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눈앞이 뱅글뱅글 돈다. 어지럽다. 어지러울 때는 눈을 감고 누워야 한다. 눈꺼풀을 내려둔다. 쉬려고. 잔상이 시야를 잠식한다. 부산스럽다. 눈앞이 시끄럽다. 눈을 감으면 쉴 수 있을 줄 알았는데 피곤하다. 눈을 뜬다. 눈앞의 잔상이 무너진다. 눈을 떠도 감아도 온통 소음뿐이다. 머리가 지끈거린다.
샤워기 앞에 선다. 찬물로 머리를 식히면 더위가 가져온 것인지 막막함이 가져온 것인지 그도 아니면 불안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를 이 어지러움이 조금은 덜어질까 한다. 물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다. 똑똑 똑똑. 바닥을 두드리는 물에서 시간을 본다. 이지러지고 구겨진 시간이 수채 구멍으로 빨려 들어간다. 붙들고 있기 힘들었던 기억도 바닥으로 수렴하는 물처럼 자연스레 사라지면 좋으련만 잊고 싶은 기억일수록 그 골격은 어째 선명하기만 하다. 아직 덜 자라서 그런가 보다.
쉬어야 한다.
샤워를 하고 나와 소파에 앉는다. 지령을 내린다. 쉬어야 한다고. 오늘만은 쉬라고. 쉬어야지 하면서 휴대전화를 든다.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는 간단한 일을 처리한다. 이건 일도 아니라면 소소한 그 업무를 일의 범주에서 물린다. 일이 아니면 쉰 게 되어야 하는데 그게 또 그렇지는 못하다. 휴대전화를 쿠션 밑에 넣어두고 멍하니 있으려고 애를 쓴다. 쉬기를 일처럼 하려고 한다. 그러니 쉼이 일이 되고 말 수밖에.
쉬어도 되는데.
휴대전화를 붙들고 있다고 컴퓨터를 붙들고 있다고 일다운 일을 하는 것도 아닌데 쉬지를 못한다. 쉼 없이 연락이 오고 쉼 없이 연락할 일이 생기고. 대화를 나누는 게 일이 되어 간다. 미디어의 병폐인 건지. 현대인의 고질병인 건지. 쉬지 못하는 병을 앓고 있다. 누구 한 사람 이렇게 살라고 한 사람이 없는데 왜 이렇듯 쫓기듯 사는지. 눈을 감고서도 해야 할 일의 목록을 나열하고 있는 이 고질적인 습관은 뭔지. 숨 막히듯 사는 삶을 자처하고서는 힘들다고 칭얼대는 이유는 또 뭔지.
쉬지 않기로 한다.
쉴 수 없으면 쉬지 않는 게 맞다. 쉬는 게 일이 되게 한다면 쉬지 않는 것만 못하다. 그렇게 쉬기가 힘들다면 일을 하면 된다. 그런데 왜 이렇게 숨이 찬 건지. 목까지 차오른 숨을 어떻게 뱉어내야 하는 건지. 다들 이 정도의 숨 참기는 습관처럼 하고 사는 건지. 쉬지 않기로 하니 숨이 막힌다. 숨통 하나만 틔어주면 될 것 같은데 그걸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숨을 골라본다.
눈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