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을 말하기에 앞서
절망을 집어 든다.
노력이 어떤 변화도 가져오지 않을 거란 단정에 길들여지고
강자와 약자의 틀에 갇혀 사는 사람들.
희망의 반증이 노력이 아닌, 절망이 돼버린 세상에서
우린 밥을 먹고 일을 하고 사랑을 나누며
불안을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맨다.
앞서 걸어가고 있는
어른들을 아무리 들여다봐도
굽은 등만 보일 뿐
답은 나오지 않는다.
벽 같은 등에서 찾을 수 있는 건
삶이 남긴 질곡, 하소연, 사투
그리고
인생이 뭔지도 모른 채 열심히만 걸어온 시간뿐,
난세의 이정표는 없다.
열심히 사는 게
오늘 하루를 보증하는 수표가 되지 못하는 불안한 현실,
안정적인 직장을 잡아야 한다고 하는 조언은
당장 내일 일도 장담할 수 없게 된 시대의 나침반이 될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 참담한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걸 전제로 맞는
활기차지도, 성스럽지도 않은 아침.
정해진 시간에 맞춰 출근을 하고 학교에 가고 일을 하고
약동하지 않는 가슴으로 숨을 쉬며
시간을 채우는 도구가 되어 낯선 곳을 지키는 사람들.
희망의 반증이라는 절망을 끌어안고
그 속으로 침잠하게 일상이 돼버린 날들 속에서
뭘 꿈꿀 수 있을까.
자괴감을 부여잡고
눈이 너덜 해지도록 울어도
갑갑한 가슴을 내려놓지 못하는
막막한 청춘의 독백.
이 험한 시대에 감히 꿈을 입에 올려도 되는 걸까.
하고 싶은 일을 가슴에 품어도 되는 걸까.
앞날을 기대해도 되는 걸까.
듣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세상의 답은
오늘도 젊은 가슴을 매질하며
눈물을 불러낸다.
살아온 날만큼 많이 들었던,
어차피 안 될 거라는 말
강자독식의 이 구조는 결코 바뀌지 않을 거라는 말.
시작도 않아 누군가를 기죽게 하고 주눅 들게 했던 그 말에
수긍해가고 있던 나를 본다.
너무 초라하고 볼품없는 내가
형언할 수 없이 부끄러워진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 고개를 끄덕이는 건
절망에 동조하는 것이다.
세상이 뒷걸음질치고 있다는 출처모를 말의
노예를 자청하는 것이다.
다들 이토록 열심히 사는데
진정 이곳에 희망은 없는 걸까?
이 시대에 정의는 없는 걸까?
그럴 리 없다.
희망이 살아있음의 반증이 되게
무너지고 깨지고 농락당하더라도
가슴 벅차게 살아봐야지.
바꿔갈 수 있을 여지가 아직은 있다고
고집부려봐야지.
헛된 희망이라 할지라도
내가 할 수 있는
구슬프고도 아린 최선을
다해봐야지.
이 글을 읽어 주는,
나와 닿아있는,
이들의 울림이 모여
살아볼 만한 세상을 만들 날을
꿈꿔봐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