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주도에서 아이 주도로 넘겨주기
큰 아이 수학 숙제를 채점 매기고, 오답노트를 봐주는데 울상이 되어 버린 아이가
"엄마, 이제 숙제 내가 채점하면 안 돼? 친구들도 다 자기가 하는데."
라며 입이 쑥 나왔다.
"네가 채점해도 되지. 그런데 틀린 문제들 답지 안 보고 다시 풀고, 풀이과정도 잘 쓸 수 있겠어?"
그런데 답이 없다. 내가 채점하고 체크를 해도
"풀이과정까지는 아니어도 식이라도 제대로 써라."
잔소리를 해도 들을까 말까 한데 과연 혼자 알아서 할까 싶었다.
이미 기분이 상할 대로 상한 아이는 '틀린 문제는 내일 고칠래' 라며 졸리다고 침대에 누웠다.
공부하는 과정과 방법을 알려주는데도 자기 고집대로 대충 하려는 아이를 두고, 답답함이 몰려왔다.
그러다 문득 나는 언제부터 혼자 공부를 시작했던가 기억을 되짚어봤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엄마가 일을 시작한 후부터 스스로 해야 하면 하는 일이 많아졌다.
아침에 옷을 챙겨 입고, 머리를 묶는 일, 매일 알림장을 보고, 준비물을 챙기는 일,
그리고 시험기간에 스스로 공부하는 것까지 차츰차츰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되었던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이제는 우리 아이도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아가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도 들었다.
다음 날 아침을 먹으라며 아이를 깨우고 나서
"엄마가 어젯밤에 생각해봤는데 엄마도 초등학교 6학년 때는 스스로 공부했던 것 같아. 너도 이젠 혼자 공
부 할 때가 됐지. 대신 제대로 해야 돼. 그리고 혹시나 엄마 도움이 필요하다면 언제든 이야기하고."
라고 말하며 문제집의 답안지들을 아이에게 넘겨줬다.
처음부터 잘하리라고는 생각하지는 않는다.
누구든 시행착오는 있는 법이니까. 그 과정을 거쳐서 정말 내 공부를 하는 방법을 터득해 나아가야 하니까.
그리고 방학이 시작되면서 방학 전 끝났던 문법 강의를 복습하는 의미로 중학교 문법 교재를 새로 건네주고, 인터넷 강의도 있으니 공부하다가 필요하면 인터넷 강의도 참고하라고 했다.
처음엔 혼자 문제를 열심히 풀더니 어느 단원에서인가 푼 문제들이 좌르르 비가 내리자 스스로 인터넷 강의를 찾아서 결재해 달라고 요청을 했다. 이 정도만 돼도 엄청난 발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더니 집에서 공부하던 수학교재를 이야기하며 다음 학기 문제집은 다른 문제집으로 사달라고 했다.
너무 어렵기도 하고 계속 같은 형식의 문제집을 보니 지루하단다.
'그래. 딸아! 너도 생각이라는 것이 있긴 했구나. '
완전한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로 접어들면서 아이 수학학원은 휴원이라고 문자가 왔다.
오늘까지가 방학이었고, 내일부터가 강의 시작이었는데 휴원 조치가 내려진 거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적인 학습은 이루어져야 함을 아이도 역시 알고 있었다. 문제집을 풀고 나서 잘 모르는 강의는 동영상도 찾아보고, 동영상 강의에 나와 있지 않은 문제는 어떻게 푸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우려와는 다르게 다행히 시작은 매우 순조로운 편이다.
2학기 학습지, 한자 학습지도 군말 없이 푸는 녀석. 어찌 보면 "해라 해라" 잔소리를 할 때보다 스스로 알아서 착착착해놓는 걸 보니 진작에 스스로 하게 놔뒀어야 했나 싶기도 했다.
학습적인 부분은 이렇게 스스로 잘해나가고 있지만 보기와는 다르게 참 덜렁거리는 녀석의 습관들 역시
이제는, 아니 더 늦기 전에 고쳐줘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주에도 학원 가방을 할머니네 집에 두고 왔다가 다시 고모네 1박하러 들고 가서는 또 놓고 온 녀석.
마스크 쓰고 가는 것을 자주 잊어 각 학원 별로 선생님께 마스크를 빚지고 다니는가 하면 학원 차량을 타고나서 전화를 해서는
"엄마 나 책 안 가져왔는데 어떻게 해."
하는 무지막지한 덜렁이. 누가 보면 1학년 이야기 같겠으나 우리 집 첫째, 6학년이며 몇 달 후면 중학교에 갈 아이의 이야기이다.
생각해보면 내가 너무 많은 부분을 아이들에게 맞춰줬던 것이 아이의 꼼꼼하지 못함에 한몫을 하지 않았을까 싶다. 학교가 코 앞이다 보니 안 가져갔던 일기장, 독서록, 물통, 교과서, 멜로디언 등을 선생님 몰래 가져다준 일, 학원 수업에 과제를 제 때 제출하지 않으면 점수가 누락된다는 이유로 수업에 임박해 집까지 다시 와서 책을 가져다줬던 일 등 이런 소소한 일들이 아이를 덜렁이로 만들었구나.
그래서 오늘은 아이에게 선전포고를 했다.
"엄마는 이제 더 이상 네가 무엇을 가져다 달라고 부탁할 때 가져다주지 않을 거야. 그러니까 이제 네가 미리 챙겨. 내년이면 중학생인데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할 때이니까."
덜렁거리는 습관이야 말로 쉽게 고쳐지긴 어렵겠으나 이젠 정말 스스로 챙겨야 할 때이다. 늦었다고 했을 때 이미 늦었다고는 하지만 늦었어도 고쳐야 하는 습관이니까.
아침에 학교 가기 전에, 학원에 가기 전에 아이는 긴 머리를 묶느라 화장실에서 땀을 삐질삐질 흘리며 얼굴이 벌게지도록 안간힘을 쓴다. 하다가 하다가 안되면 팔이 아프다며 선풍기를 틀고 귀신처럼 풀어헤친 머리로 바람을 쏘인다. 잠시 휴식 후 아이는 다시 머리 묶기를 시도한다. 머리를 묶느라 10분도 넘게 걸렸지만 스스로 만족하도록 빗질을 하고, 다시 풀었다 묶기를 반복해서 결국은 원하는 스타일로 만드는 녀석. 어찌 보면 이 모든 과정을 거쳐야지만 가능한 일들이 있는데 그동안 난 그 중간의 노고들 없이 아이가 완벽해지기만을 바라 왔던 건 아닐지 머리 묶는 아이를 보며 반성해봤다.
물고기를 잡아주기보다는 물고기 낚는 법을 알려줘야 할 때
그렇게 조금씩 나의 주도가 아니라 아이 주도로 놓아주어야 할 때이다.
아이야!
너의 말처럼 후회를 해도 네가 하고,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나서 더 멀리 뛸 수 있기를
이제는 너의 뒤에서 열심히 응원해줄게.
그리고 영원히 지켜봐 줄게.
그렇게 진정한 네가 되어가려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