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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침반 Jun 03. 2021

힘 빼기

2019.12.07 / 2021.04.06

2019.02.16


치아 교정을 하던 때의 일이다. 희한하게 구부러진 철사를 풀고, 빼고, 또다시 새로운 철사를 끼워 넣어서 약간은 너무 세게 조이는 그 과정을 다시 반복하기 위해 진료실 의자에 앉아서 눈을 감고 입을 멍하니 벌리고 있었다.


뭔가 석연치 않은 분위기가 느껴졌다. 그동안 불편한 것은 없었나요, 를 물어보고 오늘은 어떤 철사를 써서 이를 어떻게 움직일 거예요, 라는 말이 끝난 후에 바로 철사를 빼고 바꾸는 것이 보통인데.


뜻밖의 말이 들려왔다.


"평상시에 이를 꽉 물고 계신 것 같아요. 이가 예상했던 것만큼 움직이지를 않아서요. 잘 때는 몰라도 되도록 입에 힘을 빼고 계시면 좋을 것 같아요."


의사가 이 말을 괜히 하지는 않았을 터. 앞으로의 치료에 지장을 줄 수 있을 만큼 문제가 되었던 것이다. 그래서 예정보다 몇 개월이 더 걸릴 것 같네요, 라는 말은 다행히도 없었다.


이내 다른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그 정도로 평상시에도 이를 악물고 있었다는 사실을 전혀 의식하지 못했던 것이다. 그런 긴장 상태가 마치 숨을 쉬듯 자연스러워져 있었던 것이다. 힘을 주는 것이 아니라 힘을 빼는 것을 일부러 의식해서 해야 할 만큼.


아예 어릴  교정을 했더라면 이런 문제가 없었을까. 가본 적도 없는 심리 삼당사의 소파가 아닌 치과 진료 의자에서 심리 상태가 들킬 줄이야.  순간을 떠올리면 지금도 약간은 민망하다. “ 라는 말을 피아노 연습실이 아닌 치과에서 들을 상상하지 못했다.




힘을 빼면 수월해지는 것이 치아교정이나 악기 연주뿐은 아닐 것이다.


지금 곁에 있는 모든 것에 있는 그대로 감사하지 못하고 그중 무언가를 잃지 않을까, 혹은 앞으로 바라는 일들이 뜻대로 안 되지는 않을까 긴장하며 걱정하는 어리석음을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한지도 모른다.


주어진 기회를 낭비해서는 안 된다는 강박에, 상황을 최대한 통제하고 싶은 불안함에 경직되기 마련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지금까지 했던 그대로 편안하게 하라는 고마운 격려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은 언제나 어렵다.


그리고 저 깊은 곳으로 떨어지는 것이 두려워서 눈을 질끈 감고 온 힘을 다해 밧줄을 붙잡고 있다가, 막상 눈을 떠보니 발을 뻗으면 바로 밑에 땅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고 미련하게 마음을 졸였던 자신이 민망해지면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던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예전에 김국진이 <남자의 자격>에서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면서 청년들에게 "여러분에게는 모두 알게 모르게 안전바가 고정되어 있습니다. 너무 두려워하지 말고 롤러코스터를 즐기세요"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힘 내"라는 응원이 아닌 "힘 빼도 괜찮아"라는 위로가 필요한 순간들이 있다. 이미 겁에 질려 잔뜩 긴장해 있는 누군가에게 더 힘을 주라고 하는 실수를 하지는 않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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