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가을철이 되면서 환절기성 비염이 있는 두 아이들이 재채기와 콧물로 아침을 시작했다. 우리 집 아이들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문턱을 유난히 넘기 힘들어한다. 그래서 요맘때가 되면 나는 아침저녁으로 아이들에게 비염에 좋다는 따뜻한 작두콩차를 먹인다. 계속 약에 의존하기가 좀 그래서 조금이라도 효과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작녀부터 꾸준히 먹이고 있다.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코가 맵다는 둥 가렵다는 둥 징징 거리는 아이에게 작두콩차를 타 준다고 하고 열심히 서랍장을 찾아보는데 온데간데가 없다. 봄에 마지막 티백을 우려내며 사둬야지 했던 걸 이제껏 잊고 있었다. 때마침 자주 공동구매를 하는 푸드 사이트에서 할인 문자가 날아왔고, 하루가 급한 나는 얼른 결재를 했다. 이틀 뒤, 택배 아저씨가 유기농 작두콩차를 감사히 전달해주셨다. 그 날 저녁부터 다시 아이들에게 따뜻한 차를 마시게 했고, 플라세보 효과인지 아님 정말 작두콩차의 효과인지, 아이들의 콧물 증세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
그런데 그다음 날, 또 택배가 온다는 문자가 왔다. 가끔씩 책을 보내주시는 선생님이 계셔서 난 당연히 책이 오려나 했는데 택배가 왔다고 해서 나가보니 작은 상자였다. 보낸 사람과 내용물이 적힌 것을 보는데 '작두콩차 1+1'이라고 적혀 있다. 혹시나 내가 실수로 주문을 두 번 했나 싶어서 사이트에 재접속해서 확인을 해보았는데 내 주문은 틀리지도 않았고, 그럼 이벤트로 하나 더 주는 뭐가 있나 기대를 하며 홈페이지를 둘러봤는데 그 어디에도 그런 문구는 없었다. 그래서 고객 센터에 전화를 했다. 그쪽에서는 물류센터에서 발주 오류가 난 것 같다며 회수처리로 할 테니 다음 날 택배 아저씨께 전달을 부탁했고, 난 당연히 그러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고 났는데 무슨 일이냐고 묻는 큰 아이에게 자초지종을 얘기했더니
"엄마, 그냥 전화하지 말지. 그 사람들 우리 집에 물건 두 번 보낸 것도 모르고 있잖아. 그냥 우리가 다 먹지."
라고 하는 거다. 그러자 옆에서 둘째가
"그러면 안 되는 거잖아. 우리가 시킨 것도 아닌데...."
라고 한다. 그래서 맞다며 우린 작두콩차도 넉넉하고, 양심도 아직은 살아 있으니 회수하는 게 맞다고 했다.
큰 아이도 수긍하는 눈치긴 했으나 뭔가 100%의 느낌은 아니었다.
오후에 안과에 다녀오는데 시어머님에게 전화가 왔다. 지난 주말 어머님 댁에 다녀왔는데 휴대폰을 바꾸신 지 얼마 되지 않은 새 휴대폰 한 귀퉁이에 공기 방울 같이 동그란 모양이 생겨 있었다. 그래서 어머님께 여쭤봤더니 조카가 아마 떨어뜨려서 그런가 보다고 하셨다. 그런데 아가씨가 아마 보호필름에 문제가 아닐까 싶어서 뜯어봤더니 휴대폰 안쪽에 손상이 있었나 보다. 서비스센터에 가져가셔서 휴대폰 산지 얼마 안 된 건데 이 부분에 이상이 있다고 이야기하시라고 했더니 서비스 센터에서는 별 이상이 없다고 가져가시라고 했단다. 그 이야기를 들은 아가씨가 휴대폰을 다시 들고 가서 이상이 있는 부분이 있다며 새 휴대폰인데 이런 부분은 있으면 안 되지 않느냐고 따져서 결국 새 휴대폰으로 바꿔왔다고 하셨다. 공짜폰도 아니고, 아들이 쓰던 휴대폰을 쓰시다가 처음으로 어머님이 원하시는 모델의 비싼 스마트폰을 장만하셨으니 작은 상처에도 속상하셨을 마음은 안다. 거기다가 어머님의 잘못이 아니라 방심한 사이 아이가 놀다가 식탁에 살짝 부딪혔고, 케이스도 끼워진 상태였는데 그렇게 됐으니 더 속상하셨을 것 같다. 하지만 나라면 그렇게 했을까? 잠시 고민하는 사이에 옆에서 둘째가 나를 툭 친다.
