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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Mar 31. 2023

구심점

2023.03.30

퇴근길 풍경 (2023.03.29)


어제저녁, 7시 반이 조금 넘어서 컴퓨터를 닫았다.


아침 8시부터 거의 12시간을 사무실에 있다가 불을 끄고 나오던 중에 10년을 넘게 알고 지낸 선배한테서 전화가 왔다.


혹시 오늘 출근했냐고, 곧 퇴근할 건데 아직 안 들어갔으면 저녁 같이 먹지 않겠냐고.


10분만 일찍 자리에서 일어났어도 이미 지하철에 타고 있었을 것이다. 집에 먹을 게 없는 건 아니었지만, 유난히 길었던 하루를 혼자서 마무리하고 싶지 않은 건 누구라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이내 식당으로 걸어갔고, 자리에 앉아서 음식을 기다리던 중에 본심이 튀어나오고 말았다. “형 가고 나면 여기에 이렇게 번개로 저녁 편하게 먹으면서 아무런 얘기나 할 수 있는 사람 거의 없어요.”


머지않아 다른 도시로 옮길 준비를 하고 계신 중이다. "그럼 네가 오면 되잖아"라고 멋쩍게 웃으시며 답을 했지만, 그게 말처럼 쉬울 리가 없다.


물론 가까운 인연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무리 스쳐 지나가는 인연이라도 그 순간 동안 진심으로 대할 수 있다. 우리는 삶의 여러 자리에서 다양한 형태의 인연을 맺고 살아가고, 그 다채로움은 삶을 풍성하게 한다.


때로는 그리 가깝지 않은 누군가에게서도 큰 위로를 받는다. 그리고 감정의 결도, 성장 배경도, 생각하는 방식도 다른 인연들을 만나며 사람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히기도 한다. (“세상에 나 같은 사람만 있었으면 나도 그 세상에 살고 싶진 않을 것”이라고 자주 생각한다.)


그럼에도 누구나 구심점이 필요하다. 자신을 지탱하고 중심을 잡아주는 가장 중요하고 소중한 관계들이 있을 것이다. 그 구심점이 생각보다 좁다는 사실이 갈수록 크게 다가온다.


그런 관계를 새로 맺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해가 지날수록 삶의 관성이 더욱 굳어서 그런 걸까. 처음 만나는 누군가와 비교적 피상적인 접점 몇 가지 이상의 무언가를 찾는 것은 간단치 않다.


그리고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히기 마련이니, 새로운 인연에 대한 과도한 기대는 하지 않는 것이 현명할 것이라는 충고도 누누이 들었다. 자신을 섣불리 드러내지 않는 것이 지혜로운 상황도 있을 것이다. 말은 빨리 퍼지고 세상은 생각보다 좁다.


진심의 무게나 서로에 대한 기대치가 엇갈리는 관계도 종종 겪기 마련이고, 오래 머무는 인연은 드물다는 사실도 받아들이게 된다.


가족을 제외하면 그 구심점을 이루는 모두가 한때는 낯선 사람이었다는 것이 잘 믿기지 않는다.


일상 속에서 우리를 떠받치는 것은 그리 많지 않다. 곁을 묵묵히 지켜주는 그 인연들에 감사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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