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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원 Oct 20. 2023

내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을 줄 그 누가 알았을까

내가 그린 그림은 한정적이고 삶은 늘 그런 기대를 배반해왔다 

머릿속에 원대한 꿈을 한 번 그려보자. 감히 넘볼 수도 없으리라 생각했던 이상적인 미래, 마음 한 켠에 저마다 하나씩 품고 있었을 여유와 행복이 가득한 그림 같은 것들. 잠시 눈을 감고 그 방향에 도달하는 내 모습을 상상해보자.


과연 어떠한 풍경을 담고 있을까. 아마 어렸을 때라면 떠올리기 좀 더 쉬웠을 것이다. 어떤 세상으로 변화시키고 싶다, 혹은 어떤 직업을 통해 자아실현을 하겠다는 꿈을 꾼다. 노력해서 그것을 멋지게 성취해내고 결국엔 사랑하는 사람들과 행복한 미래를 누린다는 해피엔딩에 가까워진다. 


그러나 현실은 그렇게 단조롭지 않다. 그렇다는 것을 알아버린 나이다. 주위를 둘러봐도 어렸을 때 간직하던 목표를 그대로 이뤄내 만족하는 삶을 살고 있다는 이를 찾기는 쉽지 않다. 세상은 결코 내가 원하는 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었다. 그보다는 ‘내가 이렇게 살고 있을 줄 알았을까’하고 고백하는 사람들을 더 자주 만나게 된다. 


영화관 아르바이트를 하며 만났던 한 언니는 디자인 전공이었다. 그녀는 졸업 후 전공과 무관한 그곳에 지원해 지금까지 영화관 매니저로 일하고 있다. 화학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다 돌연 마케팅 회사에 취업한 친구도 있고, 공기업을 희망하다 그림에 빠져들어 그림 틱톡커로 돈을 벌고 있는 오빠도 있다. 방송국에서 예능PD로 일하고 있는 한 동생은 대학교 1학년 때 인연을 맺었던 교수님의 소개를 받아 업계 일을 시작했다. 그녀가 말했다. “나는 인생의 절반을 ‘어떻게 하면 PD가 될 수 있을까’하는 고민으로 보냈는데, 이렇게 길이 생길 줄은 몰랐지.”

 

이런 양상은 드라마 속 주인공도 비슷하다. 그들은 평소와 다름없는 하루를 보내다 우연히 인생을 바꿔줄 만한 사람을 만나거나, 예기치 못한 사건에 휘말린다. 점차 그 인연들이 엮여 사랑하고 배신을 당하고 좌절하고 성장한다. 마지막 회에 다다르면 늘 주인공은 첫 회에서는 차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모습으로 변해 있다.

     

설마 우리 삶이 드라마 주인공보다 예측 가능할까.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그림은 한정적이고 삶은 늘 그런 나의 기대를 배반해왔다. 나의 철 지난 계획보다는 문득 찾아온 생각, 누군가의 말 한마디, 뜻하지 않게 찾아온 기회 같은 것들이 인생의 중요한 갈래 길을 만들었다. 바라던 이상에 다다르기까지 내가 생각한 것 이상의 새로운 방법이 다가올 수 있다. 혹은 그 길을 걷다가 가고 싶은 방향 자체가 완전히 뒤바뀔지도 모를 일이다.


때문에 뚜렷하고 선명한 이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기보다 온몸에 있는 촉수를 가득히 열어둔 사람이고 싶다. 나의 앞길을 바꿔줄 바람이 언제, 어디서 흘러들어올지 결코 알 수 없다. 내 삶을 새롭게 채색해줄 변수에 그 누구보다 능동적이고 싶다. 생생한 감각들로 하여금 단 하나도 놓치지 않고 예민하게 채갈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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