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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Mar 24. 2021

환경 호르몬, 절대 잊지 않아야 할 이슈

다른 것은 몰라도 이것만은 유난을

연장했던 육아 휴직마저도 막바지에 접어들었고, 그간 육아 경험과 그 과정에서 느낀 것들을 쓴 글들을 모아 책으로 출간하기 위해 마무리 작업을 하고 있다. 블로그와 브런치에 이슈의 깊이와 글의 성격에 따라 나눠서 썼던 것들을 다 모아보니 이 주제로 모일만한 것이 대략 60여 편으로, 별로 쓴 것 없다 생각했는데 그래도 나름 약 일주일에 한 편 정도는 썼던 모양이다. 이제는 오히려 뺄 것을 빼고 추려 한 권의 책으로 갈음기에도 바쁜데 굳이 추가로 한 편을 더 작성하였다. 내 책을 보게 될 독자뿐 아니라, 그간 나를 구독해온 독자들에게도 꼭 빠뜨리지 않고 해주고 싶은 얘기 남았기 때문인데, 그것이 바로 이 환경 호르몬 편이다. 여태 나의 다른 글은 하나도 읽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이 글만은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한다.



1. 왜 요즘 아이들은 너무 빠를까


지금 내 아이 또래를 첫째로 키우는 사람들이 주변에 또래만 있다면 잘 모를 수도 있지만, 아이들의 성조숙증 문제는 요즘 주변에 너무도 만연하여 놀라울 지경이다. 이미 첫아이가 초등학생인 친한 친구들이나 친척 등 주변에 초등학교 저학년 여자아이들이 있는 경우 이 문제에서 비껴가는 일이 별로 없다. 예전 우리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요즘 아이들은 가슴도 빨리 나오고 월경도 빠르다는데 (이 경우 키가 다 크기도 전에 성장이 더뎌지기 때문에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문제는 진단은 명확한데 딱히 근본적이거나 극적인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지금 아직 걷지도 못하는 아이들을 키우는 입장에서 당장 와 닿지 않을 수도 있지만 지금부터 분명히 신경 써야 할 문제인 이유는, 가장 큰 원인으로 지목되는 것이 일상생활의 환경 호르몬 문제가 가장 클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조리원에 오래 계신 선생님들도 그런 말을 했었다. "옛날 아기들은 조리원에 와도 대부분 머리카락이 거의 없는 상태였는데, 요즘은 애들이 조리원에 도착할 때부터 이미 머리가 새까만 상태로 뱃속에서 다 커서 나온다." 산후 마사지해주시는 아주머니도 그런 말씀을 하셨다. "예전에는 백일에도 고개를 가누지 못하고 돌 지나야 겨우 걷는 게 일반적이었는데, 요즘 애들은 백일에 이미 고개가 빳빳하고, 돌 정도 되면 많은 아이들이 이미 걷고 있어서 놀랄 지경이다." 이것이 비단 요즘 아이들은 잘 먹어서만일까? 나는 이미 태어날 때나 아주 어릴 때부터도 환경호르몬에 지속적으로 많이 노출되어서 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나만의 개인적인 상상이 아니라 실제로 그런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많다.



