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웃게 하라.
아이들이 있는 집마다 그러하겠지만 2020년의 절반 이상을 코로나로 인해 반강제적으로 아이들과 붙어 있다 보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세끼 밥은 둘째 치고, 아이들의 학습적인 부분, 생활 습관적인 부분, 친구 관계 등 24시간을 붙어서 지내니 자꾸 레이더 망에 걸리는 것들 때문에 내 안의 '버럭이'가 자꾸 튀어나오려는 것을 겨우 참으며 지내고 있다.
아침이면 온라인 학습에 들어가 출석체크도 하지 않고, 유튜브 삼매경에 한창인 둘째. 조금 일찍 수업을 시작하면 조금 더 많은 자유 시간을 누릴 수 있다고 이야기해줘도 절대 일찍 시작하는 법이 없다. 아침을 먹어야 수업을 시작한다는 녀석 때문에 9시 이전에 책상에 앉게끔 아침 식사를 서둘러 주려고 노력했지만 더러 늦어지는 일이 있다. 그 이유 중 하나는 큰 아이의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습관 때문이다. 밝은 대낮엔 책을 잡지 않다가 꼭 잠자리에 들 때쯤 책을 붙들고 늘어지는 녀석에게 차마 '책 좀 그만 보고 자라'고 말을 할 수가 없다. 왜냐? 그 마저도 책을 보지 않을 것 같아서. 그러다 보니 일찍 깨우면 또 낮에 졸까 봐서 겨우 1교시 시작 전에 깨우다 보니 9시에 간당간당하게 식사가 시작된다. 다른 이유는 원래 아침형 인간이었던 내가 하루 종일 아이들 식사 준비와 숙제 봐주기, 그리고 늦은 시간 잠드는 녀석들 뒤치다꺼리까지 하다 보니 새벽같이 눈을 뜨는 일이 쉽지가 않다는 것이다. 요즘은 신랑의 아침 대용 간단한 음식은 고사하고, 신랑이 출근한지도 모르고 기절하듯 자고 있다가 알람 시계 소리에 깜짝 놀라 눈을 뜨는 일이 잦다.
그나마 얼마 전까지는 학기 중이라 온라인 수업이라도 있었는데 이번 주부터는 방학이 시작되니 오전 시간 내내 빈둥거리다가, 점심때가 되어서야 겨우 학원 숙제들만 해 가는 녀석들에게
"공부를 이렇게 안 해서야 되겠니?"
라고 잔소리와 함께 레이저 빔을 쏘다 보면 육체적 에너지와 함께 정신적인 에너지마저 고갈되고 만다. 여기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큰 아이의 사춘기까지 더해져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어마 무시하다. 옷과 친구에만 관심이 많고, 해야 할 공부는 뒷전으로 미루려는 녀석의 태도에 꾹꾹 눌렀던 잔소리를 고심하다가 '툭' 하고 하나 던지면 녀석의 눈빛은 세상 억울한 듯 변하고, 입은 쑥 내민 다음
"알았어. 알았다고."
라고 말하고는 방으로 쏙 들어가 버린다. 정말 알아서가 아니라 잔소리 좀 제발 그만하라는 의미인 것을 누구보다 잘 아는 나는 거기서 한 마디 더 나가려는 것을 얼른 입을 다물어 막아내곤 하는데 그러다 보니 정말로 내 미간 사이에 참을 인(忍) 자가 세겨지는 듯하다. 하지만 그렇게 신경질을 내고, 방으로 사라졌다가도 어느새 나타나서는 동생과 실실 대다가 까르르 넘어갈 듯 웃는 아이. 그러나 난 그런 아이들을 보며 쉽게 웃어 줄 수가 없다. 아직 끝마치지 않은 아이들의 숙제와 내가 해나가야 할 집안일들, 그리고 내 기대와 다르게 정말 기본만 하려는 아이들의 그 태도 때문이다. 숙제로 문제집을 풀어놓은 것을 채점한 후, 한 녀석씩 불러서 고치다 보면 가끔 언성이 높아지는데 그러다 얼굴을 붉히는 일도 생긴다. 그러면 서로 또 감정이 상한다. 이렇게 여러 날이 반복되다 보니 내 얼굴에 웃음이 사라진 지 참 오래됐다.
"엄마, 엄마는 만약에 이러면 어떨 것 같아?"
한참 오답 풀이를 하며 성을 내던 큰 아이가 할 일을 마치고 나오더니만 대뜸 나에게 물었다.
"엄마, 학습지 선생님이 오셔서 수업이 끝나고, 엄마랑 상담하잖아. 그때 내가 몰래 엄마의 방귀 소리를 녹음해서 벨소리로 바꾼 휴대폰을 미리 책상 밑에 넣어둔 거야. 그리고 엄마가 선생님하고 이야기할 때 내가 엄마 전화기로 전화를 하면 "뿌웅, 뿌웅, 뿡뿡" 방귀소리가 날 거 아냐. 그러면 엄마는 어떨 것 같아?"
"글쎄, 민망해서 얼굴이 빨개지지 않을까? 아님 그냥 못 들은 척해야 하나?"
"엄마 그러면 이러면 또 어떨 것 같아?"
"학습지 선생님이 오실 시간이 됐는데 엄마가 깜빡하고 화장실에 가서 큰 일을 본 거야. 그러던 도중에 선생님이 오셨고, 엄마가 뒤늦게 나와서 선생님께 인사를 했는데 선생님이 화장실 좀 쓰시겠다고 하는 거야. 화장실은 엄마가 큰 일을 본 탓에 냄새가 완전 장난 아니라면 엄마는 어떨 것 같아?"
"글쎄, 그냥 모르는 척해야 하지 않을까? 설마 선생님이 뭐라고 이야기하시겠어?"
"그러면 엄마가 거실에서 막 춤을 추고 있었는데 학습지 선생님이 오신 걸 모른 거지. 그러다 현관에서 들어오시는 선생님하고 눈이 딱 마주쳤다면 엄마는 어떨 것 같아?"
아이는 이런 엉뚱한 질문을 하면서 까르르 넘어가는데 난 마음 한 구석으로
'이 녀석이 이렇게 내가 곤란한 상황이 생기는 것을 상상하며 소심하게 상상 속 복수를 하고 있구나. 엄마가 그렇게도 밉니? 그래서 엄마가 곤란한 게 그렇게 좋아?'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계속 내가 곤란한 상황들을 연이어 들으면서 아이가 한심하다 생각됐으나 한바탕 웃으며 눈물까지 흘리는 녀석을 보니 어느새 아이를 따라 까르르 웃고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아이가 이야기 했던 그런 장면들을 상상하면서 내 웃음은 멈춰지지가 않았다.
"엄마, 엄마도 재미있지? 엄마도 웃네. 엄마도 눈물나?"
이 후에 들은 이야기이지만 요즘 엄마가 웃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던 아이는 이렇게나마 엄마가 웃는 모습을 보니 참 좋았단다. 가끔은 말도 안되는 상상들이지만 웃게 하니 좋지 않냐고 하는 아이에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 엄마의 잔소리에 대해 아이는 소심한 복수를 한 게 아니었구나. 엄마의 잔소리를 아무리 들었어도 그 마음을 사르르 녹일만한 엄마의 미소가 보고 싶었던 거였구나. 속 좁은 엄마가 차마 너의 마음을 몰랐어. 미안해. 앞으로는 엄마가 너희를 향해 더 많이 웃어주도록 노력할게. 잔소리보다 미소를 전하는 엄마가 될게. 오늘도 나를 한뼘 더 자라게 한 딸, 고마워. 그리고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