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하고도 바꾸고 싶지 않은 삶
요즘 뭐하냐는 질문에 딱 떨어지게 대답하기 어려운 삶을 살고 있다. 명사로 말하기는 더더욱이 어렵다. 서른을 코앞에 둔 나는 한 방송국 홍보팀에서 계약직으로 일한다. 계약직의 단점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우선 “여기서 일해요”라는 말 뒤에 꼭 부연 설명이 붙게 된다. 그 회사에 다닌다고 말하기에는 비정규직이고 “오~”하는 상대의 반응이 나오면 괜한 양심에 찔리기 때문에 그 전에 먼저 실토한다. 근무는 언제까지이고, 그때가 되면 나는 다시 경력 이직을 노리는 취준생이 될 거라고. 남들이 어떻게 볼지는 모르겠지만 솔직하게 나를 낮추고 시작하는 게 마음이 더 편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그렇게 봐도 괜찮은 이유는 따로 있다. 나는 저녁에는 글 쓰는 사람이 된다. 정확히는 작가 지망생이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며 교육원에 다닌다. 극본을 연습하고 틈틈이 쓰고 싶은 수필을 쓴다. 지망생의 신분에도 장단점이 있다. 가장 큰 건 내가 더 잘난 무언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품은 사람이라는 것. 이는 사회에 얕보이지 않을 무기가 되어주지만 사실 직역하면 지금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뜻이다. 지망생은 나를 증명해주는 신분은 되지 못하니까. 그래서 요즘 내 소개는 이렇다.
“홍보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드라마 작가 교육원에 다니고 있어요.”
내가 생각해도 퍽 웃기는 자기소개다. 둘은 상호 보완관계라 어느 하나라도 빠지면 안 된다. 전자는 어떻게든 먹고 살길은 확보하고 있다는 방증이고 후자는 이 상태에 머물러 있지 않을 거라는 의지를 내포한다. 계약직이나 지망생만 남으면 답이 없지만, 합쳐지니 꽤 그럴듯해 보였다.
애써 평균을 만들어준 이 문장을 확보하기까지도 오랜 노력과 다짐의 시간이 들었다. 사람마다 목표와 한계치는 다 다른 거니까. 나는 어정쩡한 상태가 한데 모인 이 조합이 마음에 든다. 늘 해내고 또 실패했던 나를 그대로 대변해주는 것 같아서. 긴 서사를 들어야만 비로소 이해할 수 있는 삶은 얼마나 매력적인가. 어느 명사로 나에 대한 설명이 끝나버리면 오히려 더 서글퍼질 것 같았다.
이런 각오가 꼭 형편없이 무너지는 때가 있는데 부연 설명이 의미 없는 곳에 갔을 때다. 며칠 전 청담으로 결혼식을 다녀왔다. 부모님 지인들이 다 모인 자리라 얼굴을 보이고 인사드리는 게 주목적이었다. 오랜만에 뵌 분들이 많았던 그곳에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은 뻔했다. 누구 딸은 약사가 됐고, 누구 아들은 삼성전자에 붙었고, 누구는 회계사를 하고 있다더라. 그날 결혼한 두 분도 다 공기업에서 일하고 있었다. 한 친구분이 말을 이어가다 나에게 뭘 하고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적당히 웃으며 직장인이라고 답했다.
그곳에서 인정받지 못한다고 해서 내가 살아온 시간의 의미가 없어지거나 영향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안타까웠던 건 그곳에서 한 마디를 덧붙이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이었다. 나로서는 더 열심히 글을 쓰자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거기서 근황을 전해 들은 그 누구도 부럽지 않았다. 잘된 결과에 순수한 마음으로 박수를 보내줄 수는 있어도 그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았다. 내가 하고 싶은 모습도, 꿈꾸는 모습도 아니었다.
드라마 '또 오해영'에 이런 대사가 나온다. 고등학교 때 같은 반이었던 동명이인의 친구를 부러워했던 이의 회고다.
“근데 만약에 내가 완전히 사라지고 걔가 된다면,
그런 기회가 온다면, 난 걔가 되기로 선택할까?
안 하겠더라구요.
난 내가 여기서 좀만 더 괜찮아지길 바랬던 거지,
걔가 되길 원한 건 아니었어요.
난 내가 여전히 애틋하고 잘 되길 바래요.”
우리가 동경하는 건 대개 타인의 재력, 관계, 능력 같은 특정한 부분이지 그의 삶의 전부가 아니다. 스스로 고민하며 동고동락했던 정 때문인지 몰라도 나는 내 삶이 제일 소중하고 사랑스럽다. 뒤를 돌아보며 고생했다고 한없이 쓰다듬어주고 싶다. 입 떡 벌어지는 신분 같은 거 마련하지 못해도 괜찮으니 그냥 이 삶이 조금 더 잘 되고, 조금 더 나아지길 바란다. 아무하고도 바꾸고 싶지 않은 삶이라는 거. 그게 남은 평생을 함께 애쓸 나라는 동지에게 보내는 최고의 찬사이자 애정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