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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an 22. 2022

이것은 시험이 아니니

2022.01.21

2011.04.11


올해도 동문회의 공지를 받고 학부에 지원한 한국의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온라인 면접을 보고 있다. 매번 간단한 인사를 나누고 면접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전에 하는 말이 있다.


“내가 그 자리에 있어본지는 시간이 지났지만, 얼마나 긴장이 될 수 있는지 모르지 않는다. 이것은 시험이 아니니 부담을 가지지 않으면 좋겠다. 이 대화의 목적은 서로에 대해서 알아가고, 학교에 대한 궁금중을 해소하는 것이니 편하게 이야기를 나눴으면 좋겠다.”


어느새 띠동갑이 되어버린 학생들에게 난생처음 보는 화면 속의 아저씨가 하는 말이 과연 얼마나 위로가 될지는 알 길이 없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조금이나마 낫겠다는 생각으로 매번 잊지 않고 이 말을 하려고 한다.


면접 후 입학 사무처에 제출하는 보고서에 각 학생에 대한 객관적인 상대 평가를 요청하는 부분이 있지만, 그것이 면접의 전부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고, 앞으로 펼치고 싶은 꿈들을 나누는 자리에 정답과 오답이 있을 수 있을까.


그 30분 남짓의 대화가 어쩌면 그 학생과의 처음이자 마지막인 만남이 될 수도 있으니 가능하면 안 좋은 추억을 남기지는 않기를 바라는 심정이다. 평상시에도 끝없는 긴장과 불안의 연속인 대학 입시 기간을 코로나라는 안갯속에서 헤쳐 나가는 학생들을 볼 때마다 어딘가 안쓰럽기도 하다.


이번 주의 마지막 면접을 앞두고 잠시 쉬던 중에 문득 그 한마디가 떠올랐다.


“이것은 시험이 아니니 부담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인생의 큰 분기점 앞에 서 있는 학생들 뿐만 아니라 사실 우리 모두에게 필요한 한마디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하루를 보내면서 수많은 크고 작은 선택의 기로 앞에 서게 된다. 그때마다 마주하게 되는 주관식 문제에 명확한 해답이 보이는 경우는 많지 않다. 출제자의 의도를 간파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일이다. 조금 더 지혜롭거나 바람직한 선택은 있겠지만, 그마저도 시간이 지난 후에야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완벽한 선택이 존재하는지도 알 수 없을뿐더러, 불완전한 인간에게 매번 완벽한 선택을 기대하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버거운 일이다.


맡겨진 일에 성실히 임하고, 허락된 인연들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것은 물론 중요하다. 그마저도 쉽지 않은 날들, 혹은 쉽지 않은 시기도 종종 찾아온다. 그래도 그 원칙들을 지키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면, 자신이 중요히 여기는 가치들을 붙들기 위해서 오늘도 고민을 했다면 스스로를 너무 가혹하게 대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이 모든 것은 시험이 아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자신도, 다른 누구도 섣불리 평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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