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명물고기 Jul 09. 2019

늦깎이 부모 준비, 노산.. 너무 걱정 말아요

나이보다 중요한 것들은 많다

물리적인 나이에 대한 강박이 심각한 우리나라에서는 몇 살에는 무얼 해야 하고, 몇 살에는 뭘 이루어야 하고 등등 나이로 묶어 도매금 하는 일이 상당히 많다. 당장 서점가의 책들만 하더라도 삼십 대에는 어쩌고 마흔에는 어쩌고 하는 책들이 수두룩하다. 개인의 성장, 쇠락 곡선이라는 것에는 본인이 하기에 따라 속도와 깊이의 차이가 상당히 많은데 그런 것은 깡그리 무시하고, 그 나이에는 뭘 해야 하고 말아야 하는 것이 그리도 많은지. 자식을 본인의 화신으로까지 착각할 정도로 중시하는 우리나라의 정서상, 임신 출산에 있어서도 나이는 너무도 중요한 고려 요소이다. 조금 늦다 싶으면 노산이라는 것 자체에 상당히 집중하고 죄악시하는 분위기에서 커 온 많은 예비 부모들이 이르지 않은 결혼에 출산까지 계획하는 경우 일단 온갖 걱정 및 죄책감을 뒤집어쓰고 시작하는 분위기가 없지 않다. (임신 출산에 있어 걱정, 스트레스가 가장 큰 적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60여 년 전에 제정되었다고 일컬어지는 기준, '만 35세 이상' 출산천편일률적으로 노산이라고 규정하고, 여자든 남자든 그 나이를 기점으로 임신 출산을 하는 경우에 안 좋은 이벤트들이 많다는 이야기들이 주기적으로 기사화되어 올라온다.  이야기들이 일반화되어 무기력하게 스트레스, 끝없는 불안 요인으로 남아있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글을 써 본다.




질 좋은 자/정자 순 소진설


여자들은 이미 태어날 때 평생의 난자를 가지고 태어나고, 상태가 좋은 난자 순으로 매월 하나씩 배출하다 35세부터 태가 점점 멀쩡한 난자가 별로 남아있지 않아 임신이 어려워진다는 무시무시한 이야기터, 정작 아이의 기형이나 정신질환 확률 남자 쪽 나이 더 큰 상관관계가 있다며 아빠 나이 노산이 더 큰 문제라는 이야기.(이런 연구는 반대쪽보다 희한하게 덜 알려져, 참고를 위해 글 하단에 링크 첨부) 그렇게 모든 세포가 무조건 상태 좋은 순서대로 소진이라면 한 번 실패한 사람은 날이 하루라도 더 지나갈수록 점점 더 실패해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무수히 본다. 정말 여러 번, 심지어 몇 년을 실패 후 결국에는 임신에 성공하는 무수한 사람들을. 인공수정, 시험관 등의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가운데 갖은 노력으로 실제로 객관적으로 난자의/정자의 질이 개선되었다는 경우도 종종 본다. 모순적이지 않은가? 나이는 분명히 하루라도 더 늙어가 갈수록 상태 덜 좋은 애들만 남는다더니? 그리고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요즘은 젊은 사람들도 인공수정, 시험관을 진행하는 경우도 상당히 본다.


질 좋은 세포가 무조건 이길까?


나도 여태껏 나이가 더 많은 여자의 임신이 힘든 이유가 난자 즉, 초기 세포 상태가 안 좋기 때문에 임신이 잘 안된다는 줄 알았다. 그런데, 같은 사람의 것이라도 애초의 상태가 더 좋은 수정란이 실패하고 상태가 상대적으로 더 나쁜 수정란이 성공하는 경우도 왕왕 있다는 것이 아닌가? 이 얘기를 실제 시험관을 진행한 지인의 경험담을 자세히 듣고알게 되었는데, 수학적으로 딱딱 떨어지는 것이 아니기에 생명이 더욱 신비하게 느껴졌다. 그녀가 얘기해준 바에 따르면, 런 것이었다. 시험관 아기를 진행하는 사람이 과배란 주사를 맞고 한 번에 여러 개 배란된 난자들을 체외에서 수정을 시키고 배양을 하면 그중 몇은 죽고, 몇은 살아남는데 그 배아들의 상태에 따른 등급이 있다고 했다. 그녀는 A급 배아 여러  수 번 이식을 해도 매번 실패하여 결국 더 이상 A급이 남아있지 않아 B급 배아로 넘어가 시도를 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B급 첫 회에 바로 성공하여 수년만에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간 덜 건강해 보였던 세포도 사실은 더 큰 생명력을 가진 인연이 있는 개체였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나의 한 번의 성공이면 성공인 것이지 남의 통계가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실제로 의사가 배아의 등급과 성공 확률이 꼭 정비례의 상관관계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단다.


나이가 들면 꼭 체력이 나쁠까?


만일 계속 똑같은 상황(잠, 식습관, 운동량 등)을 유지한다면 맞는 얘기다. 하지만 오히려 자기 분야에 자리를 잡고 여유가 더 생겨 잠도 많이 자고 체력을 회복한다거나, 나이들면서 운동 습관까지 다져서 체력이 심지어 더 강화될 수도 있다. 나 역시 일개미처럼 산더미같이 주어진 일을 쳐내느라 바쁘던 20대 시절엔 항상 어딘가 고장 난 듯 주기적으로 을 맞아야 했고, 과부터 이비인후과까지 각종 병원 투어가 정기 코스였다. 30대 초중반에는 이어지는 야근에 개인적인 목표까지 더하여 늘 잠 부족에 좀비 같은 상태로 하루하루를 버텼던 기억이다. 기본적으로 상당한 노가다 시간이 필요한 잡무는 줄어들고, 개인적인 목표도 이루고 난 지금의 나는,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여유가 생겨 오히려 20대~30대 중반 시보다 몸 컨디션이 훨씬 좋다. '마녀 체력'을 쓴 저자 이영미 나이가 들면서 운동을 시작하여 40대 현재 예전 그 어느 때보다 훨씬 체력이 더 좋다지 않았던가? 나이 탓 하면서 체력 저하를 외치려거든, '나는 평생 주어진 상황을 극복할 노력을 더 할 생각은 없다'는 뜻은 아닌지 생각해보자. 


