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침반 Feb 19. 2023

박수

2011.12.16

학부 1학년 2학기, 기말고사 기간 (2011.05.14)


모든 일은 평범한 순간에 일어난다. 오늘 아침에 강의실로 걸어가면서 "아, 이번이 정말로 마지막 수업이구나"라는 사실이 뒤늦게 와닿은 순간, 그 순간처럼. 가는 길에 있는 공공정책대학원 건물 앞 분수대를 지나면서 왼발이 땅에 닿기 조금 전, 그 순간처럼.


수업이 끝나가며 기말고사 전에 리뷰 세션이 있을 거라고 교수님이 말씀하셨다. 그리고서는 담담하게 고백하셨다. 내가 이 수업을 13년 동안 가르쳤는데 사실 이번이 마지막이라고. 마지막으로 가르치는데 너네 덕분에 이번 학기가 좋았다고.

"우리가 마지막이었구나."

학생들은 이 교수에게 이 수업을 들을 수 있었음에 감사하고, 다른 학생이 이와 같은 경험을 하지 못할 거란 아쉬움에 박수를 쳤다. 그리고 '손뼉 칠 때 떠나라'라는 말처럼 멋지게 무대에서 퇴장하려다가 멋쩍은 웃음을 지으시며 발걸음을 멈추셨다.

"맞다, 너네 마지막 숙제는 걷어가야지"라고 혼잣말처럼 말하시며.

다른 수업도 비슷했다. 정치학 수업의 마지막 강의는 아마도 학기 중 배운 내용보다도 오래 기억할 것이며 (기말고사는 어쩌죠?), 아마 나만 그렇게 느낀 게 아니기에 우레와 같은 박수소리가 터져 나온 게 아닐까. 경제학 수업도 비록 내용을 모두 마무리 짓지는 못했지만 박수를 친 건 마찬가지였다.

마지막은 항상 아쉬워서일까. 이번 학기를 되돌아보면 즐겁고, 재미있고, 의미 있는 순간도 많았지만, 그렇지 않았던 순간들도 있었다. 좋지만도 나쁘지만도 않았다. 누구나 그러지 않을까. 그래도 마지막에는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박수를 쳤다. 아쉬움이 남기에. 저 교실에 저 자리에 앉아서 저 교수에게 강의를 듣는 나 자신을 다시는 볼 수 없기에.

항상 행복한 게 아니라도, 모든 경험에서 무언가를 바로 얻는 게 아니라도, 원하는 대로 혹은 예상하던 대로 되지 않더라도, 마지막에는 이 모든 것을 준 세상에게, 이 모든 것을 준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에 박수를 친다.

학기가 끝나가고 한 해가 저물어가는 지금, 미래를 향해 발걸음을 내딛으며 희망을 가져본다. 마지막에는 세상을 향해, 소중한 사람들을 향해 박수를 칠 거라고. 그래도 시간이 지나면 이 아쉬움이 조금은 옅어질 거라는 희망을 가지고 내년을 내다본다.

매거진의 이전글 멘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