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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주워담기 Sep 08. 2020

착한 드라마

주말 드라마를 사랑하는 아이들

  온라인이 생활화된 아이들이 오매불망 주말을 기다린다. 금요일만 되면 더 기분이 좋아지는데 그건 바로 좋아하는 TV 프로그램 때문이다. 오래된 TV가 안방에 있는 까닭에 우리 아이들은 주중에는 TV를 보지 않는다. 일단 TV가 한 번 켜지려면 전원 코드를 두세 번은 꽂았다 뺐다를 반복해야 하며,  브라운 관은 그제야 주인님들을 마주할 준비를 한다. TV 화질도 썩 좋은 편도 아니고, 또 다른 집처럼 다양한 채널이 나오지도 않기도 하다. 어쨌든 그리하여 아이들이 즐겨 보는 프로그램들은 매주 주말에 보는 예능 프로그램 2~3개와 주말 드라마인데 한동안은 예능 프로그램에 목숨을 걸더니 이젠 순위가 바뀌어서 주말 드라마를 목이 빠지게 기다린다. 아마 아이들이 자라면서 마음이 조금 더 말랑말랑 해졌기 때문이 아닐까?

 

                                                                                    



 나 역시 어린 시절 할머니와 함께 살면서 드라마를 정말 많이 보고 자랐다. 어린 시절 보고 싶지 않아도 할머니 등 뒤에서 귀를 막아도 들리는 '전설의 고향' 때문에 밤새 화장실을 못 간 일도 있다. 우리 할머니야 말로, TV광이셨는데 아침에 온 신문을 다 보고 나시면 편성표를 잘 접어서 소파 옆 탁자에 펼쳐두고, 좋아하는 프로그램을 챙겨 보곤 하셨다. 식사 후엔 믹스 커피 한 잔과 아침 드라마를 보며 TV 속 주인공들과 말을 하듯 이야기하며 즐기셨고, 저녁 때면 퀴즈 프로그램, 6시 내 고향, 일일드라마, 뉴스, 월화 드라마, 미니 시리즈 등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보셨다. 아마 지금도 할머니가 살아계시다면 우리 할머니야 말로 하루 종일 TV와 함께 보내셨을 것 같다.

그런 할머니 덕에 나 역시 드라마를 엄청 좋아했고, 고 3 시절에도 단막 극장, 베스트셀러 극장 등은 꼭 챙겨보며 한 때는 드라마 작가의 꿈을 키우기도 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어느새 그때의 나처럼 드라마를 챙겨 보고 있다. 아이들이 드라마를 즐겨보기 시작한 때가 언제인지 생각해보니 양가 부모님 댁에서 저녁 식사 후 할머니 옆에 나란히 앉아 "저 사람은 누구예요?", "저 여자는 왜 울어요?" 등 TV 속 등장인물들에 대한 궁금증을 하나둘씩 던지기 시작했던 때가 아닌가 싶다. 그래서 요즘은 양가 부모님 댁에 가면 어머님이나 친정 엄마가 드라마 시간을 깜빡 잊으셨을 때 조차도 두 딸들이 TV를 켜 놓고 "할머니 드라마 시작해요."라고 부르기까지 한다. 코로나 이전엔 드라마 때문에 그 시간에는 외출도, 외식도 거부해 남편은 이제 드라마는 "이번으로 끝이다."라고 외치곤 하지만 남편 역시 딸들과 나란히 누워서 드라마를 즐기고 있음을 부인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렇게 온 식구가 함께 보는 드라마이기에 나는 주말 드라마만큼은 좀 착한 드라마였으면 한다. 말도 안 되는 세상이라서, 말도 안 되는 일들이 너무나 많이 일어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은 살만한 곳이고, 아직은 나쁜 사람보다 착한 사람들이 더 많은 곳이 이 세상이라는 것, 그리고 세상을 살아가다 보면 너무 힘들고, 뜻대로 되지 않는 일도 정말 많지만 그럴 때마다 가족들이 있기에, 또 곁에서 지켜주는 이웃들이 있기에 세상이 아름답다는 인식을 은연중에 심어주는 착한 드라마, 때로는 슬프고, 짜증 나기도 하지만 그 사이사이 웃음도 있고, 웃음이 모여서 작은 행복을 만들어 가는 게 우리네 인생이라는 것을 고스란히 담아서 보여주는 착한 드라마, 주중에 메말랐던 마음에 촉촉한 단비 같은 드라마, 자살, 살인, 불륜, 패륜이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실제 상황이지만 그런 일이 일어나는 확률보다는 웃음이 묻어나는 일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드라마였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팍팍해졌던 주중의 일상을 사르르 녹아들게 하고, 드라마로 인해 엔도르핀이 뿜 뿜 솟아 다시 힘을 내도록 하는 그런 드라마라면 아이들이 가끔 잊어버릴 땐 내가 시간을 꼭 챙겨서라도 함께 볼 것이다. 






 아쉽지만 딸들이 챙겨보는 드라마가 끝을 향해 달리고 있다. 요즘은 캐릭터 분석까지 하면서 드라마를 보는 아이들. 아마 이번 드라마가 끝나면 정말 많이 아쉬워할 것 같다. 하지만 곧 또 다른 드라마를 찾아보겠지? 우리 아이들은 또 어떤 드라마에 꽂히게 될지? 부디 다음 드라마 역시도 아이들에게 더 많은 웃음과 행복, 그리도 따뜻한 세상을 보여주는 착한 드라마이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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