하지만, 첫째 때 체력과 둘째 때 체력이 확실히 다르다고?


그건 너무도 당연하다. 첫째를 낳던 때와 둘째를 낳는 때가 달라진 것이 과연 나이뿐일까? 이미 첫째의 출산 및 이후의 집중적인 육아로 인해 육체적으로 상당히 소진되어 있는 상태에서 하나를 더 얹는 것이라 당연히 더 힘들 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안 드는가? 사람이 같다고 나이를 제외한 모든 변수가 같은 거라는 은 완전 잘못된 분석이다. 나이보다 더 큰 차이점은 어쩌면, 이미 집중적인 양육을 하고 있다는 완전히 달라진 상황이다. 첫째를 낳았던 나이에 둘째를 낳았더라도 분명히 더 늦게 낳은 첫째보다 훨씬 힘들었을 것이다. 그러니 '내가 둘 낳아보니 첫째 때랑 둘째 때랑 몸 자체가 너무 다르니, 무조건 하루라도 빨리 낳는 게 정답'이라는 말은 적당히 걸러 듣자. 그리고 상대적으로 혈기 왕성한 젊은 에너지가 많을 때 커리어에 투자하는 것이 어짜피 언젠가는 어떻게든 낳고 키우게 될 출산 육아에 투자하는 것보다 더 비효율적 선택이었을까?


아니, 더 수월할 수도 있다.


나는 오히려 남들보다 늦은 시작이 더 유리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1) 부모 됨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더 하고, 내가 원하는 삶에 대한 보다 확고한 철학이 수립된 후 확신을 가지고 안정감 있는 가족계획을 할 수 있다. 2) 이미 주변에서의 시행착오나 어려움에 대해 간접 경험을 통해 미리 숙지하고 있기에 불필요한 것들에 에너지 낭비를 줄이고 지름길로 갈 수도 있다. 3) 사회적인 내 상황을 더 통제할 수도 있다. 회사에서도 눈치 볼 대상이 더 적어지고, 그간 다져놓은 입지가 얼마간의 공백으로 흔적 없이 사라질 확률도 더 낮다. 4) 이전보다 경제적 여유가 더 있어서 다른 면에서 걱정이 덜한 환경에서 임신과 양육을 준비할 수 있다. 만일 지금의 내가 아니라 10년 전의 내가 그때부터 애를 키우기 시작했다면, 지금과 같은 집에서 살고 있지 못했을 것이고, 아마 평생 그것은 더 이루기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을 것이다. 5) 나이가 들면서 쌓여가는 나와 세상에 대한 이해가 그 모든 일에 도움이 된다. 10년 전의 나보다 지금의 내가 더 행복한 이유는 그때보다 나를 더 잘 이해하고, 스스로의 마음을 더 다스릴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또한 예전의 나보다 삶에 대한 전반적인 지식과 지혜도 더 많이 쌓여있다. 이를테면 이제는 소소해 보이는 환경호르몬이 생명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 살면서 어떤 것들을 주의하는 게 좋은 지 등을 예전보다 훨씬 많이 안다.




어릴 때부터 평생 최선을 다해 열심히 살면서 공부하고 직업적 성취를 이루던 그 모든 여정이 단지 '완벽한 엄마'나 '친구 같은 아빠'가 되기 위한 게 아니었던 나와 같은 사람들은, 자식이라는 또 다른 삶을 책임져야 하기 전에 해야 할 것들이 많다. 어차피 그들은 다시 돌아가더라도 자신의 젊은 한창 때를, 아직 알 수도 없는 미래 자식들의 혹시라도 모를 안위에 대한 불안감과 맞바꾸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 사람들이나, 혹은 원했지만 어쩔 수 없이 노산을 마주하게 된 사람이라도 비로소 부모가 될 때가 왔을 때, 스스로 노산이라고 노심초사하거나, 태어나기도 전부터 괜한 미안한 마음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신, "이제는 드디어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완전한 준비가 되었다"라고, "이제는 다른 그 무엇보다 너를 온전히 사랑 준비가 되었다"고 스스로 당당했으면 좋겠다. 물론, 그런 마음뿐만이 아니라 다른 것에 최선을 다해온 만큼 이 부분에 스스로도 프탈레이트 범벅의 향수나 맹독성 네일, 그리고 술 담배 등의 유해한 환경에서 의식적으로 벗어나고 건강한 식단으로 몸을 정화하고, 노쇠하지 않은 체력과 에너지를 갖추기 위한 노력은 별도로 신경 쓸 것 아닌가. 좋은 유산은 조금 더 젊은 세포보다도, 항상 상황에 최선을 다하고 늘 노력으로 불리함을 이겨내온 삶의 모범적인 태도가 아닐까.


ps1. 제가 실제로 임신 준비를 하고 성공을 한 경험에 대 상세히 공유한 글도 있으니 관심 있으시면 여기를 참고하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ps2. 참고로 지식 공유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남자 노산에 관한 기사를 덧입니다. 물론 여전히 물리적인 집단의 나이보다 개인 환경적인 노력이 더 큰 차이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작가의 이전글 장래희망, 어른에게 묻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