탕으로 자란 나는 "리더십"이라는 것은 거의 "완장" 혹은 "계급"과 동의어에 가까운 개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반면, 서양인들이 만든 용어인 "리더십"의 참 뜻은 "어떤 직급, 상황에서도 적극성을 발휘하여 변화를 이끌어내고 주도할 수 있는 능력"에 가까운 개념임을 '하버드 MBA가 선택한 리더십 에세이' 수십 편을 읽고야 렴풋이 받아들일 수가 있었다. 이후 나 역시 언제 어디서든 리더십은 단련될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살게 되었는데, 출산을 하고 집중적인 육아를 하는 지금, 잠시 회사는 나가고 있지 않지만 인간 사회에 필요한 리더십은 더욱 고민하고 연습 중이다. 내가 집중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세 가지 포인트를 정리해본다.



1. 까칠함보다 동정심 유발이 더 효과적이다.


회사 생활을 하다 보면 잘 나가는 리더라는 사람들이라면 특정 영역들에서 혀를 내두르게 할 만큼 고집스럽게 까다로운 부분이 없는 사람이 없는데 (그렇기 때문에 그들이 그 자리까지 간 것이 아닌가!), 그 뾰족함을 얼마나 티 내며 다른 사람들을 질리게 하는지, 아니면 그럼에도 큰 저항 없이 적극적인 지원을 얼마나 이끌어내느냐 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이다. 뒤에서 저주받는 리더들은 대부분 자신의 높은 기준을 가지고 부하직원들을 몰아세우는 방식으로 일을 처리하고, 소속이 바뀌어도 그나마 좋은 인연을 이어가는 리더들은 종종 동정심 유발 작전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여 아랫것들을 열심히 일하게 만든다. 예전의 소위 "사람 좋다는" 부장님들은 이런 것을 거나한 (대부분 비공식) 술자리에서 전략적으로 수행하곤 했는데, 이제는 음주 문화와 세대가 많이 바뀌었으니 전술도 다소 수정은 필요해 보인다.


나 역시 육아 세계에서 위생 및 환경 호르몬에 있어서 결벽증 수준의 몹시 까다로운 기준이 있는데, 이것을 신랑을 포함한 조력자들에게 강요하는 방식으로 육아를 할 때는 항상 분위기가 안 좋게 끝났다. 그들이 도와줄 때에는 내 기준에 거슬리는 것이 있어도 최대한 못 본 척하고 넘기거나 정 찝찝하면 몰래 티 안 나게 내가 스스로 추가 처리하고, 전체적인 과업 수행의 힘듦을 약간 오버해서 토로하며 다른 어려운 일들을 부탁할 때에 훨씬 더 좋은 그림이 나왔다. 임신 초기에 인생의 대 선배가 내게 해 준 가장 큰 육아 조언, "네가 성격상 못할 것 같아 미리 얘기하는데, 절대로 씩씩한 척하면서 알아서 다 하지 말고 최대한 엄살 부려라." 정말 깨알 같은 가장 유용한 조언이었다.    


2. 부족한 것이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


팀에 팀원이 여럿 있지만, 개별 플레이어들의 기여도는 정말 천차만별이다. 여기에도 어김없이 파레토의 법칙은 적용되어 20%의 인력이 80%의 일을 하고, 나머지 80% 중에서도 20% 정도는 그야말로 대놓고 놀고먹는 수준의 심각한 잉여 인력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럴 경우 어떤 동기부여도 먹히지 않고 요지부동한 그 20%는 차라리 없는 것이 조직의 전체적인 효율 측면에서 나은 까? 나는 그렇다고 생각했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 어차피 그 잉여인력은 효율적인 인력으로 대체할 수 없는 TO인 상황 (해고가 자유롭지 않은 우리나라 덩치 큰 기업인 경우)에서, 분위기를 해치는 암적인 존재로 있는 것이 없는 것보다 악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리더가 활용하기에 따라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포기하고 아무것도 안 시키는 것보다는 아주 소소한 부분에라도 인력 활용을 하여 전체적인 전력의 단 1%라도 기여를 하는 것이 그 팀의 총 후생 측면에서 낫다. 그로 인해 잡일을 도맡던 막내 사원이 단 5분이라도 일찍 퇴근을 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그 사람의 기여라고 생각한다면?


