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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Oct 22. 2020

아기가 있어 못할 것은 (거의) 없다

그냥 같이 하면 어때

나처럼 어떠한 제3자의 도움 없이, 종일 어른의 대화 한 마디 할 상대 없이, 홀로 오롯이 하루 종일 아기를 보고 있는 상황에서 스스로는 사라지는 듯한 느낌을 받을 때 우울해진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었다. 하지만 조금만 달리 생각해보면, 아기 돌봄에 절대적으로 소요되는 시간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그 외의 시간에는 아기가 있다고 해서 아예 못할 것이 꼭 그리 많은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내가 정말 아기 때문에 못하고 있어 아쉬운 것이 딱 하나 있다면, 임신에 이은 모유 수유로 작년부터 강제로 금주하고 있는 것 정도인 것 같다. 술 마시는 것마저 사실 나처럼 모유 수유를 8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하고 있지 않은 대부분의 사람들은 얼마든 가능한 이야기이다. (나는 전업 육아 기간 중 모유수유가 완전히 끝난다면 무조건 낮술을 즐기고야 말 테다!) 자유로운 외출이나 늦은 약속 등과 같은 외부 활동을 제외하고, 집 안에서 아기와 양립하는 삶에 대한 얘기를 좀 해볼까 한다.



1. 나의 기분전환 비법, 탕 목욕


예전부터 몸이 좀 노곤하게 으슬으슬하거나 왠지 다운되거나 할 때 반신욕이나 탕 목욕을 하면 기분 전환에 직방이어서 가끔씩 시간을 내어하곤 했다. 임신 전에는 그러면서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면 정말 집에서도 휴가 기분을 만끽할 수 있었는데, 이제는 '와인' 대신 '아기'와 함께하는 탕 목욕을 즐긴다. 아기도 씻겨야 하고, 나도 목욕도 하고 두 가지 과제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다. 보들보들 폭신한 아기를 꼬옥 안고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으면, 와인과는 비교할 수 없는 전혀 다른 종류의 훨씬 더 큰 행복감이 밀려온다. 아기에게도 이 시간은 매우 좋은 시간인 것이, 피부는 제2의 두뇌라고 할 정도로 아기의 두뇌 발달에 직접적인 신체 접촉만큼 효과적인 것도 없다고 한다. 따뜻한 감정적인 교감과 엄마와의 추억은 덤이다. 나는 아기가 신생아 티를 벗어나면서부터 종종 같이 탕 목욕을 하였고, 완모를 하는 입장이라 배가 고프면 욕조 안에서 심지어 수유도 하는데, 이런 시간은 아기에게도 나에게도 매우 특별한 기억으로 남을 것 같다.


2. 지인들과의 연락


요즘은 회사 다니던 때보다 주변 사람들과 '음성'으로 통화를 하는 일이 더 많아졌다. 일단 카톡 등의 문자를 보내려면 꽤나 오랜 시간을 연속적으로 화면만 들여다보고 있어야 하는데, 그런 시간만큼 아기는 관심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절대 간과하면 안 되는 일 중 하나다. "스마트폰이 아기에게 안 좋을 때는 직접 화면에 노출되는 상황보다도, 부모가 아기를 앞에 두고 아이가 아닌 폰만 쳐다볼 때가 훨씬 더 안 좋다"라는 책의 한 글귀를 본 후, 최대한 아기가 깨어 있는 상황에서는 화면을 덜 쳐다보고자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그래서 지인들과 소소히 연락을 주고받을 때에는 차라리 스피커폰을 크게 켜 두고 말을 하면서 눈은 아기를 보고 있는 편이 낫다. 또 그러면서 다양한 단어가 포함된 대화, 여러 말소리를 최대한 노출시켜 줄 수 있기 때문에 현재 폭발적인 두뇌 발달 시기의 아기에게도 큰 도움이 된다. 예전 대가족 시대에 비해 요즘은 핵가족화로 아기를 혼자 보는 경우가 많아, 아기 두뇌 발달을 촉진하는 충분한 일상생활 대화에 노출이 어려운 상황이라 오히려 필요한 용건이 생길 때마다 일부러라도 음성 대화를 들려주려 한다. 그리고 코로나로 인해 오래 만나지 못했던 지인들과 음성 통화를 꽤 길게 하니 카톡만으로 대화하던 때보다 오히려 마치 오래간만에 실제로 만난 듯한 착각마저 들 때도 있다.


3. 아기와 함께하는 일상 과제


설거지나 요리, 정리 등을 할 때에 아기를 웬만하면 하루에 한 번씩은 하이체어에 앉혀두거나 포대기를 하고 엄마가 무엇을 하는지 구경을 시켜준다. 혼자서 무언가를 탐구하고 잘 놀고 있을 때에는 당연히 내버려 두고 내 일을 하는 것이 낫지만, 대부분 멀리서 떨어져서 집안일을 하고 있으면 가드 입구까지 나와서 목 빼고 나를 궁금해하거나, 혼자 내버려 두지 말라고 낑낑대거나, 불쌍한 표정을 짓고 멀찍이 나만 바라볼 때가 있다. 그럴 때는 내가 일하는 옆이나 등 뒤에 두고 모습을 가까이서 보여주면 아주 신기해하면서 머릿속에 여러 가지를 집어넣고 있는 느낌이다. 전통 육아를 연구하며 알게 된 아기 띠보다 포대기가 좋은 이유는, 1) 무게를 지탱하는 구심점이 척추에서 멀어질수록 허리에 무리가 많이 가는데 포대기는 척추에 가장 가까이 무게를 지탱하는 방식이라 신체에 부담이 가장 적게 가고, 2) 포대기는 매는 사람의 손과 신체의 앞면이 자유로워져 손을 쓰는 대부분의 일상 과제를 해결하는 데 전혀 문제가 없으며, 3) 아기가 보는 시야의 방향이 엄마와 같기 때문에 엄마가 뭘 하는지 정확히 볼 수가 있다는 장점이 있다고 한다. 또한 포대기를 하고 있으면 4) 아기가 따뜻한 엄마 등에서 매우 편안해한다는데, 실제로 프랑스 친구에게 포대기를 보내주었더니 본인이 처음으로 5개월 된 아기를 업고 정원 일을 1시간 넘게 이어서 할 수 있었다며 매우 고마워했었다.



포대기를 둘러매고 논밭을 매고 일상생활을 이어갔던 우리의 선조들이 그랬듯이, 아기를 키우는 것은 원래의 삶을 이어나가는 과정에서 아기라는 추가 변수를 더해 일상에 녹여내는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아기의 탄생과 동시에 가족의 중심이 아이 기준으로 돌아가는 영미권과 다르다고 주장하는 프랑스의 육아 철학에서도 공감했던 부분이, 육아란 아기가 이 세상에 나왔으니 "아기가 이 세상에 맞추어" 적응하며 잘 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라는 부분이었다. 한국인의 정체성 대한 책에서 현대의 우리나라 사람들의 정서가 미국의 것과 가장 비슷하다는 글을 책에서 본 적이 있는데, 최근의 우리는 아기의 탄생과 동시에 아기를 삶의 모든 것의 중심으로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 아기가 아무리 어리더라도 아기 관련 과업은 전적으로 별도로 헌신만 하는 시간이고, 아기가 자야지만 '나의 과제'를 돌볼 수 있다고 생각할수록 육아가 부담되고 어려워지는 것 같다. 나의 계속된 삶에서 아기를 자연스럽게 녹이는 방법들은 얼마든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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