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짠순이인가요?
어제는 아침부터 바쁜 하루였다. 남동생이 주말에 이사를 하는데 헌 옷이 많다며 헌 옷 매입처에 대해 물었다.
그러더니 이사 준비와 일 등으로 바빠서 헌 옷을 우리 집에 가져다줄 테니 얼마 안 되는 돈으로 아이들 간식이나 사주면 어떻겠냐고 했다. 나야 요즘은 늘 집순이 모드였기에 그래도 좋다고 했더니 이불을 담는 부직포 가방에 한 가득 헌 옷들을 넣어서는 우리 집에 던져두고 갔다. 가면서 조카들을 향해
"이거 팔아서 까까 사 먹어~."
라는 말도 잊지 않았다. 동생이 가져다 놓은 헌 옷 꾸러미가 워낙 부피가 컸기에 빨리 치워버리고 싶었다. 거기다 계절도 바뀌었으니 나도 분명 버릴 옷들이 있을 거란 생각에 겸사겸사 옷 정리에 들어갔다. 그리하여 오전 내내 안방 붙박이 장에 있는 옷들을 모조리 꺼내서 분리하고, 다시 정리를 했다. 너무 헤져서 입지 않는 남편의 양복바지와 옷깃이 변색된 와이셔츠도 다 포대에 담았다. 운동을 멀리하고 살았더니 아무리 말랐어도 내 몸 구석구석 살이 붙었는지 형님이 주셨던 옷들도 다시 입어보니 꼭 끼어서 입을 수가 없었다. 예쁘지만 안녕을 고해야 하는 옷들 역시 포대에 넣었다. 두 아이들이 쑥쑥 자라다 보니 매 년 한 두 번씩은 버릴 옷이 꾸준히 나왔고, 그런 옷들을 안 쓰는 가방, 작아진 신발들과 모아서 헌 옷 매입처에 파는 게 연례행사였다. 큰돈이 생기는 건 아니지만 그 옷들을 한꺼번에 들고 내려가는 수고도 덜 수 있고, 정말 작은 돈이라도 벌 수 있으니 헌 옷 판매를 안 할 이유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집엔 늘 헌 옷 아저씨가 두고 간 포대가 있었는데 하루 종일 옷 정리를 하고 나니 그 포대 가 한가득 찼다.
옷 정리가 끝날 무렵 둘째가 와서 눈이 휘둥그레져서 물었다.
"엄마, 이거 다 버리는 옷이에요? 그러면 얼마나 벌어요? 그 돈 벌어서 뭐 할 거예요?"
요즘 사고 싶은 게 생겨서 열심히 돈을 모으는 둘째의 관심사가 이 곳에 꽂힌 것이다.
"글쎄, 큰돈은 못 벌어. 요즘 코로나 때문에 헌 옷도 수출을 해야 하는데 판로가 막혔데. 그래서 kg당 가격이 많이 줄었어. 많아 봐야 5천 원 정도 되려나?"
"이렇게나 많은데 5천 원이요? 너무하네. 근데 그 돈 받으면 우리 까까 사 먹는 거예요?"
"아니. 엄마가 쓸까 하는데..."
삼촌이 까까 사 먹으라고 했는데 왜 엄마가 쓴다고 하는지 의아해하는 둘째는 실망한 눈빛으로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점심식사 후 둘째의 발치를 위해 치과에 들렀다가 집에 오는데 큰 아이가 전화가 왔다. 아이스크림 좀 사다 달라고 했다. 안 그래도 전 날 저녁, 남편이 애들 아이스크림이나 사다 줄까 하고 물었는데 둘째의 살 때문에 긴 잔소리를 하며 사지 말자고 했다. 매일 냉동실에 있는 아이스크림을 보며, 그리고 옆에서 아이스크림을 먹는 언니를 보면서 본인이 먹지 않겠노라 다짐을 하지만 쉽게 무너지는 게 아이라고, 없으면 안 먹게 되지 않겠냐고 말이다. 하지만 전화해서 부탁하는 큰 아이가 짠해서, 아프지만 울지 않고 꾹 참은 둘째도 생각해서 그때의 마음을 접고 아이스크림을 샀다. 처음엔 한 개를 고른 아이에게 인심 쓰듯 하나 더 고르라고 했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을 사다 냉동실에 넣어두었고, 저녁식사 후 남편은 행복한 표정으로 냉동실 문을 열었다. 그리고는
"아이스크림이 많지는 않네."