거의 매일 전담하여 아기를 보는 나에 비해 신랑이 아기를 볼 때는 당연히 어설픈 것 투성이다. 내가 중심이 되어 아기를 볼 때는 조금만 울어도 배고픈 것 아니냐며 젖을 주라고 닦달하던 그가, 온전히 아기를 맡겨놓고 몇 시간 외출을 간만에 한 번 하고 오니 게임하다 정신 팔려 몇 시간이나 굶겨 아기를 자지러질 지경으로 만들어 둔 것이 아닌가? 그래도 화를 내지 않고 넘길 수 있었던 것은, 수유 한 텀 건너뛴다고 아기가 크게 잘못되지는 않았고, 어쨌거나 완벽하지는 않아도 어쨌든 아기를 "보고는" 있었기에 나는 정말 오랜만의 외출이라도 한 번 할 수 있지 않았던가? 좀 못한다고 됐다 관두라며 "차라리 내가 다 하고 말지" 하기보다는, 좀 못해도 그 인력을 잘 활용하는 편이 장기적으로 점점 더 낫다.


3. 먼저 해본 게 옳다는 뜻은 아니다.


노련한 리더는 팀원들에게 다양하고 깊은 경험을 바탕으로 가이드나 인사이트를 제공하지만, 그보다 더 유능한 리더는 팀원들의 고유 역량과 개성을 발휘하도록 기회를 주어 본인이 스스로 전부 했을 때보다 결국 더 나은 성과를 낸다고 생각한다. 최종적인 그림을 명확하게 커뮤니케이션하는 것은 당연하고, 그 과정에 대해 디테일하게 가이드를 준다면 당장에는 빠르게 업무를 처리할 수 있을지 몰라도 그 결과는 본인이 경험한 것 이상을 뛰어넘을 수가 없다. 반면, 방향만 명확히 제시하고 문제를 자발적으로 해결할 기회를 준다면 상상한 적 없는 방법으로 다양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것도 보게 될 것이다. (물론 당연히 더 망할 수도 있긴 하다!)


실제로 남편에게 해결해야 하는 과제들만 던져주고 구체적인 방법론은 설명 없이 그냥 자리를 비웠더니 내가 생각지도 못한 방법으로, 훨씬 더 좋은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기저귀를 갈 때는 엉덩이를 보송하게 말리는 것이 좋겠다"라는 제에는 생각도 못했던 손풍기를 도입해 전적으로 활용하는 등 주양육자였던 내가 아예 부재한 상황에서 본인이 스스로 해결하는 과제가 되었을 때에는 더욱 적극성을 띠면서 본인의 방법을 찾는 것이었다. 기저귀 갈이는 내가 훨씬 먼저 시작했고 수십 번도 더 많이 갈았지만, 처음 해보는 그가 나보다 창의적이고 효과적인 방법을 찾았기에 나도 이후 그 방법을 배워 적극적으로 도입하였다. 리더는 본인이 조금 먼저 해봤다고 자신의 경험이 옳다고 고집하기보다는 더 잘할 수 있는 팀원들을 믿고 그들의 잠재력이 잘 발휘될 적절한 기회를 주오히려 그들에게 배울 수까지 있다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아기를 키우는 데에 있어서 여전히 대부분의 경우는 주양육자가 엄마가 되기 때문에 양육의 철학, 스타일, 주도권 등은 대부분 엄마에 의해 결정된다. 아이를 키우는 것을 하찮은 뒤치다꺼리의 연속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양육이라는 과업에 있어 스스로가 리더라고 생각하고 주도적이고 전략적으로 해낼 수 있다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생각된다. 원했건 아니건 결국 내가 리더인 업무인데, 남편을 포함한 다양한 주변 인력들을 잘 가동해 크고 작은 도움을 최대한으로 잘 이끌어내며 평생의 과업을 조화롭게 잘 수행해보자. 회사에서도 그렇듯 인생에서의 다양한 과업에서도 서포터들의 협력을 얼마나 조화롭게 잘 이끌어 내는가에 따라 과제의 성과뿐 아니라 나와 주변 사람들의 삶의 질이 달라질 것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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