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계절을 기다리면서
여름과 겨울 중 겨울을 더 좋아한다. 추위를 잘 견뎌서라기보다는 더위를 참을 자신이 없다. 더우면 상대방에게 짜증을 내게 되는데, 오히려 추울 땐 상대방을 껴안고 핫팩을 챙겨준다. 서로의 온기를 나눌 수 있는 계절이 좋았다. 하지만 풍경으로 나눈다면 반대다. 풍경의 온기는 겨울보다 여름에 더 가득했다.
겨울에 길을 걸으면 황량함이 더 눈에 띄었다. 연약하게 자리를 지키는 나뭇가지들은 그 자체로 아름답지는 못해서 꼭 쓸쓸한 느낌을 주었다. 평소에 떠올리는 나무는 항상 풍성한 밀도를 지니고 있는 모습이었으니까. 원래대로라면 그곳은 꽃이 피어나고 나뭇잎이 돋아야 할 자리였다. 나도 모르게 늘 무언가가 비어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그런데 어느 날은 나무가 외로운 덕분에 주변 풍경들이 더 잘 보인다는 걸 깨달았다. 가려져 보이지 않았을, 멀리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오는 사람들과 세상을 붉은 빛으로 물들이는 햇빛. 달갑지 않게 여겼던 차가운 나무들이 없었다면 내가 본 시야의 하늘은 모두 어딘가에 숨어있었겠구나. 푸르름이 세상을 채울 때가 있다면 그 시야를 넘실거리는 한적함이 대신 주위를 채우기도 했다.
비어있고, 차 있고를 판단하는 건 어디에 기준을 두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하지만 계절에 절대적인 기준을 세울 수는 없다. 이는 옳고 그름도, 좋고 싫음도 아닌 순환이니까. 이럴 때도 있고, 저럴 때도 있는 거라 구태여 비교하는 건 무의미하다. 그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즐기는 게 반복되는 계절을 맞이하는 최선의 방법이었다.
어디 계절에게만 그럴까. 사람에게도 기준이 존재할 수 있을까. 나의 삶을 어느 범주에 끼워 맞추려 했던 노력을 멈췄다. 그저 천천히 돌아올 나의 다음 계절을 기다리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