라고 했다. 내 딴에는 한 개씩이 아니라 두 개씩, 인심을 쓴 거였는데 검은 비닐봉지가 터질 만큼 사다 놓는 본인과는 비교가 됐나 보다. 그래도 못 들은 척했다. 그런데 갑자기 둘째가 물었다.
"엄마 짠순이예요?"
그러자 남편이 얼른 대답을 했다.
"엄마는 짠순이지."
아이스크림을 사다 놓는 손이 작아서였는지, 하루 종일 열심히 헌 옷 정리를 해서 5천 원을 벌기 때문이었는지, 용돈을 준다고 해 놓고 주지 않고서도 너희를 위해 그 돈만큼은 쓰지 않았냐고 했기 때문인지, 아님 남편과 식사를 하며 마이너스인 주식을 절대 팔지 말라며 그냥 묻어두라고 했던 내 말 때문인지...아무튼 아이도 엄마는 짠순이라고 생각하면서 묻는 말인 듯했다.
"짠순이가 나쁜 것만은 아니야. 꼭 필요한 곳에 꼭 필요한 돈만큼 쓰는 게 경제적인 것이잖아. 돈은 그렇게 쓰는 게 맞는 거야. 이래서 쓰고, 저래서 사고, 흥청망청 다 쓰고 나면 금방 사라지는 게 돈이거든."
구차한 변명 같지만 진실인 말을 아이에게 해주었다. 아직은 마음에 와 닿을 리 없겠으나 이런 엄마의 생활태도가 언젠가는 아이의 몸에도, 머리에도, 마음에도 스며들어 있으리라. 나 역시도 그러했으니...
오늘 10시에서 11시 사이에 헌 옷을 매입하시는 분이 오시기로 되어 있다. 그분은 우리 집에 있는 옷 들을 다 눌러 담고도 묶을 수 있는 커다란 포대와 그 옷들을 모두 올려놓아도 충분히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커다란 저울을 가져오신다. 현관 앞에서 거래가 이루어지는데 난 카페에 가입했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고, 할 것이고, 옷의 무게와 오늘 판 헌 옷에 대한 후기 역시 내 SNS에 남길 것이다. 그렇게 할 경우 내가 가입한 헌 옷 매입 카페에서는 kg당 두 배의 무게로 값을 쳐주기 때문이다. 오늘은 아이들도 모두 집에 있으니 이 과정을 모두 보여주려고 한다. 요즘 둘째의 사회 교과서에 생산과 소비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역시 생산과 소비의 과정임을 직접 보여주고, 돈은 쉽게 버는 것이 아니니 쉽게 써서도 안 된다는 것 역시 보여주고 싶다. 또 이렇게 벌어들인 돈 한 푼 한 푼이 모여져서 아이가 원하는 물건을 사게 되는 것임을 알게 되는 순간 그것의 소중함 역시 몸과 마음에 남을 것임을 나 역시 부모님의 검소함을 통해 배웠으니 말이다.
아마도 둘째는 삼촌의 '까까 사 먹어'라고 했던 말에 이 돈의 일부는 본인 것이리라 생각하겠지? 오늘은 특별히 짠순이 엄마가 헌 옷을 판 돈을 두 딸들에게 나눠줄게. 까까를 사 먹으며 돈의 쓰임새를 생각해도 좋고, 까까보다 더 소중한 곳에 써도 아무 말하지 않을게. 부디 오늘을 기억하며 살아주길. 너희의 앞날에도 소중한 가르침으로 자리하기만을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