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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Oct 20. 2023

나는 애를 쓰지 않는데 엄마가 "애쓴다"고 말했다

내게 남겨진 몫을 감당하는 것 

아빠가 돌아가신 건 13년 전이었다. 아빠와 친했던 친구 몇 분은 아직도 우리에게 종종 연락을 주신다. 얼마 전, 아저씨가 고기를 사주겠다며 전화를 주셔서 엄마와 점심을 먹으러 나갔다. 평소처럼 밥을 먹고, 소소한 근황을 나누다 커피를 마시러 가는 길에 아저씨가 내게 말씀하셨다.    

  

"지원아, 엄마한테 잘해. 

너희 엄마, 아버지 돌아가시고 열흘도 안 돼서 바로 일 시작하셨어.”   

   

우리 엄마는 평범한 주부였다. 동생을 데리고 장을 보러 나간 어느 날, 엄마는 전화로 아빠의 사고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내 나이 15살, 동생 나이 10살 때의 일이다. 


평생의 반려자를 잃은 엄마에게 남은 건 애통한 슬픔을 느낄 시간이 아닌, 옆에서 엄마만을 쳐다보고 있는 우리였다. 아직 제 밥벌이를 하기에는 너무도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두 딸. 엄마는 당시 아빠 친구들이 알아봐 준 일자리에서 14년째 일을 이어가고 있다. 문자 그대로 하루아침에 뒤바뀐 현실 앞에서 그녀는 주어진 상황을 묵묵히 감당해냈다. 그렇게 우리를 키웠다.  

   

대학교에 들어간 후, 나는 아르바이트 기계라 불릴 정도로 일을 했다. 각종 단기 아르바이트부터 주간, 야간을 가리지 않았다. 단 한 번도 힘들어서 못 하겠다고는 생각한 적이 없었다. 우리 엄마를 봤기 때문이었다. 자식은 부모를 통해 말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행동을 배운다. 견디기 어려운 현실에도 책임을 지고 제 몫을 다해온 우리 엄마. 그럼에도 한 번도 힘들다고 하거나 이를 알아주길 바라지 않은 그녀의 모습에 나 또한 감히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엄마는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온 내게 안타까운 표정으로 말했다. 

     

"애쓴다."      


분명 나는 애를 쓰지 않는데, 엄마는 내게 애를 쓴다고 한다. 내가 애를 쓰는 건 다른 종류였다. 친구들과 같이 아르바이트를 구하는 페이지를 켜면, 친구들은 리스트를 쉽게 넘겼다. 이건 힘들어 보여서, 이건 지원하고 싶지 않아서. 그렇게 쭉 지우다 보면 할 만한 게 하나도 남지 않는다고 웃었다. 나는 그런 친구들 앞에서 애써 미소를 지었다. 나는 그게 힘든지 아닌지 가릴 처지가 아니었으니까. 그런 일마저도 간절해 마지않았으니까. 


상황을 탓하고 싶은 마음이 왜 없었을까. 그러나 그 끝을 따라가도 아무런 답이 나오지 않았다. 괴로운 건 결국 내 마음뿐이었다. 이 상황을 돌파할 방법을 구하는 것만이 남은 우리의 몫이었다.   

   

그때보다 조금 더 자란 지금도 친구들과 나누는 이야기는 비슷하다. 아르바이트 걱정은 커서 퇴사 고민이 됐고, 자취방 얘기는 결혼해서 살 수 있는 아파트가 됐다. 파도는 끊임없이 이겨내도 각기 다른 모습으로 끝을 모르고 다가왔다. 엄마도, 나도 여전히 새롭게 밀려드는 일을 감당하느라 애를 썼다. 그 사이 동생이 성인이 됐다. 엄마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대상이 한 명 더 늘었다.

 

동생이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나온 어느 저녁, 유니폼을 갈아입고 나와 휴대폰을 켰는데 메시지가 두 통 와 있었다고 한다. 엄마와 내게서 각각 ‘고생했어’라고. 타인이 자신을 어떤 시선으로 보더라도, 누군가 구태여 자신의 고단함을 알아주지 않아도 그 덕분에 힘들지 않았노라고, 그녀가 말했다.

     

내가 보고 배운 건 그런 것이었다. 애쓰는 것, 그리고 애쓰는 누군가에게 마음을 다해 애쓴다고 말해주는 것. 그랬기에 지나온 삶에 괴로움은 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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