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쑤다

by Lunar G

예순 넘은 노모가 죽을 쑨다. 태어난 지 몇 해 되지 않은 손자를 먹이려고. 불린 쌀과 다진 당근, 잘게 썬 소고기와 자잘해진 표고버섯, 아기가 좋아하는 초록색 브로콜리가 형체를 알 수 없이 섞여 든다. 씻고 불리고 다지고 끓이고. 두드러지지도, 누군가 알아주지도 않는 일을 할미는 예순이 넘어까지 이어가고 있다. 그게 어미의 어미로서 짊어져야 할 짐이라며.

냄비 바닥에 닿는 주걱 소리가 쌔근거리는 숨소리에 겹쳐진다. 자장자장 우리 아가, 잘도 잔다, 우리 아가. 할미는 불을 지키고 서서 습관처럼 자장가를 흥얼거린다. 그 노래가 퍼렇게 멍든 팔의 통증을 잠재울 수 있기라도 한 듯, 작은 생명의 불안을 걷어낼 수 있기라도 한 듯. 할머니는 평온한 시간의 문지기가 되어 서서 죽을 쑤고 섰다.

물이 줄고 쌀이 불고 채소가 색을 더하고. 손질한 재료들이 하나둘 부피를 늘려간다. 할미도 긴장을 덜어낸다. 건강하게 자라 다오. 주걱질 한 번에 소망 하나가 더해진다. 무탈하게 커다오. 주걱이 솥을 휘이 젓는다. 구김살 없이 성장해다오. 보글보글 끓던 죽에서 숨구멍 같은 물방울이 부풀어 오른다. 센 불에서 시작된 불이 중 불을 거쳐 약 불에 멈췄다. 곤히 자던 아기가 느닷없이 울어댄다. 놀란 노모가 달려가 손자의 등을 토닥인다. 괜찮다, 괜찮다 하는 할미의 목소리에 이내 아이는 다시 눈을 감는다. 죽이 눌어붙어버릴까, 할미는 서둘러 주걱을 든다.

무심한 것들.

노모의 입에서 한숨 같은 탄식이 배어난다. 며칠 전 고열에 시달리는 아이를 업고 허겁지겁 찾았던 응급실 풍경이 노모를 지나간 것이다. 갓 병원에 들어온 간호사가 전부였던 새벽의 병원은 어수선하기만 했고 손자에게 큰일이 날 새라 가슴 졸이던 할미는 처음 보는 간호사에게 허리 굽혀 절하며 손자 좀 봐달라고 애원했었다. 열에 헐떡이는 어린 생명을 안은 할미에게 흰옷 입은 자들은 모두 선생님이었고 신이었다.

주삿바늘이 들어가기를 한 번, 두 번. 혈관을 찾아 헤매는 미숙한 손길이 세 번째 팔을 찌르자 아이는 기겁을 했다. 할미의 얼굴은 퍼렇게 질렸다. 선생님, 우리 손자 좀 살려주세요. 자지러지게 우는 아이를 앞에 두고 할미는 두 손을 모았다. 주삿바늘 꽂기는 여덟 번이나 이어졌다. 끝내 혈관을 찾아내지 못한 의료진은 아이의 발등을 만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퍼렇게 질린 아이를 빼앗다시피 해 안아 들고 병원을 나왔다.

그날 이후 노모는 매일같이 죽을 쒔다. 아기가 울 때마다 우리 손자 좀 살펴주시라고 부처님을 찾고 하느님을 찾고 조상님을 부르며 쉬지 않고 죽을 만들었다. 곱게 쑨 이 음식이 놀란 아이의 가슴을 달래주기를 바라며, 손자의 입맛을 돌려주기를 소망하며 할머니는 죽 지킴이를 자처했다. 시도 때도 없이 울어대던 아기는 그 정성으로 안정을 찾아갔지만 노모는 그날 본 바늘이 섬뜩해 울음소리가 들릴 때마다 가슴을 쓸어내려야 했다.

불을 끄고 죽을 그릇에 담으며 노모는 당신을 지나간 말들을 곱씹는다. 죽과 잼은 눌어붙지 않게 계속 저어줘야 한다. 속이 안 좋을 때는 밥보다는 죽이 좋다. 놀랐을 때는 보리차를 먹여야 한다. 재료들이 한데 잘 어우러져야 하는 죽은 정성이다, 마음이다. 노모의 어미에게서, 그 어미의 어미에게서 전해져 온 말들이 노모의 등을 다독인다.

할머니.

어느새 눈을 뜬 아이가 할미를 찾는다. 노모가 잠에서 깬 아기를 안아 보리차를 먹인 후 식혀 둔 죽을 꺼내온다. 알록달록한 죽 한 숟갈이 아이의 입에 들어간다. 아이의 볼이 실룩거린다. 할미의 입가에 미소가 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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