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질

by Lunar G

왜 이 스위스 화가에게 매료되었는지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일본 어딘가에서 ‘목수’쯤으로 해석될 수 있는 제목의 <Die Wahrheit>를 처음으로 접한 이후 이 작가의 작품을 습관적으로 하나둘 찾아보게 되었다. 세련되거나 유려하지는 않지만 호들러(Ferdinand Hodler)의 작품에는 관객의 발을 멎게 하는, 거부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뭉크, 실레, 벡신스키 같이 상을 뒤틀 줄 아는 화가들을 선호하는 취향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채워지지도 비워지지도 않은 것 같은 그의 붓질 때문이었을까. 그도 아니면 호들러의 그림 속 동세에서 배어나는 한에 근접한 어떤 감정 때문이었을까. 작품마다 각주를 달아보고 싶을 만큼 호들러는 내겐 매력적인 화가였다.

The Woodcutter_F Hodler_1910.jpg The Woodcutter_F Hodler_1910

처음으로 호들러를 대면하게 해 준 작품 <Die Wahrheit>를 모니터 화면에 띄워두고 있다. 한창 미술에 빠져있었을 때 이 작품을 만났다. 전시회만 갔다 하면 손끝이 간질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게 다달이 통장 잔고를 긁어 전시회에 다녀오는 것을 낙으로 질기디 질긴 시간을 견디던 시절이었다. 행복한 고문에 잠겨 지내던 그때, 운명처럼 호들러가 나타났다. 이후 관음증 환자처럼 한 점씩 호들러 작품을 들여다보며 그의 이야기를 읽어나갔다.

노란색이라고 모두 한색일 수는 없다. 작가는 그 자신의 삶을 색에 녹여 형체를 만들고 세상을 구현해낸다. 그러니까 고흐의 노란색은 고갱의 노란색과 같을 수 없고 세잔의 붉은색은 마티스의 그것과 다르고 마그리트의 푸른색은 달리의 푸름과 차이가 있다. 호들러에게서 에곤 실레와 프리다 칼로를 본다. 물론 호들러는 호들러로 존재하고 실레는 실레로, 칼로는 칼로로서 그 고유의 존재가치를 지난다. <Die Wahrheit>를 앞에 두고 있는데 왜 이 두 화가가 지나가는지 곰곰 따져보니 에곤 쉴레의 윤곽과 색감, 칼로의 투박하고 거침이 호들러에게 닿아있다.

정규 교육과정이 아닌 다른 경로로 그림을 배운 사람들의 그림에서는 고유성이 두드러진다. 정규교육과 그 외 교육으로 나누는 이분법에 동의하는 바는 아니지만, 호들러 작품에서 받은 감화를 글로 녹여내 보기 위해 불가피 이러한 구분을 빌려와 이야기해 보면 더 직관적으로 붓을 드는 작가들이 후자가 아닐까 한다. 그들은 감정을 여과하거나 구도를 완벽한 구성을 위해 치밀하게 구도를 계산하거나 의도를 넣기보다는 몸이 뱉어내는 그림을 그린다. 말로도 글로도 음악으로도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엇을 시간과 더불어 캔버스에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이다. 호들러의 그림에서 어린 시절에 관광객들의 그림을 그려주는 화가에게서 그림을 배우고 깨쳐온 시간을 본다. 자득 혹은 체득이라 할 수 있는 호들러의 그 무엇이 내 발을 붙들어 세운 것은 아니었을까.


일본에서의 그날, <Die Wahrheit>가 내게 남긴 감정은 구도, 색감, 재료, 동세, 시선, 원근과 같은 그림 분석에 필요한 도구에 선회해 있었다. 작가는 그림을 그리고 관객은 그림을 찾아 나서고 그림은 있는 그대로 말을 걸어온다. 작품은 작가가 자신을 투영해낸 만큼의 깊이로 관객에게 가 닿는 법. 개별적 깊이로 울림을 남기되 그것을 관통하는 흐름을 지니게 할 것. 이것이 한 공간에 있는 화가와 관객과 미술관과 그림에 주어진 과업이다.


소매를 걷어 올리고 근육질 팔로 도끼를 치켜들고 있는 남자와 껍질이 벗겨진 나무와 살짝 들려있는 다리와 벽에 가린 하늘과 눈 내린 땅. 호들러는 이 그림을 통해 말하고 있다. 내 삶이 이러했다고. 나는 온 힘을 다해 나무를 내려치는 마음으로 매 순간을 살아왔노라고. 그래서일까. <Die Wahrheit>를 보고 있자면 군더더기 생각이 사라졌다. 일상에 소진된 나를 일으켜 세우게 되고 타협하고자 하는 마음을 다잡게 되었다.


바벨의 탑 같은 높은 어딘가에서 바닥을 내려다보는 것이 아니라
땅에 발을 딛고 규칙적으로 도끼를 내려찍는 것, 그게 곧 삶이 아닐까 하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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