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땅 근육인을 꿈꾸며
회사 점심시간, 또래 언니 오빠들과 마주 앉아 요즘 돈 쓸데가 너무 많다고 얘기하고 있었다. 옷을 사고 적금을 넣는 데에 얼마나 들었는지를 이야기하고 있었는데 지나가던 팀장님께서 우리 대화를 듣고는 말씀하셨다.
“20대 때는 돈이 아니라 근육을 저축해 놓아야 해.”
합정동 근처에 살던 팀장님은 매일 퇴근 후 한강을 뛰셨다. 나이가 들면 근육이 쉽게 붙지 않으니 한 살이라도 더 어릴 때 운동을 해야 한다는 의미였다. 우리는 “오, 띵언이다.”며 반응했지만 사실상 그로 인해 돈도, 근육도 더 불어나지는 않았다.
후에서야 그게 비단 운동만을 의미하는 게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든 일에는 근육이 필요하다. 우리가 생각할 때마다, 움직일 때마다 모든 영역에서는 점차 근육이 쌓인다.
오랜 시험을 준비하다 접었더라도 책상 앞에 골똘히 머리를 싸매고 있던 근육이 남아있다. 돈을 모아도 돈은 언제든 사라질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모으기 위해 일하고 소비를 아꼈던 근육들은 사라지지 않는다. 운동해서 키워놓은 근육이 다 빠져도, 귀찮음을 이기고 운동하러 나갔던 행동의 습관은 체내 깊은 곳에 여전히 저장되어 있다.
우리가 저축해 놓아야 하는 건 이런 것들이었다. 결코 쉽게 없어지지 않는 것들. 나를 둘러싸고 있는 모든 외부 환경이 증발해도 절대적으로 나를 지켜주고 있을 것들. 무엇인가를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도 내가 서 있는 곳이 맨땅은 아니라고 말해줄 것들.
우리가 보낸 오늘은 지금까지 우리가 키워놓은 삶의 근육대로 움직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언제든 바뀔 수 있는 것들을 움켜쥐고 있는 사람보다 주어지는 모든 걸 두렵지 않게 해낼 수 있는 근육인을 꿈꾼다. 노후로 누구보다 짱짱한 지지대를 내밀 수 있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