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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주워담기 Oct 23. 2020

웃긴 엄마가 되어야 한다.

사춘기 아이를 둔 엄마의 특명! 아이를 웃게 하라!

 "엄마 이렇게 한 번 해봐."

 가끔씩 큰 아이는 나에게 엉뚱한 표정을 지어보라던가, 엉뚱한 상황을 연출해보라고 말한다. 크게 잘 웃지도 않고, 장난기도 없는 엄마이기에 그런 부탁을 들어주는 건 어렵지 않지만 용기를 내어야만 하는 일이다. 그런데 요즘에 그런 엉뚱한 유머러스움이 나에게도 조금씩 쌓이고 있다.


 아침에 기분 좋게 일어났던 큰 아이가 둘째 방에 들어갔다가 큰 소리가 났다. 무슨 일인가 싶었는데 왜 남의 방에 막 들어오냐는 동생과 잠깐 뭐하나 보러 갔던 것 뿐이라며 짜증을 내는 큰 아이가 눈에 들어왔다. 다른 때 같았으면 둘 다 혼을 냈을테지만 꾹 참고, 못들은 척 부엌으로 돌아왔다. 내가 개입해봐야 둘 중 하나는 또 마음이 상할테니까. 


 키가 한 달에 1cm씩 자라기도 하고,  올 봄에 산 운동화가 맞지 않는가 하면, 얼굴에 오돌토돌 여드름이 올라오기도 하는 13살 예비 중학생인 큰 아이는 요즘 하루에도 냉탕과 온탕을 번갈아가며 들락거린다. 별 것도 아닌 일에도 눈물이 많아졌다. 뭔가 억울하다 느끼는 것도 많고, 그에 반해 하하호호 크게 웃기지 않는 일에도 뒤집어질 듯이 웃기도 한다. 기분이 오락가락 제어가 잘 되지 않는 전형적인 사춘기 증상이다. 그런 아이를 볼 때마다 '나도 저랬나?' 하루에도 몇 번씩 나의 그 시절로 돌아가보곤 한다. 


 아침에 일찍 깨워달라고 엄마에게 부탁을 했는데 일이 피곤해서 늦잠을 주무신 엄마가 나를 깨워주지 못한 날엔 우리 딸처럼 짜증을 부리기도 했던 것 같다. 시험기간에는 우리집 뒤에 있는 초등학교의 가을운동회 소리만으로도 하루종일 날을 세웠고,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시는 할머니께 "그 얘기 지난번에 하셨잖아요."하고 대답을 했던 것도 같다. 그리고 또 뭐가 있었을까? 그러나 나의 사춘기 시절에는 쌍둥이 언니와 바깥에서 보내야 했던 시간이 많았다. 집과 학교 사이 거리가 먼 관계로 학교가 끝나면 학원 수업에 가기 전에 아빠회사 식당 아주머니네서 잠깐 시간을 보내기도 했고, 근처 고모댁에서 언제 했는지도 모르는 마른 밥과 캔통조림 반찬으로 배고픔을 달래기도 했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KFC와 분식집 라면은 너무 많이 먹어서 지금도 즐기지 않는다. 부모님은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의 교육을 받았으면 하는 생각에 아침, 저녁으로 우리를 서울로 실어 나르셨으나 우리들의 떠도는 낮 생활에 대해서는 미처 마음을 쓰지 못하셨던 것 같다. 아니 나름 신경을 쓰셨기에 아는 집에서 잠깐의 휴식이라도 취하도록 하셨겠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시절 우리의 기억엔 따뜻한 집에서의 시간보다 밖에서 밖으로 떠돌던 시간이 너무 크게 자리하고 있다. 다행인건 혼자였더라면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기 충분했던 환경이었겠으나 언니와 나, 둘이었어서 크게 비뚫어지지도 않았고, 늘 애쓰시는 부모님의 노고를 충분히 헤아렸기에 부모님이 만들어주신 틀 안에서 벗어나지 않고 잘 자랄 수 있었다. 만약 나에게도 제어할 수 없는 감정 기복과 몸과 마음이 서로 다르게 커가는 차이를 견디기 힘들어하며 뭔가 어찌해야할 바를 몰라 짜증을 내고, 울기도 하고, 꽁~ 해버리는 순간이 있었다면 그 힘듦은 나의 쌍둥이 언니가 받아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언니의 기억 속에도 그리고 나의 기억 속에도 그러한 모습들은 들어있지 않다. 


 "엄마! 나 오늘 수학 시험 몇 점 맞았게?"

하원하는 차량에서 전화를 건 딸 아이가 물었다. 

 "글쎄. 시험을 잘 봐서 물어 보는 거야? 못 봐서 물어보는거야?"

아무 숫자나 마구 불러대면서 장난을 쳐주기를 바랬던 딸은 그냥 찍기라도 해보라고 했다.

 "85점?"

 "나 100점 맞았다."

  수학학원에 다닌지 5개월이 되어가는 딸아이는 단원평가 시험은 보기 싫지만 보고 나면 점수가 막 궁금해지고, 시험점수가 좋으면 마치 게임 레벨업 한 듯 기뻐하기도 한다. 그런 딸에게 난 또 

 "잘했네. "

 재미없는 답변을 툭 하고 던졌다. 그러자 딸 아이는

 "엄마! 그게 다야? 리액션이 너무 작은거 아니야?"

라며 아쉬워했고, 뒤늦게 나는 '오오오오오오오~~~ 축하축하해' 라며 엎드려서 절 받기 식의 큰 소리로 호들갑을 떨어줬다. 그리고 집에 들어온 딸을 향해 어울리지도 않는 짱구춤을 춰가며 100점 축하 리액션을 해줬다.

 아~ 정말 사춘기 딸의 엄마 노릇하기 힘들다. 그래도 아이는 이런 리액션들을 마음 속에 저장해 놓는 눈치이다. 늘 조용하고, 차분한 엄마에게서 발견되는 유쾌함이 우리 아이를 웃게한다. 마음이 힘들 때, 우울할 때 꺼내 본다며 엄마의 순간포착으로 망가진 얼굴을 즐기는 아이. 카메라를 보며 손을 흔들어 달라던 아이에게 잠깐 웃으며 한 두 번 손을 흔들어줬는데 그 영상을 편집해 방정맞은 엄마의 인사하는 모습으로 바꿔서는 자주 들여다보며 웃는 녀석. 지금은 사춘기 초기인지라 이러한 것들이 아이에게 약이 되는 것 같다. 조금 있으면 여느 집 아이들처럼 문 닫고 들어가서 출입금지 팻말을 써붙일 수도 있을 거고, 엄마에게는 말하지 않는 비밀들도 늘어나겠지? 지금과는 비교도 안 되는 막말들을 쏟아부을 수도 있을 거고, 그 반대로 내가 하는 말, 가족들이 하는 말에 묵묵부답일지도...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모르겠지만 그러한 앞날들을 위해 오늘도 잘 웃지 않는 엄마는 입꼬리를 귀에 붙이고 더 많이 웃으려고 노력한다. 

너를 웃게 하기 위해, 너에게 웃음을 많이 적립해 놓으려고, 그리고 그 덕분에 나도 웃고 있으니 하루에 한 번씩은 망가져볼 법도 한 일이다. 그나저나 오늘은 또 어떤 시점에 어떤 웃음 코드를 날려줘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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