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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3. 2021

백신, 오만과 편견

2021.05.15

인근 마트 겸 약국 앞에 걸린 광고. 순간 아보카도로 만든 백신이 새로 나온 줄 착각했다. (2021.06.02)


한국, 미국 모두 백신 접종을 주저하는 사람들이 왜 생각보다 많은지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다가 한국은 사람들이 인터넷 덕분에 너무 많은 것을 알고 평균 교육 수준이 비교적 높아서, 어쩌면 미국은 정반대의 이유로 그런 것 같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물론 편협한 분석이지만, 전혀 일리가 없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현실은 늘 우리의 편견보다 훨씬 복잡하다.




지난 월요일, 뉴욕 타임스의 일일 시사 팟캐스트에 테네시 주의 작은 마을에서 코로나 19를 몸소 겪은 의사인 대니얼 루이스 씨가 주민들에게 백신 접종을 설득하는 이야기가 실렸다. 마을 주민들에게 무한한 신뢰와 사랑을 받는 의사라고 한다.


팟캐스트 중에는 코로나 19 백신에 대한 의심이 가득한 한 70대 노부부가 루이스 씨를 찾아와서 나눈 대화가 담겼다. 남편은 통신 장비 기술자로 일하다가 은퇴했고, 부인은 회계/비서 업무를 하다가 은퇴했다고 한다. 그들은 코로나 19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으며, 지인 중에 코로나 19로 세상을 떠난 사람만 무려 11명이라고 한다. 자녀들도 자라면서 모든 백신 접종을 충실히 마쳤다고 말했다.


루이스 씨는 아주 차분하고 성실하게 부부의 모든 질문에 답한다. 백신이 실은 1년 만에 개발이 된 것이 아니라, mRNA를 활용한 기술은 이미 최소 15-20년 동안 연구가 진행된 기술이라는 점도 설명해준다.


옆에서 대화를 전부 들었던 기자의 한마디가 인상적이다.


아마 가장 중요했던 건 그분들을 무시하지 않고,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줬다는 것입니다. 존중받았다는 느낌이 들었을 것 같아요.




소위 “가방끈이 길다”라고 해서 모든 주제에 대해서 타인보다 더 깊은 식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전혀 아니다. 오히려 “너무 과중한 교육을 받아서 그 무게에 짓눌린 탓에 비판적 사고 능력을 철저히 상실했다”는 어떤 평론가의 지적을 떠올릴 때마다 반성하게 된다.


나이가 조금 더 많다고 항상 인생에 대한 지혜가 더욱 풍부한 것도 아니며, 더 넓은 세상을 직접 보았다고 반드시 시야가 더 넓다고 할 수도 없다. “불출호 지천하”(不出戶 知天下)라는 표현도 있지 않나. 성급한 일반화는 편리하지만 늘 부정확하다.




물론 사실과 음모론 사이의 마지노선은 철저히 사수해야 할 것이다. “탈진실”만큼 섬뜩한 표현은 많지 않다는 생각이다. 그리고 누구에게나 타협할 수 없는 근본적인 가치들이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교만의 늪에 빠지는 건 한순간이기에, 조금은 더 의식적으로 기억할 수 있기를 원한다.


진실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다. 통찰과 지혜는 학력에도, 경험의 폭에도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는다. 내가 볼 수 있는 부분보다 보지 못하는 부분이 훨씬 많다. 그리고 모르는 것은 죄가 아니다. 배우려고 하지 않으면서 아는 척을 하는 것이 가장 위험하다. 타인이 자신의 경험과 시각을 진솔하게 나눠주는 것은 늘 감사한 일이다.


서로를 존중할 수 있다면, 각자의 차이를 있는 그대로 인정할 수 있다면, 그리고 그 과정에서 자신을, 또 서로를 더 깊이 알아가면서 세상을 조금이나마 더 넓게 바라볼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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