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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May 29. 2021

교정

2021.05.20

오랜 손님 다시 맞이할 준비 한창인 캠퍼스 (2021.05.07)


치아교정을 늦게 한 편이다.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40대, 50대가 되어서도 큰 부담 없이 할 수 있다고 하지만, 주위의 친구들은 거의 다 중학교, 고등학교 때 교정을 했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교정을 할 생각은 아니었다. 치열이 크게 어긋난 부분도 없었고, 치아 건강에 지장이 될만한 문제도 없어 보였다. 그래도 대학원에 입학하기 전인 2016년 여름, 한 번 상담이라도 받아봐야 후회가 없지 않겠냐며 치과를 찾아갔다.


나태주 시인은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라고 말한다. 교정 전의 치아는 그렇지 않았다. 볼살을 민망할 정도로 거세게 잡아당기고 카메라를 들이밀며 속속들이 촬영한 사진과 엑스레이에 드러난 치아의 모습은 처참했다. 특히 두 앞니가 누운 각도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인체의 신비란 이런 것인가.)


출국을 2개월 남짓 앞두고 있던 상황이라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았다. 교정을 하는 과정이 복잡하거나 어려운 경우는 아니라 미국에 있는 동안에는 학교 인근의 치과를 찾아가도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루라도 빨리 시작해야 교정 장치에 적응을 충분히 하고 학교에 갈 수 있다, 는 점도 강조하셨다.


간단하게 상담만 받을 생각으로 찾아왔지만, 치과 문을 나설 때는 치아 2개가 이미 사라진 후였다. 큰 결정에는 늘 오래 고민하는 성격이라 부모님이 적잖이 놀라셨던 기억이 난다.




학과 홈페이지에 올라온 프로필 사진을 보면 입을 꾹 다물고 있다.


어릴 때부터 사진을 찍을 때면 자연스럽게 웃지 못해서 형이나 엄마가 아빠가 늘 “하나, 둘, 셋”과 함께 옆구리를 격렬하게 간지럽히곤 했다. 대학교를 가면서부터 조금은 더 편하게 웃으며 사진을 찍었던 것 같다.


대학원 프로필 사진도 기왕이면 활짝 웃는 표정으로 찍고 싶었지만, 적어도 5년 동안 보일 사진을 찍으면서 입 안에 묵직하게 자리 잡은 교정 장치와 반짝이는 철사를 굳이 만천하에 드러내고 싶지는 않았다.


미국에서, 한국에서 치과를 오가면서 더 어릴 때 교정을 하지 않은 것이 천만다행이라는 생각을 자주 했다. 음식을 맘대로 먹지 못하고, 치실을 매번 꼼꼼하게 써야 하고, 치아가 철사의 모양을 따라서 천천히 이동하는 그 불편한 과정을 견뎌내는 것은 만 스물넷, 다섯이 되어서도 쉽지 않았다. (스트레스와 커피 중독 탓에 교정을 하면서 간단한 잇몸치료를 받아야 했던 것은 피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이윽고 2년의 시간이 흘렀다. 장치를 떼어내고 그 감격스러운 매끈함을 만끽하는 순간도 잠시, 유지장치를 만들기 위해서 본을 뜨고 윗니와 아랫니 안쪽에 반영구적으로 철사를 붙이는 작업이 즉시 진행되었다.


치아는 원래 평생 끊임없이 움직이기 때문에 이러한 노력들을 하지 않으면 결국 제자리로 돌아오려고 하는 속성이 있다고 한다. 교정의 많은 과정들을 거스르고 예전의 가지런하지 못했던 모습들을 되찾으려고 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식사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유지장치를 항상 착용하고 있었다. 치아가 조금씩 안정적인 위치를 찾아가면서 밤에 자는 동안에만 착용해도 되는 단계에 들어섰고, 나중에는 이마저도 이틀마다 한 번씩 장치를 끼고 자도 된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마지막으로 치과를 들렸을 때, 이제는 일주일에 한 번만 껴도 된다고 말씀하셨다. 치아가 이전의 위치로 쉽게 돌아가지 않을 정도로 자리를 잡았기 때문일 것이다.


요즘도 정신없이 지내다 보면 피곤한 탓에 장치를 깜빡하고 잠들 때가 많다. 그러다가 열흘이나 보름 만에 유지장치를 끼면 매번 놀란다. 분명히 유지장치의 모습은 변하지 않았는데, 강하게 조여 오는 그 느낌은 도저히 적응이 되지가 않는다.


중간에 빼먹은 시간이 하루라도 길어지면 그 뻐근함은 배가 되는 것만 같다. 교정을 시작한 지 5년이 되어가는 지금, 이는 여전히 예전의 위치로 돌아가려고 하고 있는 것이다.




구부러진 것을 펴고, 흐트러진 것을 바로잡고, 무너진 것을 다시 쌓아 올리고, 빗나간 초점을 다시 영점 조정하는 과정은 늘 힘겹다.


이제는 익숙하다고, 이제 다시는 길을 잃지 않고 실족하지 않겠다는 자신감으로 걸어가다가도 넘어지는 스스로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고,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으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고 한다.


그래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어떤 꿈을 가득 품고 있기에 우리는 다시금 마음을 추스르고 일어설 수 있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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