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멀다

by Lunar G

바다를 앞두고 물거품이 된 공주를 떠올린다.

파란 파도를 마주하며

저 하얀 것이 인어의 혼은 아닐까 한다.


바보같이

사랑 그게 뭐라고 물거품이 돼 버린 건지.

바보같이

사랑 그걸 앞에 두고도 왜 못 알아본 건지.


사랑을 위해서 몸을 버린 인어와

사랑을 알아보지 못한 눈먼 왕자와

저 멀리 있는 사랑


모든 게 멀리 있고

모든 게 어긋나 있고

모든 게 뒤틀려 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자신들이 상황을 통제하는 줄 안다

그 상황이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진 것인 줄 안다

그리고 욕심을 더 내면 앞으로도

더 많은 것을

지금보다 더더더 많이 얻을 것으로 착각하고

빈 손을 붙들고 우는 이들의 가슴을 내려친다


자기도 그런 적이 있으면서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것 때문에 울며 지낸 밤을

까마득히 잊고 팔짱을 끼고

누군가의 상실을 무감각하게 내려다본다


무감각한 그 시선이 시려서

차디찬 시선의 칼 끝에서 절름거리는 나를 품어 안으며

파도 소리에 귀를 연다


철썩철썩

저게 매질인지 다독임인지

아픔이 가슴을 녹여버려서인지

소리조차 분간이 안 된다

믿음을 믿음으로 수용하지 못하게 된 병이 남긴 후유증이겠지.


모진 매질에 가슴이 녹아버려서인지

아득바득 제 것을 빼앗기지 않으려 애쓰는 그 몸짓이

어째 전부 눈먼 자들의 코끼리 다리 만지는 행위로 비치는 것인지

내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저들의 눈이 보이지 않는 것인지

사는 건 어쩌면 모두가 눈이 멀었음을 알아가는 과정은 아닐는지


Jan Vermeer_Allegory of Painting_16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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