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다림

by Lunar G

기다림이 길다. 긴 기다림이 눈을 눌어붙게 하고 가슴을 얼게 하고 심장을 녹여낸다. 끝인가 하면 다시 더해지는 시간이 애간장을 태우는데도 기를 쓰고 버틴다. 심장 가운데 뿌리내린 빨간 씨앗 때문이다. 사랑이 아닌 그 무엇에도 지고 싶지 않다. 머리도 타고 손도 타고 발도 다 타버려 내가 사라져 버린 것 같은데, 그 씨앗 하나만은 꼭 지켜내고 싶다. 그를 지켜내기 위해 결의와도 같은 이 마음을 붙들고 언제 끝날지 모를 기다림을 하염없이 쳐다보고 앉아 있다.

그의 기척을 느낀다. 고개를 돌려보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면 멍하니 그가 있었던 것 같은 그곳을 쳐다본다. 눈물이 그리움의 옥수가 되어 떨어진다. 떨어지는 옥수를 두 손으로 받아낸다. 눈물은 애초에 소리가 없는 것을. 긴 기다림이 한이 되어 남겨지고 있는 것인지 내 눈물은 서럽고 처절하게 애절함의 소리를 만들어낸다. 나는 그 소리를 주워 담아 그에게 전한다.

나의 두드림은 그가 전하는 모스부호가 되어 되돌아온다. 그러면 나는 그것을 붙들고 앉아 사랑의 해독을 시작한다. 언어학자라도 된 것처럼 치밀하고 진지하게 그의 말을 곱씹기를 반복한다. 하지만 아무리 읽어내도 그의 부호는 해독이 되지 않는다. 조심스러운 그의 사랑은 머리로 분석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일은 나를 시간에 녹여내는 일이다. 시간에 녹아들어 가다 보면 어긋남과 이어짐 가운데 사람은 사라지고 시간의 기록만 새겨져 남겨지게 된다. 그러면 시간이 잔혹한 신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갑갑한 마음은 ‘잔인한 신이여 왜 나에게만 이런 장난을 하나요?’라고 신에게 질문을 하기에 이른다. 그러면 신이 대답한다. ‘이 시련은 나의 장난이 아니야. 이것은 네가 원한 사랑에 대한 나의 질문일 뿐이야. 나는 너의 소망에 질문의 형태로 응대했을 뿐 대답을 강요한 적은 없어.’ 엄격하고 냉정한 신이다.

그 말을 듣고 있자면 오기가 생긴다. 그래, 내가 원했으니 마주할 수 있을 때까지는 마주해 보자,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인류의 반 이상이 사랑으로 시름하고 있으니 이 싸움은 아픔을 전제로 한다. 내 모든 것을 걸 테니 죽을 만큼 아플 수도 있다. 혹독한 어긋남에 죽고 싶어질 수도 있다. 그런데도 마주하려 한다, 이 사랑을. 이 마음이 사랑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 싸움은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사랑이 내 가슴에 씨앗을 내려놓은 그 순간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할 수 있는 데까지는 가야 한다. 애초에 닿지 않았으면 모를까 사랑의 봄바람이 내게 닿은 순간 나에게 선택권은 없어진 것과 마찬가지였다. 허니 가는 길이 아무리 험난하다 해도 버티며 나아가는 것밖에 다른 수가 없다. 사랑을 지켜내는 것이 내가 사람으로, 나로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며 나의 그가 온전한 그로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Gustave Courbet_The Cliff at Étretat after a Storm_1870.jpg Gustave Courbet_The Cliff at Étretat after a Storm_1870