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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Nov 01. 2022

이태원

2022.10.31

뉴욕 맨해튼의 야경 (2022.10.28)


조금만 더 어렸으면 나도 아마 오늘 저기 있었을 거야. 아니, 예전에는 실제로 가기도 했었고.


미국 시간으로 29일 저녁, 전화로 이야기를 나누던 한 선배가 한 말이다. 주위의 적지 않은 사람이 같은 생각을 했으리라. 이태원을 들린 적이 있다면 "해밀턴 호텔 옆 골목"이 어디인지 모를 수 없다.


2박 3일의 뉴욕 출장 일정을 마무리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속보를 처음 들었다. 이른 저녁, 집 근처의 지하철 역 출구로 나오니 다양한 분장을 하고 들뜬 발걸음으로 친구들과 함께 할로윈 파티로 향하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다. 불과 13시간 전의 이태원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지금, 직접 알지는 못하지만 그리 멀지도 않은 이웃 중에 두 명이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을 건너서 전해 들었다. 복잡하게 얽혀 있던 다양한 인연들이 한순간에 사라지면서 생긴 상실의 파도가 얼마나 넓고 깊게 퍼지고 있을지 가늠하기 어렵다.


그 현장의 사진과 동영상을 보고 싶지 않았지만, 주말 내내 트위터를 확인하고 기사를 찾다 보니 피할 수는 없었다. 총리가 직접 "사상자들에 대한 혐오발언이나 자극적인 사고 장면 공유를 자제해달라"라고 촉구해야 할 정도로 사회 곳곳에 어두운 이야기와 정보들이 퍼지고 있는 상황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그런 끔찍한 장면들에, 그런 암울한 상황들에 마음을 두고 싶지 않다.


현장에 출동한 응급대원의 헌신과 밤새 분주하게 움직였을 수도권 각지의 의사들,

참혹한 광경을 목격했지만 주저하지 않고 달려 나가 땀을 흘리며 심폐소생술을 실시한 시민들,

상황을 파악하고 정확한 소식을 알리기 위해 무거운 마음을 이끌고 동분서주하는 국내/외신 기자들,

사태를 수습하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많은 수고를 감당하고 있을 공무원들,

소식을 접하고 늦은 밤에도 서로의 안부를 물은 가족과 친구와 동료들,

그리고 아픔을 조금이라도 나누기 위해 이태원과 분향소와 장례식장을 향한 모든 발걸음들.


이 모든 장면과 이제는 함께 하지 못하는 모든 이들의 밝게 빛났을 모습만 기억에 남기려고 한다.


그 속에서 한 줌의 희망이라도 찾고 싶다.


이미 너무 늦었지만, 29일 밤에 이태원을 찾았던 모든 사람이 마땅히 누렸어야 했던 행복하고 평온하고 지극히 평범한 일상을 이제라도 지켜 나가기 위한 모든 노력과 고민이 끊이지 않길 바랄 뿐이다.


유가족에게는 위로의 손길이 닿기를,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은 이들은 속히 회복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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