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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행복주워담기 Sep 23. 2022

누구에게나 필요한 시간

혼자 만의 시간을 즐기는 아이

 '아이가 방문을 닫기 시작할 때가 사춘기의 시작이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그런데 그것도 경우에 따라 다른 것 같다. 사춘기에 들어서도 방문을 닫지 않는 아이들이 있다. 이 글을 읽으면서 댁네 딸은 아직 제대로 된 사춘기가 아니라서 그런 것 같다는 분들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우리집 아이도 그렇다고 맞장구를 치는 분도 분명 계시리라. 이미 사춘기 시절을 보내온 우리는 알고 있다. 내 딸아이의 경우 시간이 더 지나봐야 알겠지만 분명한 건 사춘기라는 시기에 방문을 닫는다는 것은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으면서 본인만의 시간을 보내며 자신에게 집중하기 위함이라는 사실이다. 문 을 닫고 하루 종일 게임만 하는데 자신에게 집중하는게 말이 되냐고 하시는 분들도 계시겠으나 그 역시 게임에 몰두하며 본인의 즐거움에 집중하기 위한 일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엄마, 나 오늘 학원에 혼자서 갈게."

 큰 딸이 다니는 학원은 집에서 조금 거리가 있다. 수학 학원은 마을 버스를 타고 가거나 걸어가도 되는 거리에 있고, 영어 학원은 보통 버스를 타고 5정거장 정도 가야하는 거리이다. 날씨가 덥거나 추운 날, 그리고 시험기간에는 내가 차로 데려다 줄 때가 많지만 요즘 같이 날씨가 좋은 날은 종종 혼자서 가겠다고 한다. 

 어제는 다음 달에 중간고사가 있어서 시험대비로 시간이 바쁘지 않을까 싶어 데려다 주겠다고 했더니 버스를 타고 싶다며 거절을 했다. 그래서 아이가 학원 가는 길에 나는 동네 걷기 운동을 나서느라 집에서 함께 나왔다. 집에서 나와서 헤어지기 전까지 아이는 학교에 있었던 일, 학원 친구들 이야기, 요즘 푹 빠져 있는 가수 이야기까지 쉴새 없이 늘어 놓았다. 그런 녀석을 보며 공부는 힘들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하루를 즐겁게 보내고 있구나 안심이 됐다. 


 "대박! 엄마 하늘 진짜 예쁘지 않아."

 함께 조잘조잘 떠들던 아이가 하늘을 보고는 갑자기 손으로 입을 틀어 막으며 주머니 속 휴대폰을 빼들었다. 그리곤 붉게 물들어 가는 저녁 노을을 몇장 찍더니 흐믓해하며 정말 감성적이라고 호들갑을 떨었다. 감수성이 풍부한 아이라 요즘은 슬픈 노래 가사만 들어도 눈물을 뚝뚝 흘리는가 하면 쨍한 하늘에 구름만 봐도, 또 붉게 번지는 저녁 노을만 봐도 감성적이라며 연신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다. 그런 딸아이가 혼자 학원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길 위에서, 때로는 버스에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 때문이다. 

 음악 듣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는 집에서 나설 때면 늘 이어폰을 챙긴다. 걸을 때나 버스를 타고서 이어폰을 끼고, 바깥 풍경을 보며 음악을 듣는 것이 아이에겐 힐링이 된다고 한다. 가끔은 자신이 음악을 들으며 걷던 그 길의 모습이 너무 감성적이지 않냐며 사진을 찍어서 문자로 보낼 때도 있다. '정말 예쁘네.' 하고 답문을 보내면 엄마의 재미없는 리액션에 김이 빠진다고 또 호들갑이다. 그래도 안다. 그리고 고맙다. 엄마랑 그 시간을 공유하고 싶어하는 아이의 마음이. 그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아이를 보며 낯선 곳에 가서는 내 손을 절대 놓치않던 꼬마가 어느새 이렇게 컸나 싶다.

 생각해보면 혼자만의 시간은 사춘기 아이가 아니라 성인이라면 누구나 필요한 시간이다. 하다못해 아이가 어려서 하루 종일 독박 육아를 하는 엄마들은 제발 단 몇 분간 화장실에서 만이라도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 하니까 말이다. 그렇기에 온전히 혼자서 보내는 시간을 갖고 싶어 한다는 건 진정한 어른으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이렇게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는 시기인만큼 집에 와서도 방해 받고 싶어 하지 않는 건 우리 딸도 여느 아이와 마찬가지이다. 방문을 닫지는 않지만 종종 마음이 까칠한 날은 방문 앞을 지나다가 눈이 마주치기만 해도 간섭 받는 것이 기분이 나쁘다는 투로 "왜?" 라고 묻기도 한다. 그럴 때면 "우리 이쁜 딸이 보고 싶어서."라며 능청을 떤다. 가끔씩 부모는 사춘기 아이에게 애교 떠는 모습도 필요하다. 그러면 아이는'우리 엄마 참 싱겁다.' 라며 어이없는 표정을 짓는다. 그리고 그런 날은 아이에게 무한대로 무관심해지기로 한다. 그래서인지 아직까지 딸아이는 방문을 닫고 지낸 적이 없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런 시간이 계속 되길 바라지만 혹시 아이가 방문을 닫기 시작하는 시기가 온다면 왜 방문을 닫는지 아이의 마음을 한 번 더 들어보고, 그 행동을 존중해주려고 한다. 특별히 나쁜 짓을 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냥 아이만의 시간을 인정해주는 것이다. 아이는 그 시간을 통해서도 자라고 있을테니까. 

 사춘기 시절을 잘 보내기 위해서 아이의 유년기의 시간을 부모가 어떻게 함께 하느냐가 중요하다는 아동심리학자의 이야기가 지금에 와서 이해가 된다. 아이와 함께 시간을 보내고, 아이와 눈을 마주치며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했던 시간만큼 사춘기를 좀 더 수월하게 보낼 수 있다는 진리가 지금 내 눈 앞에 펼쳐지고 있으니까.  


 오늘도 아이는 퇴근해서 돌아온 나에게 

"그런데 엄마~ 있잖아~ 오늘~"

이라며 폭풍 수다를 늘어 놓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세상에 이보다 더 중요한 이야기, 재미있는 이야기가 어디있느냐는 듯 그 이야기들을 최선을 다해 들어줄 것이다. 물론 아이는 나의 리액션에 만족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공감해주는 만큼 아이와 나 사이의 관계라는 다리는 더욱 튼튼해질 것이고, 그런만큼 아이는 더 자기다운 단단한 사람으로 성장할테니까. 그리고 그렇게 조잘대던 아이가 자기 방으로 쏙 들어가서 온전히 자기 세계에 빠져 있는 동안은 그저 지켜봐줄 것이다. 무관심이라는 관심으로 자기 세계 안에서도 아이 혼자 쑥쑥 잘 자라고 있으리라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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