2. 눈에 바로 안 보이지만 엄청난, 환경 호르몬의 반격


환경 호르몬에 관해 관심이 있는 사람이 있다면, 이 한 권의 책을 읽어보기를 강력히 추천한다.  린드세이 벅스의 <환경 호르몬의 반격>이라는 꽤나 두꺼운 책인데, 이 주제에 관해서는 이 책 한 권이면 충분할 수준이라고 생각되었다. 저자는 그야말로 DES(diethylstilbestrol)라고 하는 합성 호르몬의 피해자로 평생을 살아왔고 그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나중에 스스로 의사가 되고 연구를 한 사람이다. 예전에 조산 방지 약물이라며 DES를 의료계에서 적극적으로 처방한 시절이 무려 30여 년이 있었는데, 당시에 태어난 아이들이 훗날 커서 각종 부위의 복합적인 암 등에 시달리기 시작하면서부터야 완전히 금지되었다고 한다. (그만큼 온갖 화학 물질들의 부작용이 아직까지는 입증 안된 것들이 있더라도 앞으로도 얼마든지 더 많이 밝혀질 수 있다는 뜻이니 더욱 약물이나 화학물질 사용에 신중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DES라는 특정 합성 에스트로겐까지 가지 않아도 생활 속 온갖 환경호르몬이 마찬가지로 비슷한 역할을 한다고 하는 것이 그녀가 강조하는 끔찍한 사실이다. 특히 환경호르몬에 가장 취약한 시기는 태아부터 사춘기까지로, 아이들은 생식기관과 호르몬계, 면역계는 완전히 발달하지 않고 체구가 작기 때문에 같은 양이라도 몸에 끼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훨씬 크기 때문이다. 아이가 커가다 어떤 특정한 진단을 받고 나서부터 생활 습관을 바꾼다 해도 그때는 이미 늦을 수 있다. 환경호르몬은 보이지 않게 체내에서 계속 축적되어 임계점을 넘어서는 어느 순간에 각종 질환으로 그제야 눈에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



3. 매 순간 만나게 되는 플라스틱


플라스틱이나 비닐 등 뜨거운 물질을 안 넣는 게 좋다는 것 정도는 이제 상식이 되어 모르는 사람이 없겠지만, 환경호르몬에 상대적으로 안전한 플라스틱이라 젖병에도 많이 쓴다고 강조해온 PP(polypropylene)도 사실은 미세 플라스틱 측면에서는 전혀 안전하지 않다는 것이 속속 밝혀지고 있다. 가장 최근 연구(2020년 10월, 트리니티 칼리지 더블린 공립대학 연구팀 발표)에서는 25~95℃의 온도에서만 해도 미세 플라스틱이 6만~5,500만 개 수준으로 다량 방출되는 것으로 밝혀냈다. 위에서 언급했던 DES의 사례를 보거나, 몇십 년 전만 해도 담배가 오히려 건강에 유익하다며 의사들이 광고에 출연하기도 한 시절이 있었다고 하니, 아직 밝혀지지 않았을 뿐 플라스틱으로 인한 더 많은 부작용이나 후유증들이 후에도 언제든 추가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그래도 그나마 안전한 소재는 인류의 오랜 역사에 걸쳐 검증된 유리와 스테인리스로, 재질을 선택할 수 있는 상황이라면 최대한 그런 류를 선택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또 편의성이 증대되었으면서도 여태까지 비교적 안전한 소재는 실리콘인 듯하고, 정 플라스틱류를 골라야만 하는 상황이라면 그나마 PPSU(Polyphenylsulfone)가 PP보다는 내열 온도가 2배 정도 높아 상대적으로는 나은 것 같다. (그만큼 더 비쌈)


4. 육아하며 신경 쓸 수 있는 부분들


나의 경우는 일단 신생아부터 젖병을 최대한 기본적으로 유리병으로 사용하였고, 이후 PPSU 소재를 급할 때 백업용으로 가끔 사용하였으며, 빨대컵 역시 스테인리스와 실리콘으로 처리된 제품을 골랐다. 그리고 한창 구강기가 시작될 때에는 천연고무, 나무, 실리콘 등으로 만든 치발기를 최대한 쥐여주었고, 플라스틱 장난감을 빨려고 하면 가능한 한 스테인리스, 실리콘 스푼이나 주방 식기를 손에 쥐여주었다. 전체 이유식량의 1/3~1/4 정도는 시판 이유식으로 급할 때 종종 이용했는데, 대신 이유식 용기(PP) 통째로 전자레인지에 돌리는 일은 절대 하지 않았다. 시판 이유식을 냄비에 덜어서 고기 등 추가 재료를 넣고 다시 끓이거나, 그마저 여의치 않거나 귀찮으면 적어도 반드시 유리나 도자기에 덜어서 전자레인지에 데웠다. 그리고 모유 수유를 하면서 아기뿐 아니라 내가 먹는 것도 유기농으로 다 돌리는 일도 신경 썼던 것이, 결국 환경호르몬 물질은 지방에 가장 많이 저장되어 모유로 농축되어 아기에게 흘러가기 때문이다. 특히 지방이 많은 유제품과 살충제 덩어리인 커피는 특히 더욱 신경 써서 유기농 제품을 골라서 먹었다.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 참 까다롭다고 손가락질할 수도 있지만, 당장 그 소리 몇 번 듣는 일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내 아이의 미래이기 때문에 그 정도는 충분히 감수할 만하다고 생각한다.


