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 딸아이가 나에게 침묵을 부탁했다.
우리 집 사춘기 소녀가 나에게 침묵을 부탁했다.
요즘 패션에 관심이 많은 딸은 저렴하고, 무난한 운동화는 거부하고, 좀 독특하고, 쉽게 구할 수 없는 운동화를 신겠다고 했다. 그리곤 고심해서 온라인 직구로 운동화를 한 켤레 구매했다. 성격이 급한 딸아이는 운동화가 언제 도착하는지 구매한 다음 날부터 날마다 물었으나 직구한 물품인 만큼 통관 절차까지 거쳐야 하니 운동화는 구매한 후 2주는 족히 기다려야만 했다.
그 기간 동안 딸아이는 낡은 신발과 낡은 롱 패딩을 입고 다녔다. 헐떡거리는 운동화를 신고 다니다가 넘어져서 팔을 다치고, 아끼던 점퍼마저 찢어져버렸기 때문이다. 패딩은 수선을 맡겼으므로 전에 입던 낡은 옷을 입고, 꼬질꼬질한 운동화를 신고 다니는 딸아이가 못마땅했기에 나 역시 딸아이의 새 운동화를 딸아이만큼 기다렸다.
말레이시아에서 만들어져 여러 나라들을 거쳐 먼 길을 돌아온 딸아이의 새 운동화가 드디어 우리 집에 도착을 했다. 하지만 아이는 그 신발의 주인이 될 수 없었다. 인터넷으로 사이즈를 찾아 주문한 탓에 신발 크기가 커도 너무 컸기 때문이었다. 오래 기다린 터라 아이는 많이 속상해했지만 이런 신발을 신고 다니면 또다시 넘어질까 두려웠기에 급기야 되팔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더 이상 꼬질꼬질한 아이의 모습을 보고 싶지 않은 나는 얼른 다른 새 운동화를 사자고 했다. 신발이 편하면 그만 아니냐며 동생과 내가 얼마 전 산 무난한 운동화를 고르길 회유했으나 여전히 본인의 취향이 뚜렷한 아이였다. 취향이 뚜렷하다는 게 나쁜 것은 아니지만 요즘 들어 그 딸아이의 독특한 취향이 불편할 때가 많다.
학원에서 돌아온 아이를 맞이하며 신발을 보는 순간 도대체 새 운동화는 언제 살 거냐는 말부터 튀어나왔다.
그러자 아이는 인상을 팍 구기면서
"엄마 지금 이 순간부터 신발 얘기하지 말아 주세요. 신발 생각하면 짜증 나니까."
라고 했다. 그런 아이에게 난
"그럼 계속 저 너저분한 운동화 신고 다닐 거야?"
라며 화를 내고 말았다.
"내 신발이니까. 내가 알아서 할게요. "
아이는 그러면서 방으로 쑥 들어가 버렸다.
아이의 '내가 알아서 한다' 선언에 어떤 말도 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이것이 바로 사춘기 아이와 평화를 지키기 위해 선택한 나의 침묵이다.
잔소리를 누르는 것이 쉽지 않으나 집안의 평화를 위해 침묵을 지키기로 했다.
당분간 고요한 평온이 집 안에 머물기를 바란다. 진심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