"엄마, 왜? 할머니 휴대폰 잘못됐데? 그런데 새로 바꿔줬데?"
이미 통화내용을 옆에서 다 들은 아이였다.
"그때 그 모서리 동그란 부분, XX가 떨어뜨렸다고 했잖아. 근데 서비스 센터에서 고모가 새 휴대폰으로 바꿔왔다고? 근데 그래도 돼? 엄마? 그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뭐라고 대답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아이와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누며 오는데 과연 이 아이들 앞에 우리는 어떤 어른들로 자리해야 할까 생각이 깊어졌다.
집에 들어오다가 오랜만에 둘째 아이의 친구 엄마를 마주쳤다. 요즘 공공근로 일하랴, 본인 일 하랴 바쁘기도 하고, 아이들도 온라인 수업을 하느라 통 얼굴 보기가 힘들었는데 참 반가웠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사회적 거리두기 2.5단계가 발령되면서 공공근로 일을 나가지 않았는데 시급에 일부가 월급으로 들어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사실 공공근로 일자리라고 하는 것이 일자리가 정말 필요한 사람들에게 과연 얼마나 공급이 됐을까 의아했었다. 1차에 끝이 아니라 현재 2차째 진행 중인데 과연 그 일자리들 모두가 필요한 일인가 싶었고, 우리의 세금이, 그 예산이 그렇게 쓰이는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분명히 생활이 어려워서 일자리가 필요한 사람이 있는 것은 안다. 하지만 나라에서 제공하는 그런 혜택들이 과연 그런 사람들에게 가고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코로나로 인한 공공근로 일자리를 창출할 때 어려운 사람들을 생각해서 만들기도 했겠지만 일부는 본인들의 한 표를 생각하면서 그 자리를 만든 것은 아니었을까? 그게 맞다면 그 생각이 불순한 것이고, 그게 아니라면 내 생각이 불순한 것이겠지?
내가 우리 큰 아이 만할 때는 세상을 좀 알았다고 생각해서 뭐든 내 것은 내가 챙겨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기 시작했던 것 같다. 그맘때부터 착하게만 살면 바보 같이 내 몫도 제대로 못 챙기는 거라고 생각했던 것도 같다. 그런데 살면서 욕심을 부린다고 다 내 것이 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다. 너무 욕심을 부리면 결국 그 화가 돌아온다는 걸 종종 주변에서 보게 됐다. 내 몫은 요만큼인데 남들이 부럽다며 이만큼 욕심을 부리다가 내 몫의 행복조차 놓치고 사는 사람들이 참 많다는 것도 조금씩 깨닫게 됐다. 그래서 난 오늘도 내 몫이 아닌 것에는 큰 욕심을 내지 않고, 내가 한 잘못이면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받아들이며, 그렇게 살아가는 중이다. 글쎄, 분명 그런 나에게 누군가는 바보 같다고 말을 할지도 모르겠다. 내 선에서는 그게 정상인데, 그게 바보 같다고 한다면 어쩔 수 없다. 그런데 바보 같은 사람이 많은 세상이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은 아닐까? 난 우리 아이들 역시 바보 같은 사람으로 바보 같은 사람이 많은 세상에서 살아가길 꿈꾼다. 내 몫의 행복만큼 그것을 누릴 줄 알고, 내 것이 아닌 것에는 욕심부리지 않으며, 정상적으로 굴러가는 모두가 행복한 세상. 원래 그러면 안 되는 일은 최대한 하지 않는 그런 세상.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이라면 그래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