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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Oct 20. 2023

세상의 기준선 바깥에 서 있는 법

나의 시기가 사회가 지향하는 물결과는 다르게 흘러간다면 

“나이를 너무 많이 먹었어.” 시간이 갈수록 주위에서 점점 더 자주 듣게 되는 말이다. 까마득하게만 여기던 나이에 내가 실제로 도달할 줄은 몰랐기에 빠르게 흘러가는 시간에 대한 순수한 한탄이 섞였다. 동시에 나이에 비해 내가 해놓은 게 무엇인가 생각하게 되는 부담감 또한 짙다. 이십 대 중반이 되면, 서른이 되면, 마흔이 되면. 우리는 나이에 따라 이 정도는 갖춰놔야 한다는 비슷한 인지적 기준을 공유한다. 보이지 않는 선에 쫓길 필요가 없다는 걸 머리로는 잘 알지만 애써 지우기에는 쉽지 않다. 가지고 있어야 하는 구체적인 내용을, 정도를 지나치게 자세히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내게 그런 기준선을 단호하게 뿌리치는 방법을 알려준 한 친구가 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나와 같은 반이었던 그녀는 대학교를 졸업한 후 1년 동안 교직원 일을 하다 끝내고는 5년을 쉬었다.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 기간만큼은 애써 무언가 하려는 노력을 내려놨다고 한다. 일어나서 휴대폰을 보다 밀린 집안일을 하고, 다시 누워서 넷플릭스를 보다가 퇴근하신 부모님 저녁을 챙겨드렸다. 주기적으로 운동을 했고 가끔은 서점에 가서 읽고 싶은 책을 사 왔다. 실업급여를 받다 돈이 다 떨어지자 부모님께 잠시 용돈을 받던 시절도 있었고, 카페 아르바이트도 했다. 마지막 1년 정도는 새로운 분야의 공부를 시작해서 자격증을 땄다. 직장을 구한 것도 불과 최근의 일이었다.      


그녀가 쉬던 기간 중, 하루는 함께 가죽 공방에 갔다. 나는 선물용 가죽 지갑을, 그녀는 이어폰 케이스 제작을 예약했다. 간단한 설명이 끝난 뒤, 수업을 진행하시던 분이 우리에게 무슨 일을 하고 있냐고 물었다. 나는 당시 다니던 직장의 이름을 댔다. 친구는 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자 이런 대답이 돌아왔다.     


“아, 취업 준비하고 계시는구나.”

“아니요, 쉬고 있어요.”      


그녀는 낯을 많이 가렸다. 그런 그녀가 그 순간만큼은 아주 단호한 표정으로, 묻는 이의 눈을 정면으로 마주 보며 답했다. 옆에서 그녀의 생각이 들렸다. 그냥 쉬고 있다고.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다고. 지금은 일자리를 구하지도, 일할 생각도 없다고. 마음으로 전해지는 그녀의 목소리에 나는 그저 무한 박수를 쳤다. 주위에 그녀뿐이었다. 가장 바삐 달려가는 20대의 시기에 일하고 있거나, 일을 구하는 중인 이분법적인 상태 바깥에 있겠다고 당당히 선언한 사람은.      


우리는 무언가를 지속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뭘 하고 있냐고 묻고, 무언가를 그만둔 사람에게는 뭘 할 것이냐고 묻는다. 충분히 쉬라고 조언할 때도 기저에는 대개 유한함이 깔려 있다. 곧 또 무엇인가를 해야 할 거고 쉴 수 있는 시간은 지금뿐일 테니 마음껏 누리라고. 희귀하게 주어진 자유 안에 가능한 한 최대한 많은 것을 하라고. 


친구가 새롭게 만든 선택지를 보며 꼭 모든 걸 이렇게 욱여넣으며 살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녀는 할 것에 대한 질문으로 적셔진 세상에서 적어도 일정 기간 자신을 건져 올렸다. 모두가 물음에 대한 대답을 찾아 헤맬 때, 그녀는 이 질문과 관련 없는 사람이 되고자 했다. 나 또한 언제쯤 일자리를 구할 생각이냐고 묻기보다는 그녀가 보내는 시간 자체를 존중하는 친구가 되고 싶었다.


결코 그녀의 집이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편이라서가 아니다. 그녀의 부모님도 매번 그녀를 걱정하다 말을 아끼셨다. 그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술이 조금 들어가면, 부모님의 한숨을 털어놓고는 했다. 그러나 그녀에게는 회사를 나가는 일이 생각보다 버거웠다. 다친 마음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했고 다시금 사회로 발을 딛을 준비가 필요했다. 그 기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그녀조차도 몰랐다.

     

그녀는 5년가량의 백수 생활을 마치고 일산에서 양재로 출퇴근하고 있다. 먼 통근 거리 못지않은 지방 각지로의 출장 생활에 늘 백수였던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일에 대한 욕심이 생겨 주말에도 서울로 향해 학원에서 개발 공부를 한다. 주 7일 쉬지 않고 바쁜 그녀의 모습에 가끔은 ‘내가 오래 알던 그 친구가 맞나?’ 싶은 생각이 찾아오기 일쑤다. 그럼에도 지금이 그녀의 ‘그때’인가 싶어 고개를 끄덕이게 됐다.

     

내게 찾아오는 시기적 흐름이 우연히도 혹은 필연적으로 사회가 나아가는 물결과는 다르게 흘러갈 수 있다. 실은 딱 들어맞는 게 더 이상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럴 때 세상의 평가적 관점이 아닌, 내 삶을 그 자체로 보듬어줄 수 있는 시선을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기를 바란다. ‘나’를 모른 채 쉬이 말하는 사람들 앞에서 내게 지금 필요한 게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오롯이 한 명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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