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로 떨림의 순간을 맛보고 싶어졌다.
중간고사를 앞둔 큰 아이는 시험이 일주일이나 남았는데도 떨려서 진정이 안 된다고 했다. 요즘 사춘기 호르몬이 극에 달해 감정 기복이 롤러코스터인데 요 며칠은 마음의 꼭대기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중인가 보다. 그런 아이에게 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떨림도 큰 법이라며 남은 기간 동안 열심히 해보라고 했다. 그런가 하면 둘째는 영어 학원에서 매번 스피킹 테스트를 보는데 너무 떨려서 외운 게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다.
"엄마, 나 신경쇠약증 걸릴 것 같아. 영어가 점점 싫어지면 어쩌지?"
워낙 소심한 성격이면서도 완벽주의 성향이 있어서 다른 아이들보다 긴장하는 게 더 심한 듯하다. 혹시 시험을 잘 못 보더라도 학원 선생님께 남기지는 말아달라고 얘기해준다고 해도 부담감이 덜어지지 않는 눈치이다.
실수를 덜 하기 위해서는 연습을 많이 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스피킹 테스트 날은 엄마가 파트너가 되어서 함께 외워보자고 했다. 엄마도 영어 공부를 같이 하는 셈 치고 말이다. 그래도 걱정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아 보였다.
시험기간이면 어김없이 감기에 걸리고, 장염에 걸려서 학교 앞 병원 원장님은 내가 병원에 나타나면
"또 시험기간이 됐구나!"
라고 하시곤 했다. 욕심은 많은 편인데 체력이 따르지 않아 마음을 참 많이 괴롭혔던 나였다. 지금에 와서야 많이 유해졌다고 하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에 비해 여전히 예민하고 걱정이 많은 사람이 나이다. 그리고 그런 나의 성향을 딸들이 고스란히 가지고 있으니 옆에서 보기에 여간 안타까운 게 아니다.
난 어릴 땐 차멀미도 참 심했어서 어딘가 가야 할 때가 되면 손에 비닐봉지를 꼭 쥐고 차를 탔다.
"나는 괜찮다. 나는 차멀미를 하지 않는다."
라며 마음속으로 세 번씩 되뇌어 보기도 했다. 하지만 늘 차가 출발하고 나면 10분도 안돼 속이 다 뒤집어 나올 듯한 쉴 새 없는 울렁거림에 고통이 몰려왔다. 그랬던 나였는데 이사 후 통학 거리가 멀어지면서 어쩔 수 없이 날마다 승용차, 버스를 타고 다니다 보니 나의 뇌는 점점 차라는 공간에 익숙해졌다. 이렇듯 시간이 흐르면서 스트레스 환경에 대한 노출이 잦아질수록 내 인생의 예민한 촉수들은 점점 무뎌졌다. 어떻게 보면 긴장감, 부담감을 느낄 기회가 적어졌다고도 할 수 있겠다. 그러다 보니 아이들 입장에서는 참 괴로울 수도 있겠지만 그 시간들을 다 지나온 사람 입장에서는 그 떨림조차 부러울 때가 있다.
"엄마, 내일 학교에서 축구 대회하는데 너무 떨려. 너무 떨려서 밥을 먹을 수가 없어. 엄마 떨림도 병이야?"
어제 학원에 다녀온 큰 딸은 야식 같은 저녁을 앞에 두고는 한껏 흥분이 되어서 톤이 업된 목소리로 말했다.
축구를 좋아하는 녀석인데 학교에서 반별 축구 대회가 있다며 꼭 이기고 싶다고 했다. 사실 우리 딸의 운동 신경은 그렇게 좋은 편은 아니다. 하지만 승부욕은 강한 편이라 운동장에서 자기 딴엔 죽을힘을 다해 축구공을 쫓아다니며 게임을 할 게 분명하다.
"엄마, 나 아무래도 그거 있잖아. 청심환. 그거라도 먹고 가야 할까 봐. 나 놀이기구 타기 직전보다 더 떨린단 말이야. 그런데 우리 집에 청심환 있어?"
시험 때도 먹지 않았던 청심환을 찾는 아이라니. 축구에 진심인 아이와는 달리 같은 반 여자 친구들은 축구에 적극적이지 않아 승리의 확률은 높아 보이지 않았다. 우승을 위해서라면 혼자라도 두 몫은 거뜬히 뛰어내겠다는 딸의 의기양양한 모습이 재미있으면서도 한 편으로는 부러웠다.
나에게도 그랬던 시절들이 있었던가?
대학 수시 면접에서 덜덜 떨다가 내가 대답을 해야 하는 차례에 목소리가 양 울음소리처럼 바르르 떨면서 나왔던 기억이 있다. 방송제의 총연출을 맡아 프로그램의 시작을 지시하던 그때의 터질 듯했던 나의 심장소리,
남편과 결혼식에서 수 많은 나의 지인들 앞에서 주례사 대신 각자 썼던 다짐의 글을 읽던 순간, 아이들이 유치원 발표회에서 처음으로 무대에 서서 준비했던 공연을 보여주는데 오히려 내가 더 바들바들 떨었던 기억, 장롱면허를 탈출하고 아이들을 뒷좌석에 태우고서 첫 서울 나들이를 감행하면서 후들후들 떨리는 다리로 브레이크와 액셀레이터를 번갈아 밟았던 때까지 그 수많은 떨림들이 이제는 아련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나의 마지막 떨림, 그 순간은 언제였더라? 최근의 떨렸던 순간이 있기는 했던가?
평범하고 무탈한 생활이 행복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한다. 특별히 나쁘지도 그렇다고 특별히 좋지도 않은 일상에서 딸아이의 떨림의 순간들을 지켜보니 나도 잊고 있었던 떨림, 그 긴장의 그 순간을 맛보고 싶어졌다. 그렇다면 어떤 도전을 해봐야 할까? 가능하다면 내가 좋아하는 글쓰기로 그 떨림의 순간들을 맛본다면 더 좋겠지. 그 떨림의 끝에 뿌듯함까지 함께 느낄 수 있다면 더없이 행복할 것 같다. 그래서 난 오늘도 글을 쓴다. 아직은 많이 모자라고, 아직은 부끄럽기도 하지만 언젠가는 나의 글 한 편 한 편이 나에게 짜릿한 긴장감, 떨림을 넘어서 설렘, 뿌듯함을 안겨줄 수 있는 그 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