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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Apr 25. 2022

벚꽃

2022.04.24


고마워요. 인연이 되면 또 볼 날이 있을거에요.


우연한 계기로 참여하게 된 활동을 통해서 뵙게 되었다. 자주 인사드리지는 못했지만, 늘 친절하게 배려해주시고 매사에 차분하고 성실하게 임하셨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늦은 시간에 활동을 마치고 굳이 먼 길을 돌아가면서 기차역까지 직접 데려다 주신 적도 있다.


어느 날 미국을 떠나 먼 곳으로 가게 되셨다는 소식을 접했다. 주기적으로 근무지를 바꾸셔야 하는 직업의 특성상 예상하지 못한 일은 아니었다. 그래도 아쉬운 마음에 문자로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그동안 신경 써주셔서 감사하다고, 덕분에 유익한 경험을 많이 할 수 있었다고. 새로운 곳에서도 가족 분들과 함께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라고.


경황이 없으신 와중에도 답장을 보내주셨다. 그 마지막 문장이 기억에 오래 남는다.


"인연이 되면 또 볼 날이 있을거에요."




나름 노력을 해도 상황 탓에 잘 이어지지 않는 인연이 있는가 하면, 예상치 못한 계기로 오랜만에 연락이 닿아서 반갑게 소식을 나누는 사이도 있다. 조금이라도 더 오래 알았고 공감대가 두터운 사람이 편하기 마련이지만,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는 새로운 인연을 마주치는 행운을 발견하기도 한다.


중간에 옮기지 않고 시작부터 끝까지 온전히 마친 첫 학교가 고등학교였다. 그래서인지 인연이 맺어지고, 이어지고, 끊기는 모든 과정에 대해서 조금은 더 예민했던 것 같다. 집을 떠나 미국에서 대학을 다니고, 졸업 후 2년간 워싱턴에서 일을 하다가 대학원을 시작하면서 미국 서부로 옮기게 되었다. 가족이랑 떨어져서 지낸 시간도 적지만은 않다. 친구들과 선후배들은 미국 곳곳에, 그리고 한국에 흩어져 있다.


그 덕분에 어디에 가든 반갑게 인사하며 밥을 같이 먹을 사람이 있다. 감사한 일이다. 하지만 자주 이동을 한만큼 이어지지 않은 인연이 많은 것도 사실이다.


가보지 않은 길이 더 아름답다고 했던가. 이제는 기억도 잘 나지 않을 정도로 흐릿해진 지나간 인연들이 문득 궁금해질 때가 있다. 다시 이어질 수 있을까.




오늘 낮에는 미사리 조정경기장 옆에 있는 왕벚꽃 길을 잠깐 구경하고 왔다. 이미 벚꽃은 다 지나간 줄 알았는데, 다행히 아직 그러지는 않은 모양이었다. 따스한 늦봄의 햇살 아래에서 벚꽃나무 옆에 돗자리를 깔고 삼삼오오 모여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모습을 바라보니 조르주 쇠라의 <그랑드 자트섬의 일요일 오후>가 문득 떠올랐다.


벚꽃이 더욱 아름답게 보이는 건, 해마다 잠시 피었다가 금세 사라지기 때문일 것이다. 지나간 인연을 되돌아보면서 생각해본다. 그중에는 생각지도 못하게 다시 이어지는 인연도 있겠지만, 다시는 이어지지 않을 인연이 보다 많을 것이다. 오래 머무는 것들은 그리 많지 않다. 지나가는 모든 것은 아쉬움을 남긴다. 그렇지만 지나가기에 그만큼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그리고 벚꽃이 지면 또 다른 꽃이 찾아온다. 꽃도 제철이 있다고 한다. 그러니 지나간 아쉬움에 너무 오래 머물지는 않았으면 한다. 시간이 흐르고 삶의 계절이 바뀌면 또 다른 인연들이 꽃을 피울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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