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침반 Jan 28. 2022

우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2022.01.27

베를린의 노이에 바헤 추모기념관에 전시된 케테 콜비츠의 '죽은 아들을 안은 어머니.' 그 앞에는 "전쟁과 압제의 희생자들에게"라고 적혀 있다. (2013.08.09)


태평양 전쟁을 집중 분석하는 <역전다방> 프로그램을 최근에 추천받고 나서 세계 2차 대전에 대한 영상과 책들을 틈틈이 찾아보고 있다. 미드웨이 해전부터 노르망디 상륙작전까지, 덩케르크 구출작전부터 벌지 전투까지 훑어보면서 처음으로 그 시기의 큰 그림이 희미하게 보이는 느낌이다.


그러던 중에 몇 달 전에 시작했지만 별로 읽지는 않았던 Philippe Sands의 "East West Street"를 다시 펼쳐봤다. 이 책은 국제법에서 “반인도범죄”의 개념을 정립한 법학자 허시 라우터파하트, “제노사이드”의 개념을 제시한 라파엘 렘킨, 그리고 저자의 외조부가 모두 비슷한 시기에 같은 도시에서 살았다는 발견으로부터 출발한다. 지금은 우크라이나 서부에 위치한 이 도시의 이름은 “리비우”다.


요즘 우크라이나에 대한 소식이 뉴스에서 많이 보여서일까. 냉전도, 2차 대전도 실은 그리 오래 전의 일이 아니라는 새삼스러운 사실이 새롭게 다가온다. (오늘은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가 소련군에 의해 해방된 지 77년이 되는 날이며, 국제 홀로코스트 희생자 추모의 날이다.)


책의 첫 부분에서 저자는 어머니를 통해서 전해받은 문서와 사진들을 조각조각 맞춰보며, 그리고 유럽 각지의 기록 보관소를 찾아다니며 외조부의 발자취를 추적한다. 1997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젊은 시절에 겪은 일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고 한다. 저자는 그 침묵의 이유를 뒤늦게 발견한다. 2차 대전이라는 참혹한 시기를 거치며 70여 명의 친척 중에 홀로 살아 나왔던 것이다.


불과 두 세대 전에 동유럽에서 일어난 일들에 대해서 읽으면서 그 무렵에 한반도에서 일어난 일들이 떠오른다.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의 무거운 침묵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Sands는 아래의 글을 인용하며 책을 시작한다.


우리를 떠나지 않는 것은 죽은 자들이 아니라, 타인의 비밀로 인해서 우리 속에 남겨진 공백들이다.

— Nicolas Abraham, “Notes on the Phantom” (1975)

매거진의 이전글 이것은 시험이 아니니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