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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심고 Feb 25. 2018

봄은 아직 오지 않았다

영화 <눈길>

일제강점기, 가난한 소녀 '종분'과 부잣집 아가씨 '영애'는 같은 마을에 살지만 다른 모습의 삶을 살고 있다. 예쁜 옷에 학교를 다니는 영애가 마냥 부럽기만 하던 종분. 하지만 두 소녀는 위안부에 끌려가면서 똑같이 구렁텅이로 빠지고 만다. 위안부 생활을 하면서도 고고하게 자신을 굽히지 않으려는 영애는 계속 삶을 포기하려고 하지만 종분은 그런 영애와 함께 어떻게든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서로를 다독여봐도 두 소녀에게 겨울은 끝도 없이 계속된다.

처음에 영애는 부잣집 딸로 도도하고 종분을 무시하는 말을 서슴지 않고 내뱉지만 점점 그 따뜻한 마음이 차가워 보이는 겉모습 밖으로 새어 나온다. 종분을 위해 일본군에게 대신 맞는 것도 아무렇지 않아 하고, 자신의 상처를 감추고 오히려 종분을 다독인다.
종분은 순수한 마음으로 힘든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하고, 웃음을 잃지 않는다. 자신에게 쌀쌀맞게 구는 영애를 지켜주고 어떻게든 희망을 주기 위해 애쓴다.

두 소녀의 우정은 아름답지만 현실이 너무나 아름답지 못해서 마음이 아프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위안부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조금은 떨어져서 그린 것이었다. 두 소녀가 당시 아역 배우였으니 너무 자극적으로 극을 그리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위안부에 관한 책을 읽었을 때 글자로 읽는 것만으로도 너무나 끔찍했는데 영화로 그 모습을 봤다면 차마 보지 못했을 것 같다.

나이가 든 종분을 계속 따라다니는 영애의 환영보다 슬픈 것은 아직 진정한 봄이 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죽기 살기로 고향으로 돌아가 보니 고향에는 가족이 없었고, 돈이라도 받기 위해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영애의 이름으로 평생을 살아야 했다. 누가 어디 갔다 왔다고 물으면 간호복을 입은 사진을 내보이라며 죽어가면서도 영애가 종분에게 쥐여준 사진처럼 아무 잘못도 없으면서 누군가 위안소에 갔다 왔다는 걸 알까 봐 전전긍긍하며 살아야 했다.             

은수의 말처럼 나쁜 사람은 따로 있는데 죄인처럼 살아야 했던 위안부 피해자분들. 

아직도 봄이 오지 않았다. 아직도 그 눈길 위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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