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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Oct 21. 2022

반복되는 고민을 마무리짓지 않으면

애정해주는 어른의 충고를 듣고 그처럼 되고 싶지 않아 눈물을 쏟았다 

스물한 살, 나보다 한참 나이가 많았던 어른에게 호되게 욕을 먹고 울었던 기억이 있다. 한 인터넷 신문사에서 일할 때였다. 당시 대학교 친구의 소개를 통해 시작하게 되었는데, 재택근무 형태로 매일 몇 개의 기사를 작성하는 형태였다. 우리는 하루 중 각자 배정받은 시간이 있었다. 나는 평일 오전 6~9시 담당이었다. 당시만 해도 포털 사이트에는 실시간 검색어 순위가 있었다. 우리는 세 시간 동안 실시간 검색어에 오른 키워드에 맞춰 사람들이 클릭할 만한 기사를 썼다. 다른 사람들도 다 쓰는 내용 말고, 검색어와 연관된 새로운 소스를 검색해 모아쓰는 방식이었다. 작성해야 하는 기사의 개수는 대략 10개. 그 시간 동안 합산된 실시간 조회 수가 곧 우리의 실적이었다. 


어떻게 보면 제목이 전부였다. 흔히 말하는 낚시용 기사, 혹은 자극적인 기사가 조회 수가 높았다. 그러나 나는 최소한의 정도는 지키고 싶었다. 누가 봐도 욕하지 않을 정도의, 지인에게 보여줄 수 있을 정도의 선에서 제목과 내용을 썼다. 이렇게 써서 조회 수가 낮다는 소리를 듣고 싶지 않아 같은 시간 동안 기사를 스무 개씩 올린 날도 있었다. 나는 꾸준히 높은 조회 수를 유지하는 편이었고, 사장님은 나를 좋아하셨다. 기사 쓰는 일 외에도 SNS 계정 관리 등 조금씩 더 많은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


이따금 회의감도 들었다. 떳떳한 일은 아니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장님은 내게 월급을 100만 원으로 올려주겠다고 하셨다. 최저시급이 5,580원이던 때였다. 힘이 드는 일도 아닌데 학교에 다니면서 매달 100만 원, 한 학기 동안 400만 원을 벌 기회를 포기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내 위의 팀장님, 사장님과 연락하는 빈도수가 잦아지자 회의감이 찾아오는 주기도 점점 짧아졌다. 그들은 점점 더 자극적인 것을 원했다. 나는 ‘이게 맞나?’ 종일 고민할 내용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는 그들의 목소리가 매일 맴돌았다. 한 연예인에게 소송이 걸릴 정도의 낚시용 기사를 쓰고 조회 수가 터졌다고 좋아하는 상사의 모습을 본 후, 나는 사장님께 전화를 걸어 그만두겠다고 말했다.

 

사장님은 노발대발하며 한참 동안 화를 냈다. 내게 그런 식으로 행동하면 어디 가서 절대 성공하지 못할 거라고. 어른에게 고성과 함께 온갖 욕을 먹기는 처음이었다. 통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 동안 심장이 쿵쿵댔다. 조금 지나서는 사장님께 연락받았는지 팀장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낚시용 기사를 클릭하는 사람들이 바보 같아 보인다는 말을 한 사람이었다. 


나름대로 나를 아꼈던 그는 나에게 이런저런 얘기를 털어놓았다. 그는 원래 기획사를 운영했다고 했다. 그러나 사업이 어려워지고 나이가 많아지자 결국 돈이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다고. 이 일을 이어가면 더 큰돈을 벌 기회가 있기에 지속하는 것이라고 했다. 아직 어려서 모르겠지만, 세상은 내가 생각하는 것만큼 아름답지 못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게 그와 나의 마지막 대화였다.

      

이날,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온 나는 침대에 앉아 하염없이 울었다. 사장님의 심한 말도 상처였지만, 그보다는 호의를 가지고 얘기하는 팀장님의 조언이 더 나를 좌절하게 했다. 지금 나의 선택이 그저 어린 날의 치기일까 봐, 내가 나중에 같은 말을 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까 봐 두려웠다. 눈물을 쏟으며 다짐했다. 훗날 절대 이런 말을 남기는 어른은 되지 말자고. 이런 사람 밑에서 일하지 않으려면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정말 잘 살아야겠다고.

      

나는 아직 성공은 하지 못했지만 적어도 나보다 어린 누군가에게 절망감을 안기지는 않을만한 이십 대 후반이 되었다. 그처럼 서른이 넘어가도, 그와는 같은 행동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제는 확신할 수 있다.


나에게 악담을 퍼부었던 사장님은 몇 주 후에 전화를 걸어왔다. 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팀장님의 연락도 조용히 거절 버튼을 눌렀다. 해가 바뀐 뒤, 같이 일하던 친구들이 몇 달째 월급을 받지 못해 소송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다는 얘기를 뒤늦게 전해 들었다. 


여전히 그때 그만둔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지금 와서는 아쉬울 것 하나 없어 보이지만 정작 그 환경에 속해 있을 때는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옳지 못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내 손으로 떨쳐버릴 용기가 필요했다. 돈을 벌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찾을 수 있을 거란 자신감이 필요했다. 그 모든 고생을 사서 할 각오가 되어 있어야만 내 뜻대로 삶을 움직일 수 있었다. 

    

나는 한 학기 동안 시간표에 맞춰 호텔 단기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벌었다. 하루를 투자해서 버는 5만 원 남짓한 돈이 참 작았지만 적어도 마음만은 편했던 기억이 난다. 매일 되물어야 했던 문제를 내 손으로 떠나보냈다는 사실이 내게 힘을 실어줬다. 그때 배웠다. 후회 없는 선택이란 내가 해온 고민을 마무리 짓는 일이란 걸.


스스로 반문하며 끊임없이 이어가는 고민이 있다면, 그 물음표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 시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내가 그에 대한 결론을 짓고 행동으로 옮겼다는 의미일 테니. 고민은 궁극적으로 해결되기 전까지는 나를 놓지 않았다. 같은 질문을 도돌이표로 반복하며 의미 없는 나날을 연장하는 것보다는 용기 있게 지금까지 해오지 못한 다른 고민을 시작하는 편이 더 나았다. 


어느 길이든 걱정과 불안은 자동으로 따라왔다. 그럼 결국 물어야 할 것은 하나였다. 내게 필요한 고민이 무엇인지. 분명 나는 정답을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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