5. 육아 전부터 앞으로도 계속 생각할 포인트들


임신을 준비하는 단계부터 아기 탄생 직후나 어린 시기에 굳이 새로운 인테리어를 하거나 새집으로 이사 가는 것도 추천하지 않는다. 온갖 부자재와 접착제에서 나오는 포름 알데히드 등의 유기 화합물이 프레시한 상태로 실내에 가득하여 온갖 환경호르몬의 독성을 내뿜기 때문이다. 어린이집 역시 새로 지은 곳에 시설이 좋다며 상당히 많은 숫자가 대기하는 것을 볼 수 있었는데, 어린아이의 건강 측면에는 사실 그다지 좋은 선택이 아닐 것이다. 그 외에 일상생활에서 화장품부터 샴푸까지 성분을 확인하여 PEG, 파라벤, 포름알데히드 등 고위험 화학 성분이 들어 있는 것은 피하고 (요즘은 ‘화해’ 등의 어플로 1초 만에 다 확인할 수 있음), 향수는 내분비계를 교란시키는 프탈레이트 덩어리이므로 임신, 육아기만이라도 완전히 멀리하는 것이 좋겠다. 또한 종이컵, 캔 등의 내부 코팅 역시 환경 호르몬을 상당히 방출하는데, 그것을 매일 액체에 섞어 마시는 꼴이므로 상황이 허락한다면 최대한 덜 사용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예를 들어, 편의점에서 맥주 하나를 고를 때도 캔보다 병에 들어있는 것으로 우리는 충분히 선택을 할 수 있다.





나도 나름대로 이것저것 신경을 쓴다고 하고는 있지만 결국 돌아서면 아이가 물고 빨고 있는 것은 형형색색의 플라스틱 장난감일 경우가 상당히 많아서 종종 회의감이 들기도 한다. 한창 구강기의 아기에게 빨기 욕구가 충족되지 않거나, 번번이 제지당하는 경험만 주는 것도 정신적으로 문제라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대체재를 제안은 하고 있지만 삶에서 완벽히 플라스틱을 차단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것을 놓고 포기하는 것에 비해, 그중에 절반, 아니 단 30% 정도 수준만이라도 환경호르몬에 덜 노출된다면 당장 눈에는 안 보이지만 사실은 쌓이고 쌓여 엄청난 차이를 낳을 수 있다. 극단적으로, 우리 아이가 10대에 들어서자마자 성조숙증 진단을 받을 확률이 30% 줄어든다고 한 번 생각해 보자. 그것이 결코 작은 차이일까? 그리고 그때에 가서 호르몬 치료를 받는 것 역시 그 증세를 당시에는 조금 지연시킬 수는 있겠지만 또 몇십 년 후에 어떤 결과를 낳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마치 위에 언급했던 DES라는 약물이 30년 후에야 끔찍한 결과를 보여주었던 것처럼 말이다. 어떤 것이든 자연적인 것이 가장 좋은 것이다. 인위적인 세상에서 자연적으로 키우기 점점 더 어려워지는 것도 사실이지만, 어렵게 지켜낸 것은 무엇이든 그만큼의 가치로 돌아온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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