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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Oct 20. 2023

우리가 사는 삶은 신호등이 없는 길이 아닐까

내게 꼭 맞는 신호와 방향, 속도를 찾아가기까지 

동생과 순례길을 걸을 때였다. 그날은 유독 경사가 높아 동생이 걷기를 힘들어했다. 마침내 끝을 모르는 산길이 마무리되고 오늘의 숙소가 있는 도시가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걸음을 더 빨리했다. 멀리서는 작게만 보였던 건물들이 우리 키를 훌쩍 뛰어넘을 즈음, 신호등이 나왔다. 직전까지 초록 불이었던 신호가 빨간불로 바뀌었다. 우리는 자연스레 사람들을 따라 멈춰 섰고 대기하던 차들은 기다렸다는 듯 쌩쌩 달렸다. 


동생이 가만히 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말했다. 신호등이 있어서 참 다행이라고. 걸어오는 동안 지쳤었는데 신호등 덕분에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것 같다고. 


다시금 주위를 둘러봤다. 신호등은 우리의 걸음을 가고 멈추게 한다. 오래 뛰어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른 사람 앞에 초록 불이 깜빡인다. 지금은 가라고, 더 가야 할 때라고. 필요하다면 순식간에 빨간 불로 바뀌어 의도치 않은 브레이크를 건다. 잠시 멈춰 주변 벤치에 앉을 시간을 마련해주고 앞을 주시하느라 옆을 둘러보지 못하는 운전자에게 잠시나마 하늘을 바라볼 기회를 준다. 만약 세상에 신호등이 없다면 어땠을까. 별다른 이유를 찾지 못한 이상 사람들은 계속 앞으로 나아가기만 하지 않았을까. 지쳐 더는 움직일 수 없을 때까지.      

 

우리가 사는 삶은 신호등이 없는 길이라는 생각을 했다.    

 

갈 때와 아닐 때를 명확히 구분하여 일시 정지할 수 있다면 참 좋겠지만 삶에는 그런 정지 버튼이 없다. 어김없이 오늘이 가고 내일이 온다. 자유 의지와는 관계없이 우리 앞에는 길이 놓인다. 이 길을 얼마나 어떻게, 언제까지 걸을 것인가. 그 신호는 외부의 세계가 아닌 나만이 정할 수 있다. 길이 있어서 가는 게 아니라 지금이 가야 할 때라서 걷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비단 신호등뿐만이 아니다. 정신없이 가다 보면 어느 순간 여러 갈래 길이 나온다. 어디로 가는 게 가장 좋은 판단인지 지금은 결코 알 수가 없다. 끊임없이 고민한다. 왼쪽으로 갈까, 앞으로 쭉 갈까. 아니다, 오른쪽으로 가는 게 좋겠어. 고민의 결과물로 머릿속에 방향 표시등을 켜준다. 길이 하나밖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직접 다른 길을 만들어야 하는 상황도 생긴다. 언뜻 허허벌판으로 보이는 맨땅에 내 손으로 흙을 파고 벽돌을 올려 길로서 기능하는 보도를 쌓는다. 지금부터는 걸어왔던 길과는 다른 곳으로 향해보라고. 


신호와 방향이 정해졌다면 결정해야 한다. 나는 얼마만큼의 속도로 그 길을 가겠는지를. 짧은 100m를 전속력으로 불태우고 끝낼 게 아니라면 페이스 조절은 필수다. 어느 길이냐에 따라 각기 다른 제한 속도가 있는 것처럼 스스로에게도 시기에 따라 여건에 따라, 맞춤형 속도가 다 다를 터였다. 열렬히 뛰고 있는 내 옆에서 누군가 스포츠카를 타고 빠르게 달려도 좌절하지 않는 성숙함이 필요한 시점이다.    

  

모두 모인 운동장에서 ‘땅’하는 출발 소리가 들리면 우르르 동시에 출발하는 것처럼, 한때는 사람들이 다 같은 곳을 향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우리는 같은 시공간 속에서도 각자 다른 선택을 하며 삶을 만들어왔다. 필연적으로 외로운 길 위에 서 있는 우리는 저마다의 바다를 항해할 자신만의 ‘안정 속도’가 필요하다. 결국 지난한 삶의 끝에 얻어가는 건 수많은 경험이 밑바탕 된 나만의 안정 속도가 아닐까. 


매일같이 내게 맞는 신호와 방향, 속도를 찾아간 다양한 선택과 변화의 이야기들을 풀어냈다. 끝없는 불안함이 찾아올 때, 오롯이 자신을 위한 결정이 필요할 때 이 책이 그 마음에 조금의 확신을 던져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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