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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3. 2021

수영

2021.05.01

정동진 바다부채길 (2019.03.17)


국제학교를 다니면서 9학년, 10학년 때 학교 수영팀에 참여했었다. 눈을 아무리 씻고 봐도 운동신경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지만, 어릴 때부터 그나마 꾸준히 했던 운동이어서 턱걸이로 팀에 겨우 선발되었던 것 같다.


무엇이든지 지나치게 예민하게 받아들이고 삐딱하게 바라보던 사춘기여서 그랬던 걸까. 수영이 유독 외로운 운동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었다.


친구들의 열띤 응원과 환호성을 들으며 경기를 치르던 테니스, 배구, 농구, 축구팀 친구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훈련을 하면서도 중간중간에 서로 수다를 떨 수 있어서 너무 좋겠다, 는 생각도 들었다.


크로스컨트리 달리기 팀에서 활동하는 친구들에게 그나마 동지의식을 느꼈다. 하지만 그 친구들도 이어폰을 끼고 음악을 들으면서 훈련을 할 수 있지 않던가. 모두가 즐겁게 운동을 하고 있을 때 우리는 그저 숨을 헐떡이면서 물이 철퍽거리는 소리만을 듣고 소독제 냄새를 흡입하며 끝없이 돌아가는 거대한 빨간 초침과의 고독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는 망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부끄러운 고백이지만, 그때는 학교에 수영팀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엄청난 특권이라는 것도 전혀 인지하지 못했다. "내가 제일 괴롭고 힘들다"는 철없는 자기 연민에 깊이 빠져서 허우적대던 것이 아닐까.




그래도 수영이 외로운 운동이라는 생각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시작을 알리는 전자음이 울리면서 물에 뛰어드는 순간부터는 모든 감각이 극도로 집중된다. 오직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숨이랑 필사적으로 휘젓는 팔과 다리에 묵직하게 밀려오는 물의 저항만 느껴진다.


주로 자유형 200미터 개인 종목과 자유형 50미터 계주 종목에 출전했지만, 그나마 고개를 밖으로 내놓고 하는 배영으로 한두 번 출전했을 때의 기억도 크게 다르지 않다.


사실 물에 자발적으로 뛰어드는 것은 무모한 행위다. 물에 빠졌으니 한 번이라도 더 숨을 쉬고 어서 육지로 빨리 나오라고 몸이 원초적인 비명을 지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도 숨을 한번 더 쉬면 물의 저항을 더 받게 되어서 시간이 늦춰지니 "살려주세요"라는 내면의 외침을 조금은 더 오래 억누르는 것이 훈련의 가장 근본적인 목적이다.


물론 몸이 시위를 할 때도 있다. 근육에 쥐가 난다는 말이 무엇인지 수영팀 훈련을 하면서 처음 알게 되었다. (발바닥에 쥐가 나는 경험을 다시는 하고 싶지 않다.)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서 적잖이 당황했다. 하지만 워낙 자주 겪다 보니 그 갑작스러운 고통을 참으며 레인을 잡고 수영장 바닥으로 엉금엉금 기어 올라와서 애써 다리를 뻗으며 종아리 근육을 푸는 것도 차차 익숙해졌다.


대학 입시 준비로 가장 정신이 없던 11, 12학년을 견딜 수 있었던 체력과 정신력의 적지 않은 부분이 수영팀 훈련을 거치면서 형성되었다. 대학교를 다니면서도, 그 이후에도 어떤 한계에 부딪히는 순간마다 경기의 마지막 5미터를 남기고 악을 쓰면서 터질듯한 숨을 참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자기 절제력이 좋은 편은 아니지만, 적게나마 있는 부분도 수영팀에 합류할 기회가 주어진 덕분이라는 생각이다.




일단 물에 뛰어들면 본인의 숨소리 외에는 다른 소리가 잘 들리지 않는다. 그러나 바깥의 소리가 아주 뚜렷하게 들리는 짧은 순간이 있다. 바로 레인의 끝에서 턴을 하는 순간이다. 경기를 할 때면 친구와 선배들이 레인의 끝에 와서 목이 터져라 응원을 해주던 기억이 생생하다.


비록 귀가 수면 위로 올라오는 찰나의 순간 동안만 들렸지만, 그 소리를 듣고 다시 돌아갈 힘을 얻었다. 졸업한 지 10년이 지난 지금, 가장 친하게 지내는 고등학교 친구들과 선배들 중에 수영팀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여럿 있는 것은 절대로 우연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다른 누군가가 뛰어들 수 없는 자신만의 싸움이 있다. 그럴 때마다 기억할 수 있으면 좋겠다.


숨이 차서 힘에 부친다면, 숨을 한 번 더 쉬어가면서 늦게 들어와도 괜찮다고. 만에 하나 종아리에 쥐가 나서 더 이상 앞으로 갈 수 없을 때, 밖으로 잠시 나와서 잔뜩 긴장한 마음을 풀어주는 시간을 가져도 괜찮다고. 일상의 거친 파도 속에서 응원의 소리가 잘 들리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열렬히 응원을 하고 있다고.


조금만 버텨서 끝까지 와주면, 누군가가 손을 뻗어서 밖으로 끄집어내 줄 수 있다고. 나는 이제 여기서 홀로 속절없이 빠져 죽겠구나, 이제는 끝이구나라는 체념은 절대로 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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