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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의는 아니었어요

정이현 소설집 <상냥한 폭력의 시대>

by 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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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냥한 폭력의 시대.

이보다 더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를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이 있을까 싶다.

우리는 모두 상냥한 얼굴로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는 삶을 살고 있다. 이유는 간단하다.

내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그게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오히려 나를 희생하고 남을 위해 사는 것이 더 바보같이 느껴질 때도 있다.

이제 '착하다'는 것은 더 이상 그저 좋은 말로 쓰이지 않는다. '착하긴 하지만...'이 더 어울린다.


이 책에 등장하는 사람들은 모두 나쁜 사람들이 아니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그들을 나쁜 사람으로 만들거나

혹은 나쁜 사람들은 아닌 어떠한 사람들에 의해 피해를 입게 만든다.


그런 이야기들은 내 주변에서 일어나는 이야기이고,

나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이 책을 읽으면 아주 쓴 초콜릿을 먹은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달지 않지만 뱉을 수 없는 이야기들.


무서워진다.

나 역시 누군가의 상냥한 폭력에 울게 될까봐.

아니

나 역시 누군가에게 상냥한 폭력을 휘두르게 될까봐.


"고의는 아니었어요."


이런 말로 모든 것을 무마하는 사람이 될까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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