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념

Red

by Lunar G

정수리 위 머리카락이 솟구치도록 분노를 느낌은 제대로 살고 싶다는 마음의 방증이다. 화내고 싶지 않은데 실망으로 가슴을 움켜쥐고 싶지 않은데 돌아서서 울고 싶지 않은데 자꾸만 의지에 반하는 행동을 한다. 마음이 원치 않은 행동을 하는 나를 넘어다본다. 이상하다. 어색하다. 낯설다. 나 같지 않은 나를 앞두고 질문한다. 왜 괴로울 것을 알면서 무엇인가를 끝없이 염원하는 것인가 하고.

가만 들여다보니 그 속에 희망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게 남겨진 가능성이 있지 않을까 하는. 영원히 꿈꿔도 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살아있는 한 언젠가는 나를 내보일 날이 오게 되지 않을까 하는. 그리고 그 너머에는 욕망이 도사리고 있다. 남과는 달라지고 싶다는. 두드러지고 싶다는. 묻히고 싶지 않다는. 본능일지도 모르는 그 욕망이 낯설다.

원하는 것에 투명한 줄 알았는데, 남과의 비교에 서툰 줄 알았는데, 무던한 사람인 줄 알았는데. 나는 예민한 사람이었다. 시시각각 타인의 시선을 신경 쓰고, 친절하지 않은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이 불편해 갈등 자체를 외면하고, 증오와 미움을 감지하면서도 아니라며 포장해 온 비겁한 사람이었다. 도대체 왜 나조차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교묘하게 나를 기만하며 살아온 것이냐고 자문한다.

울림 없는 공허.

홀로 됨의 외로움과 서운함. 그 속에는 누군가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었다. 애써 설명하지 않아도 나를 있는 그대로 받아줄 수 있는 벗이 있었으면 했다. 그 벗이 오롯이 내 편이 되어주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다. 아니, 내가 관계 맺는 모두가 그런 존재이기를 바랐다. 그랬기에 거절을 모르는 사람처럼, 싫은 소리를 못 하는 사람처럼, 하루를 48시간으로 사는 사람처럼 부탁에 치여 살아왔다.

거울을 본다. 어깨도 없고 다리도 없고 몸은 녹아내리고 있는 토르소 같은 형상이 보인다. 이 역시 환영 이리라. 상처 받았다고 하는 어리광이다. 더 잘해보고 싶은데, 좀 더 빛나고 싶은데 그게 안 돼서 속상하고 서운하다는 외침이다. 거울은 영원히 거울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 비친 나는 시시각각 그 모습을 달리할 것이다. 내가 나로 서지 않는 이상. 인생에 대한 기대를, 노력에 대한 희망을, 인간에 대한 믿음을 놓지 않는 한 나는 또 나를 붙들고 울어야 할 것이다. 화내고 싶지 않은데, 변명하고 싶지 않은데, 설명하고 싶지 않은데, 추구하고 싶지 않은데, 분투하고 싶지 않은데, 절망하고 싶지 않은데, 실망하고 싶지 않은데.... 하고 싶지 않은 수만 가지 일을 마주하며 시간을 채워가고 있을 것이다. 희망을 내려놓지 못한 대가인 것이다.




엉겅퀴를 들고 있는 자화상_알브레히트 뒤러_1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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